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은 호갱을 막기 위해 만든 법이다. 풀네임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줄여서 '단말기유통법', 더 줄여서 '단통법'이다. 이름처럼 핸드폰의 유통구조를 개선시켜서 호갱을 없애고자 만든 법이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단통법은 호갱을 없애는 데 실패했다.
단통법이 통과되기 전 어느날, 철수는 용산에서 100만원짜리 갤럭시S8을 사면서 50만원의 현금을 지원받아 50만원에 샀는데, 같은날 영희는 강변에서 같은 걸 사면서 달랑 10만원만 지원받았다. 그런데 다음날 민식이는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정보를 보고 공짜로 갤럭시S8을 샀다. 민식이는 현명한 소비자요, 철수는 민식이에 비하면 손해를 봤지만, 영희는 완전 호구가 된 셈이다. 단통법은 누구는 많이 받고 누구는 적게 받아서 발생하는 차별을 없애면 호갱도 사라질 거라 믿고 만든 법이다.
단통법이 호갱이 없애는 원리는 이랬다. 같은 핸드폰을, 같은 통신사에, 같은 요금제로 가입하는 이용자가 서로 지원금을 다르게 지원받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를 위해 통신사에게 대리점과 인터넷사이트에 '당신이 갤럭시S8을 사서 5만원짜리 요금제에 가입하면 15만원을 주겠소'라고 미리 알리도록 했다. 어느 핸드폰에 대해 지원금액을 정하면 1주일 이상 바꾸지 않게도 했다. 이를 '지원금공시제도'라고 부르는데, 이를 위반하면 연평균 매출액의 3%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수백억원이 훌쩍 넘는 과징금의 부과도 가능한 제도다.
또 단통법에서는 아예 방송통신위원회가 정해놓은 금액 이상의 지원금을 주지 못하게도 했다. 이를 '지원금상한제'라고 한다. 이 금액은 33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다만 출시된지 15개월이 지난 핸드폰에 상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또 상한제 자체를 법 시행 이후 3년 동안만 효력을 가지도록 정해놓았는데(일몰제), 10월이면 3년이 찬다.
단통법이 시행된 뒤 예전에 비해 지원금을 누구는 많이 받고, 누구는 적게 받음으로써 생겼던 차별은 상당 부분 줄어든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지원금을 적게 받음으로써 호갱이 되는 일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경쟁 관계에 있는 핸드폰 제조사들이 비슷한 시기 새로운 기종을 발표할 때 이른바 '대란'이 벌어지는 것은 이미 관행이 됐다. 요즘은 불법지원금 단속을 피해 오피스텔 등지에서 순식간에 영업을 했다 사라지는 '휴대폰 떴다방'까지 생겨서 '뜻밖의 호갱'을 양산하고 있기도 하다.
‘뜻밖의 호갱’은 ‘장려금’이란 것때문에 만들어진다. 번호이동 대란이나 ‘떴다방’에서 현금 페이백이니 뭐니 하면서 공시된 지원금보다 더 많은 지원금을 줄 수 있는 물적토대가 바로 이 '장려금'이다. 불법지원금의 금고, 호주머니 역할을 장려금이 한다.
'장려금'은 단통법에서 '핸드폰 제조사가 이통사, 대리점, 판매점에게 휴대폰 판매에 관하여 제공하는 일체의 경제적 이익'과 '이통사가 대리점, 판매점에게 휴대폰 판매에 관하여 제공하는 일체의 경제적 이익'으로 정의되어 있다. 쉽게 말해 핸드폰 한 대 팔 때 마다 판매점과 대리점에 주는 리베이트가 바로 장려금이다. 그리고 보다시피 장려금은 '제조사가 주는 리베이트'와 '이통사가 주는 리베이트'로 나눠져 있다.
판매점과 대리점에서 자신들에게 돌아갈 리베이트 중 일부를 떼내 손님들에게 주게 되면, 이것이 바로 단통법을 위반하는 불법 지원금이 된다. 일부 판매점과 대리점에서 건당 리베이트를 적게 받더라도 많이 팔면 이익이 되기때문(박리다매)에 이런 식의 호객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통사가 매일매일의 영업전략에 따라 리베이트 규모를 조정하면서 불법 지원금을 조장 내지 방치하는 경우도 있다.
