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가진다는 차이
2025년을 떠나보내는 나에게 이번 글을 헌정한다.
많은 일이 있었다. 어떤 일이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하기도 하고 감정으로만 느껴지기도 한다.
두꺼비 집을 만들기 위해 작은 모래알을 중앙으로 모으는 듯, 2025년의 하루하루를 모으다 보면 하나의 점이 된다.
내 세상은 나로 가득했다.
컨설팅 펌의 지독한 환경도, 결혼으로 얽힌 무거운 관계에서도, 강아지와 고양이를 같이 키우게 된 삶에서도
외부 환경에 휘둘리고 있는 나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나의 감정은 어떤지,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떠한 내가 되고 싶은지
나를 위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와 보니 내 욕심을 위한 채찍질이었다.
감정에 무뎌지고 싶으니까, 외부에서 인정받고 싶으니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그 욕심이 자아성찰의 탈을 쓰고 매일을 고민하게 했다.
비단 1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10년 이상을 나와 함께 했어.
특히 2025년이 힘들었던 이유는, 내 몸이 이 질문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더 이상 움직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성은 나중에 뒤따라온다. 직감과 이성이 일치해 가는 그 사이, 2025년은 그저 내가 배부른 사람이고 삶을 포기한 사람이고 더 이상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치부하더라
욕심이 또 다른 탈을 쓰고 나를 괴롭혔다.
서서히 이성이 직감을 따라잡았다. 그와 동시에 몰려오는 건 후회.
나는 나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후회.
이 후회가 마지막으로 나를 괴롭힌다. 이성이 직감에 닿기 전의 마지막 발악처럼.
시간이 흘러가는 것, 그것은 무용이 아니었다.
30년이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듯, 나에게 수용이라는 선택지가 희미하게 보인다.
그래. 나는 이해해. 내가 나를 외부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날 아프게 한 사실을.
그때는 그 탈을 기꺼이 쓰는 것이 나에게 최선이었어. 그러니 후회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