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희생

쉽게 사랑할 순 없을까

by 오알메리네

10년간 얽혀있던 이와 결혼을 앞두고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기적으로 감정이 폭발해, 남편에게 내 인생은 너무 많이 잃었다고 쏟아낸다.내 안에서 뚜렷하게, 아니 유일하게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고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다. 방치당했다. 이용당했다.]라는 감정이 휘몰아친다.


결혼식 4일 전

나는 근거 없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날 따라왔던 이 감정에 다시금 삼켜졌다.


이 감정의 끝에 이성을 잡아, 아니 내 이성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저 진짜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쓰레기같이 내뱉었던 나의 말에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되짚어본다.


[헤어질 수 없음이 고통이다.]

[나도 처음이라 무섭고 두렵다.]

[너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알아만 달라.]

[너무 외롭다.]


나 자신조차 인지하고 있을 만큼, 뒤틀어진 하나의 관념이 내 안에 존재한다.

[가족쇄]라고 농담 삼아 혹은 진심으로 사용하는 나만의 단어가 있다.


가족이지만 한 번 연결되면 족쇄가 된다는 뜻인데, 관계가 생기는 순간 의무가 동시에 발생하는 나의 경험이

뒤틀어진 관념을 만들어냈다.


억울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원초적 감정이 희미해지고, 한때 인과관계가 존재했던 감정이 안개처럼 변해간다. 검은 들판에 안갯속에 길을 헤매는, 목적지 없이 헤매는 것에만 익숙해진 나에게 [왜 헤매고 있는가]라는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내 고통은 조건부의 사랑에서 시작한다. 세 남매, 한정된 자원 속에서 둘째는 일명 정신승리를 하는 포지션이다. 가질 수 없는 자원에 대해 원래 필요 없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유일한 남자아이인 남동생을 케어하며 엄마의 사랑을 대신해서 받는다. 어린 시절의 나는 조건부로 사랑을 받고, 나의 욕구를 왜곡/축소/확장시키며 환경에 적응해 나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이상, 끊임없이 나 스스로 조건을 만들어 사랑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 내 남편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요구한 적이 없다. 결혼식 준비든, 집안일이든, 어떠한 희생도 나에게 책임이 있다 말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남편이 편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행동들이 나를 집어삼킬 때까지 계속한다. 그리고 희생하고 있다 생각했다.


[도대체 내게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모르겠어]라는 남편의 질문에

[나도 잘 모르겠다.]라 대답했다.


분명, 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남편에게 문제가 있었다. 남편은 집안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니까 내게 잡일을 떠넘기고 자기 일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렇게 시간을 잃어가며 희생하고 있는데.


그러다, 내가 가진 고통을 뚜렷하게 인지한다. 가족쇄라는 왜곡된 관념. 피해의식. 조건부로 사랑받았던 기억들,

자욱했던 안개가 걷히고 평화롭다. 진실로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그냥, 쉽게 사랑할 순 없을까.]


정당한 이유를 뱉어야만 할 것 같은, 사랑과 존중을 받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하던 행위들, 타인에게 거절당할 것 같아 전전긍긍하는, 시간과 시간의 사이 속에 나.


쉽게 사랑하자,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