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양가감정에 대하여

왜곡된 환경이 빚어낸 양가감정과 그 안의 안정

by 오알메리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해 주는 것이 내 삶의 소명 같았다. 그 이유는,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그런 역할이 자연히 주어졌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돈 걱정, 언니의 비밀, 남동생의 돌봄은 당연시되었고 나의 소명을 더욱더 뚜렷하게 만들었다.


복잡하게 얽힌 가족 간의 사랑과 증오는 어린 내가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양가감정의 조상 격 질문 앞에서, 나는 늘 선택지에 없는 ‘부모님이 좋다’라는 답을 내놓곤 했다.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하든, 아빠의 입장에서 생각하든, 나는 모든 게 이해가 갔다. 아니, 어린 나에게 가족의 불화란 [내 안전지대가 사라지는 것]이기에, 필사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이런 양가감정이 익숙한 나에게는 [선택]하는 건 매우 어려웠다.

나는 선택을 할때 필요 이상으로 상황과 관계 등을 고려하곤 하여, 무언가를 잃기 위해 선택하는 것과 같았다.

애초에 선택하지 않으면 잃는 것도 없으니까.


양가감정이라는 고통에서 안정을 찾아버린 꼴이 되었다. 나의 혼란을 가중시켰던 가족에게 멀어진다면 나는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


성인이 되자마자 해외살이를 하였고, 나는 멋지게 무기력에 빠졌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에서 벗어나니 미아가 되어버렸다.


참으로 멋진 일이다. 타인의 에너지로 살아가던 이에게 혼자가 되는 일은.


마치 갓난아이가 된 것과 같다.


18년간 그래 왔듯이 나를 채워 줄 사람을 찾는다. 똑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그 굴레에 같이 빠져줄 그는, 가족의 책임을 대신한, 나와 같은 아기이다.


나와 같은 이와의 만남은 갓난 어린아이가 서로의 머리카락을 잡고 못 놓는 것과 같다. 고달프고 애달프다. 가끔 망각도 한다. 내가 다 큰 성인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그 망각보다 더 큰 고통은 따로 있다. 다 큰 성인이지만 스스로의 두 발로 걸어본 적 없단 사실이다.


이러한 커다란 공백과 함께 시작하는 성인의 삶은 어쩌면 행운이다. 체력이 있으니까, 젊으니까. 나는 10년 이상 그 행운과 함께했고, 그 서사를 이제 나누고 싶어졌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