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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a Apr 12. 2024

# 21. 모녀의 세계

성장일기_일상

나이를 먹을수록 많던 생각이 점점 단순해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가 나고 열받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너무 큰일임에도 냉소하게 되는 이 마음에 내 정신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라는 자괴감마저 든다.


왜 이리 평온하지?

막가파가 되는 건가?

인생을 내가 놓은 건가?

 열정 따위는 사라진 건가?


몇 가지 생각들을 하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해'가 되어 버린다.


간혹 사춘기 아이들과 언쟁을 하다가도


내가 이 애들하고 싸워서 얻는 건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지 싶어


많은 감정소모들을 피해버린다. 회피라기보다 아이들과 언쟁하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울 때가 종종 있어서이다.


가만히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면 그냥 자존심만 부리고 있는 나 자신이 보일 때가 많다.


남도 아니고 내 자식에게까지 자존심 부려야 할 건 뭐란 말인가?


이런 생각들이 자식에서 남편에게 그리고 주변지인에게 적용되면서 많은 부분의 감정들을 내려놓는다.


혹은 회의적으로 변한다.


'변하지 않는데 무슨 소용이겠어.'라고 생각하며


그런데 신기한 것은 친정엄마에게만큼은 여전히 감정적 날을 세우고  내 생각을 물러서지 않으려고 팽팽하게 말싸움을 이어간다.


그 말싸움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엄마가 부리는 자존심이다. 인정하지 않는 그 마음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이해했지만 정말 못된 마음이 이제는 이해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온전히 내 마음만 이해받고 싶었다.


평생 착한 딸 콤플렉스라는 굴레 속에 살았던 많이  힘들었던 나에게 엄마한테 싫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네가 나쁜 게 아니야. 네가 잘못한 건 없어!'라고


엄마가 봤을 때 나이 먹고 반항하고 미쳐있는(?)  딸 모습이 생경하고 괘씸하겠지만


나 자신에게는 내 인생을 부모의 생각과 선택이 아닌

스스로의 생각과 선택들로 나아가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불안하지 않고 편안함과 안도감마저 든다.


그간 내가 느꼈던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의 원인이 엄마 뜻을 거스르는 죄책감에서 오는 것임을 알아차라고는 이제는 괜찮다는 말을 나 자신에게 많이 해주며 우울감과 불안감도 많이 떨쳐내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인생에서 한 단계 성장하는데 4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와 나의 관계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 또한 이제 겨우 알게 되었다.


관계는 상호작용이 일어내야 행복하고 건강한 것이지 일방적인 관계는 늘 한쪽이 불행하다.


그래서  지인들 중에 우리 집은 아무 문제없어라고 말하거나 우리 애들은 너무 말을 잘 들어서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는 지인이 일방적 소통을 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해 버린다.


이 세상에 아무 문제없는 관계란 없다. 늘 나 자신의 감정도 들쑥날쑥인데 문제가 없다고 말하라는 것은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여하튼 엄마란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지만  엄마란 이름을 들으면 화가 나는 이 양가감정이 주는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무지하게 애썼던 시절이 이젠 나에게 감정적 편안함을 준다.


이 문제를 극복한 방법은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절대적 헌신과  절대적 사랑 앞에 대항하는 마음이 패륜이 아니라 엄마라는 타이틀을 가진 인간 대 인간으로 바라보며 같이 딸을 키우는 여자의 입장으로 엄마를 바라보는  내 시선과 마음의 변화였다.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나와 동등한 감정 카테고리 안에 있는 나보다 경험이 많고 나이가 더 많은 어른


그러나 그녀는 경험적으로는 나보다 우세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나보다 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또한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본인 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서 엄마의 말에 점점 yes가 아닌 No라고 말하는 내 죄책감들이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렇듯 모녀의 세계는 가장 가깝지만 그래서  서로 존중해야 평화로운 관계가 찾아올 수 있는 존재임이 분명한 듯하다.


우리는 너무 오랜 세월 엄마와 딸은 하나라는 프레임에 갇혀 그 생각을 강요받으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싶다.


나와  너무 다른  딸을 키우며 많은 감정적 힘듦을 겪고 있지만 그녀와 내가 다름을 확실히 알고 있기에 나는 늘 그녀의 삶을 응원해주고 싶다.


엄마라는 타이틀과 여자라는 타이틀이 수평적으로 존재하길 스스로에게 바라본다.


오늘도 나로서 성장하기 위해 한걸음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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