공시지원금에 더해 이러한 불법지원금까지 덤으로 받게 된다면, 그 소비자는 현명한 소비자가 될지 모르지만, 나머지 대다수 소비자는 '호갱'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규모는 줄었을지언정 단통법 이전의 불합리한 상황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장려금'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 가장 뾰족한 방법은 지원금과 마찬가지로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이통사와 제조사가 얼마나 많은 장려금을 뿌려대는지 공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현재 단통법 개정의 중요한 방향 중 하나로 '분리공시제'라는 것이 제시되고 있다. 분리공시제는 이통사가 공시한 지원금 가운데 이통사가 부담하는 것은 얼마이며, 제조사가 부담하는 것은 얼마인지 각각 구분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핵심은 이통사 지원금보다 제조사 지원금인데, 제조사들이 고가 핸드폰을 팔면서 얼마나 지원금을 내는지 공개하라는 거다. 그리되면 제조사가 스스로 매긴 출고가가 과연 합리적인 것인지 따져볼 수 있게 되고, 출고가에 낀 거품을 가늠할 수 있게 되며, 결국 휴대폰값 하락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지원금만 분리해서는 이런 취지를 전혀 살릴 수 없다. 지원금보다 더 큰 규모(인 것으로 유추되는)의 장려금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기때문이다. 만약 삼성전자가 100만원짜리 갤럭시S8 한 대를 팔면서 지원금을 10만원 내고, 장려금을 30만원 쓴다는 사실이 드러난다고 하자. 먼저 소비자에 대한 혜택보다 대리점이나 판매점에 대한 리베이트가 3배나 많은 사실에 소비자들이 분노할 것이다. 그리고 100만원짜리 핸드폰을 팔면서 40만원이나 뿌려대는 사실에 더 크게 분노하게 될 것이다.
실제 최근 KBS 보도에 의하면 이통사의 경우 '통신요금의 40%가 마케팅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 사람이 5만원짜리 요금제에 24개월 동안 가입했다고 가정할 경우, 그가 24개월 동안 통신사에 내는 요금은 120만원인데 그 가운데 48만원이 마케팅비라는 것이다. 그 48만원 중 일부는 지원금으로, 대부분은 대리점과 판매점에 지급되는 리베이트로 쓰이는 구조다. 따라서 지원금과 더불어 장려금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핸드폰 기계값은 물론, 통신요금 인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거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단통법 이후에도 호갱이 여전한 것은 분명 법을 만들 때 뜻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뜻밖의 호갱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단통법 이후 '호갱'의 문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한 상대적 차별에 의한 것보다 국민 모두가 통신사의 호갱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지원금 상한이 33만원으로 락이 걸린 상태에서, 최고 요금제부터 최저 요금제까지 줄을 세워 차등적으로 지원금을 매겨보면 통신사로서는 지원금을 더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 모두가 그런 상황이니, 지원금을 통한 경쟁을 벌어지지 않는다. 자연히 그 이전에 마구 뿌리던 지원금은 고스란히 통신사 차지가 됐고 장려금이란 당근을 늘렸다줄였다 대리점과 판매점들의 무한경쟁을 부추기면 가입자는 여전히 계속 들어온다. '통신사는 살찌고 고객은 굶주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통신사와 제조사들이 지원금과 장려금으로 대체 얼마를 뿌려대면서도 그렇게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것인지 소비자는 알아야 한다. 그래야 통신요금과 핸드폰 기계값이 얼마나 비싼지, 싼지 가늠이라도 해 볼 수 있고, 내가 과연 호구가 될 것인지, 스마트한 소비자가 될 것인지 선택할 수도 있다.
단통법은 이통사가 지원금을 얼마나 줄지, 지원금을 받지 않는 대신 요금할인을 얼마나 해 줄지를 정하는 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계값이 비싸면 지원금으로 농락할 게 아니라, 기계값을 낮추고, 요금이 비싸면 요금할인으로 유혹할 게 아니라 요금을 인하시키도록 만드는 게 진정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