씹히는 고소함이 숨은, 아몬드브리즈라떼

보기엔 그냥 라떼다. 그 속에서 아몬드 가루의 아주 살짝 씹히는 고소함을

by OH 작가


보기엔 그냥 라떼다. 진한 에스프레소 위에 우유와 우유 거품을 잔뜩 얹은 라떼다.

어느 카페에서는 그래서 슬라이스 된 아몬드 조각이나 잘게 부순 듯한 아몬드 가루들을 얹어 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카페에서는 그냥 보통의 라떼처럼 준다.

마셔 봐야 안다. 이것이 아몬드 브리즈 라떼라는 것을!





마셔 보면 안다.

진한 에스프레소 투샷에 우유와 우유 거품이 풍성하게 얹어져 있다. 그 속에서 고소한 아몬드 가루의 맛을 찾을 수 있다. 입 안에서 아몬드의 고소함이 은근하게 느껴진다.

일부 카페처럼 조각조각 잘게 부서진 아몬드 가루를 좀 뿌려 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러면 더 그냥 라떼와 그나마 차별화가 느껴질 것 같아서.


어쨌든, 아몬드 브리즈 라떼는 보기엔 그냥 라떼다. 조금씩 마시며 아몬드의 고소함을 찾아 느껴야 하는 커피다.







"엄마, 좀 유명한 유투버가 돈이 많은가 봐. 포르쉐 차 몇 대를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 줬대. 그런데 이번엔 50평 짜리 집을 나눈대. 되게 좋은 사람이야."


"돈은 많은가 보네. 근데 사람은 만나 보기 전엔 몰라. "


가까운 사람에게도 뒷통수 맞고, 속기도 하는 세상이다.

하물며 가족끼리도 돈 때문에 서로를 속이거나 서로에게 등을 보이거나, 서로를 상처 주기도 하는 세상이다.

성실하고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철저히 상대를 속이고 이용해 먹는 세상이다. 너무나도 사이 좋았던 형제 자매 관계도 재산 문제로 틀어지고 사이 끊기는 경우도 봤다.


20대 땐 몰랐다. 그냥 많은,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 생각했다 그래야 세상을 배우고 정보도 많이 얻는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래도 믿을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던 때다. 사람을 믿는게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졌던 때다.


하지만 2년 넘게 이 일 저 일 겪고, 나도 이제 시작해야 하는 밑바닥 시기에 돈 문제로 불편한 관계도 겪었다.


나이 마흔이 넘으니까 사람을 믿는다는 게 뭔지 점점 혼란스럽고 애매해졌다.

상대를 자기 마음대로 길들이려는 사람들에게 너무 지치고 질리기도 했다.

내면의 멘탈이 강한 나는, 겉으로 맞춰주고 꾸준한 인내심으로 긴 희생은 해도 절대 상대의 그런 방식에 길들여지거나 마인드 리딩 당하는 성향이 아니다. 꾸준히 인내심 있게 맞춰 주고 희생해 주다가 계속 그렇게 하려는 게 느껴지면 질린다. 어느 순간 단번에 홱 등돌려서 다신 돌아보지 않는다.


방송 작가일 하면서도 서로의 일 관게 속에서 확실한 믿음 관계는 없단 걸 몸소 체험했다.

겉으론 무난한 관계 같지만 돌아서면 서울대 나와도 사기꾼이랑 일을 한다. 이러려면 계약은 왜 하는지, 어떻게 그렇게까지 본인도 모르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사람을 믿는 게 어쩌면 나를 속이는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난 그때부터 사람이 제일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오래 봐도, 찬찬히 훑어 봐도 속까지는 모르는 게 사람일지도 모른단 생각도 하게 된다.

믿었다가 또 상처 받거나 크게 실망하기 싫어서일 수 있다. 사람이 제일 독할 수 있는 존재지만, 사람이 제일 약한 존재일 수도 있으니까.


겉 모습 속에서 찬찬히 보여지는 모습 속 숨겨진 또 다른 진실을 은은히 느끼고 찾는 것, 어찌 보면 아몬드 라이즈 라떼와 비슷할 수 있다.










날씨가 흐리더니 마지막 겨울비인지, 바람이 다시 차가워졌다. 봄이 오려는 몸부림인가 보다. 따스하고 포근한 바람에 새싹이 돋고 꽃이 피려면 이렇게 마지막 꽃샘 추위가 꼭 필요한가 보다.


집어 넣으려고 했던 겨울의 롱패딩 잠바를 꺼내게 된다. 갑자기 비가 내리고 쓸쓸하고 쌀쌀하게 느껴지는 찬 바람에 또 다시 몸을 움츠린다. 다시 몸을 활짝 펴기 위한 움츠림이다.


한 차례 흐린 마지막 몸부림이 다하고나면 진짜 봄이 온다. 진짜 봄 속에서 선명하면서도 은은한 색상의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 어깨를 당당히 펴게 된다. 그 봄 속에서 조용히,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를 맡으며 기분 좋은 승리의 미소를 짓기 위해서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겉 보기엔 그냥 라떼 같은 아몬드 브리즈 라떼 같은 계절을 맞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천천히 음미하고 느끼면서 그 속에서 찾아내는 고소한 은밀함을 즐기는 산뜻한 미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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