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식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건우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다시 흘러나올 거 같다. 퉁퉁 부은 두 눈에 괴로움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두려워 보인다. 뭔가를 또 잃을 듯 어린아이처럼 두려움을 담고 있다. 한 손에는 얼음주머니가 들려 있다.
건우는 차창을 활짝 열었다. 두 눈을 감고 얼굴을 차창 쪽으로 돌렸다. 얼음 주머니를 감은 두 눈 위에 살짝 갖다 댔다.
이혁은 룸미러로 건우를 힐끔 쳐다봤다.
“아니, 하지 마. 울지마. 건우야, 울지마. 그런 식으로 자책하지 않기로 했잖아.”
예상했던 일이다. 건우는 또 자기 탓인 양 자책하며 울고 있겠지, 라고 건영도 말했다.
방안으로 건우를 데리러 갔을 때 건우의 양 어깨를 부드럽게 부여잡은 이혁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건우가 정신을 멀쩡하게 붙잡길 바랬다. 건영이를 위해서라도.
건우는 이혁의 두 눈에 단호하고 또렷하게 담긴 건영의 걱정스런 눈빛을 들여다봤다. 건영은 건우가 약해져서 자신을 무너뜨리는 순간을 걱정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혁은 그런 건영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혁의 두 눈에서 건영의 눈빛이 들여다보이는 게 이상할 리 없다.
건우는 눈물이 더는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고 이를 꽉 깨물었다. 얼음주머니의 냉기가 건우의 두 눈의 열을 눌러 주고 있다.
’2년 전에도 딱 저 얼굴이었는데.‘
이혁은 2년 전, 잔뜩 두려운 얼굴로 얼굴이 온통 울음과 콧물 범벅이었던 건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닌가? 그때보다는 그래도 양호한 건지 모른다. 건우는 그때 세상에서 제일 마음을 의지하던 엄마를 잃었고, 누나마저 잃을지 모른단 사실 때문에 공포 그 자체였다.
이혁은 내심 건우가 부러웠다. 울고 싶어서 그대로 무너지듯 주저앉아 울부짖을 수 있는 그 모습이 조금은 부러웠다. 그때는 이혁도 울고 싶었었다. 지키기 위한 선택과 잃게 될 게 뻔하다는 두려움을 동시에 껴안았다.
건식에게는 주먹을 한 대 거세게 날리고도 싶었다. 하지만 차마 아무것도 모르는 건식에게 상황의 원인을 차마 설명할 수 없어 그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만 쳐 대야 했다. 지금도 아무것도 모른 채 건영에겐 어려움과 미안함을, 이혁에겐 눈에 크게 거슬리는 가시 같은 두 눈빛으로 대하는 게 화가 났다. 건영의 부탁만 아니라면 벌써 건식을 거세게 주먹으로 한 대 쳤을 것이다.
“입 다물고 기다려, 제발. 내가 얘기할 때까지, 지금은 아냐.”
건영의 단호한 두 눈빛은 무서웠다. 건식은 자신이 얘기해 줄 때까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했다. 생각도 못 할 거라 했다.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그냥 2년만, 2년만 놔두라고 했다. 2년 동안 연락도 안 하고 멀리할 생각이랬다. 그리고 진짜, 2년 동안 건영은 건식과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2년이 지나간 지금, 건식에게 연락할 때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건우가 이번 일로 건식을 부르지 않았다면.
“아버지도 와 계신 거죠?”
이혁은 건우가 아버지라고 말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썩소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그래도 아버지라고 부르네.”
이혁은 룸미러로 건우를 힐끔 봤다. 건우는 두 눈을 뜨고 운전석에 앉은 이혁 쪽을 보다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 맞잖아요.”
하긴, 맞다. 건우에게도 건식은 아버지다. 입양은 건영의 어머니가 했고, 건영을 사랑해 준 것도 건영의 어머니였다. 건식은 그저 별 관심 없이 그러려니 했을 뿐이다. 와이프가 결정한 일이고, 자신은 와이프의 소원을 들어 줬을 뿐이라는 태도였다. 건우를 그저 한집에 사는 동거인일 뿐이라는 식으로 대했다. 굳이 가까이도 멀지도 않게, 와이프와 딸에게 거슬리는 눈총만 안 받을 정도로만, 딱 그만큼이었다.
건우는 그런 건식에게 꼬박꼬박 아버지라고 불렀다.
“건영이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어서인지, 할아버지라고 하율이가 걱정돼서인지, 병실 소파에 자리 잡으셨어. 갈아입을 속옷이랑 옷도 누구한테 부탁하시는 거 같더라. 이제야 껌딱지처럼 붙어 있겠다는 듯.”
건우는 비꼬듯 말하는 이혁의 말투가 이해 되면서도 거슬렸다. 친아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연히 건식의 아들이었다. 건우 앞에서 너무나도 솔직하게 건식에 대한 속마음과 태도를 보란 듯 드러내는 게 맞나 싶다.
서형사는 캐리어 식으로 바퀴가 달린, 낡은 더블백을 내밀었다. 슬쩍 병원 건물을 올려다봤다.
“다 챙겨 온 거지?”
서형사는 속으로 욕이 나왔지만, 겉으로는 넉살 좋게 웃었다.
’내가 무슨 지 시다바리라도 되는 줄 아나, 진짜. 아휴.‘
“선배님도 참, 그럴 거라는 거 알고 시키신 거 아니에요?”
건식은 그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 안을 열어 보려다 말고 어깨에 멘다.
“가라.”
서형사는 가방을 슬쩍 가리켰다.
“아휴, 선배님도 참.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커피 한 잔도 안 사주시기에요?”
건식은 별로 내키지는 않는다는 듯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뭐가 걸리는지 병원 입구 쪽으로 걸어가며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서형사는 유서장의 목소리를 머릿속에 되새기며 건식을 따라 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옷가지? 병원에 누가 입원했길래 그 새끼가 옷가지를 다 챙겨 오래? 이왕 가는 거 누군지도 좀 알아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