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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a Dec 09. 2023

보리차

성장일기 _ 일상

요즘처럼 날씨가 선선해지면 보리차를 끓인다.  여름에는 보리차도 상할까 싶어 시중에 파는 생수로 대신한다. 플라스틱 담겨 있는 물을 마시며 나름 죄책감이 들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의 미래와 자연에게 최대한 미안하지 않도록 열심히 분리수거 및 재활용에 목숨을 건다.


' 그래도 잘만 버려지면 옷으로 만들고, 다른 재활용품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으니라며 ' 위안을 해본다.


혼잣말로 웅얼거리면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애를 쓴다.

나의 루틴은 하루 두 번 보리차를 끓이기이다.  귀찮다는 생각보다 아이들한테 정성을 조금 더 쏟고 있다는 내적 훈훈함과 소소한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있다는 뿌듯함. 자기 만족감이 크다.


또한 보리차를 매일 끊인 다는 행위자체가 주는 성실함, 자애, 박애 조금은 거창한 듯 하지만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훌륭한 유산임에 틀림없다.


종종 주변 지인들이 이런 나의 모습을 지켜보며 유난이라고 말을 한다. 한때는 내가 진짜 '유난을 떠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했던 적도 있었다.  다른 것으로 설명을 할 수는 없다.  사랑 그 자체다.


어릴 적 부모님께서 하루 두 번씩 보리차를 끓이시던 부모님 모습이 떠오른다. 요즘 종종 기억 떠오른다.


큰 주전자에 찬물을 받아 물을 끓인다. 물이 살짝 끓기 시작하면 구수하게 잘 볶아진 보리를 쇠망에 넣어서 주전자에 넣는다.  그렇게 10분쯤 지나면 끓는 물의 한계점을 찍은 순간 주전자에서 들리는 '삑삑삑~~'소리


그 소리와 함께 울리는 안방에 계시던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목소리


“**야. 가스불 줄여라."


늘 부모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이름은 큰언니의 이름이었기에, 이유를 불문하고 큰 언니의 이름은 불렸지만 언니가 불을 줄이러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었다.


여하튼 귀가 예민했던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후다닥 튀어나가 가스불을 줄이고 그대로 상온에서 식게 내버려 둔다.  여름에는 식힌 물은  훼미리 주스병에 담아서 냉장고에, 겨울에는 주전자 그대로 뒷베란다에 보관한다. 계절에 따라 보관방법도 달랐지만 늘 마시던 보리차는 시원했다.


나는 결혼 전까지 평생 생수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인지 생수를 사 먹는 것이 조금은 아까웠는데 내가 결혼하고 바쁘게 살게 되니 자연스럽게 생수를 사다가 집에 구비해 놓게 되었다.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각의 시간이 많아지니 당연히 어릴 적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그 시절 내가 마셨던 보리차를 아이들에게도 먹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날씨가 선선해지는 계절이 돌아오면 늘 물을 끓이기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니 보리차는 찐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직접 하루에 두 번 보리차를 끓이고, 식혀서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을 하다 보니 꾸준하지만 누군가는 반복적으로 매일 해야만 다른 이들이 보리차를 마실 수 있었던 것이고, 그 매일 일어나는 일상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음을 알아버렸다.


특이하게도 우리 집에선 늘 아버지가 퇴근하시고 담당하는 일중 하나였던 보리차 끊이기.

아버지를 보면 성실함의 끝판왕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리차 끓이기를 퇴근하고 평생 하실 수 있었을까?


지금도 감히 오후가 되면 반드시 보리차를 끓기고 계실 것이라는 것은 확신해 본다.


부모님 만큼 성실하지 못한 나는 오래전에 구입한 전기 주전자 보리차를 끊인다. 가끔 정신이 없어서 인덕션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다 태워먹은 경험이 있는지라 보리차는 전기주전자로 끓이기로 하였다. 전기 주전자를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전원이 꺼지니 알아서 보리차기 식게 되니 너무나 편한다.  어릴 적 나처럼 귀를 쫑긋하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더욱 편하다.


사실 주전자를 사서 보리차를 끓이려고 시도를 해보았지만, 우선 물이 끓는 것을 계속 신경 쓰고 있는 것이 귀찮았고, 또 한 가지는 주전자 입구를 구석구석 자주 닦아 줘야 한다는 사실에서 이미 귀찮음을 느껴버렸다.

너무 귀찮은 일의 반복이 아닐 수가 없다.


일상은 귀찮은 일의 반복이 쌓이고 쌓이서 흘러간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이해해 본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은 겨울철에는 보리차를 하루에 한 반 끓이고, 여름이면 두 번이나 끓이셨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다.  


요즘 내가 아이들을 위해 보리차를 끓이면서 깨달은 사실하나는 부모의 성실한 일상은 아이들에게 매우 커다란 심리적 안정감과 신뢰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감에 있어 우리가 느꼈던 편안함은 부모님의 희생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 코끝이 찡해진다.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보니 일상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반복되고, 힘들고, 지치고, 벅차고, 때론 지겹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해내야만 하는 일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없던 힘도 쥐어짜본다.


신기하지만 내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힘이 저절로 생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보리차 하나 끓이며 감성팔이 하고 있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에 보리차는 추억이자 부모님의 사랑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가득하니 어찌 다름 사람과 같은 보리차 일 수 있을까?


보리차는 나만의 특별한 소울 푸드 중 하나 일지도 모르겠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내 아이들도 나중에 어른이 되어 보리차 마실 때면 엄마의 사랑을 기억하고 느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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