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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아빠 Jun 26. 2023

쓰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남기길 바라며

사진: UnsplashAaron Burden


 어릴 적 일기는 숙제였다. 지금 우리 아이들을 보면 일기가 숙제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는 매일 일기를 써야 했고, 일기를 선생님께 검사받아야 했다. 때론 그것이 개인사를 함부로 엿보는 것이라고 강제로 그런 것을 시키는 교육 제도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그때 생긴 쓰는 습관 덕분에 지금도 일기를 쓰고 있고, 일기는 나의 모든 글쓰기의 밑천이 되어주고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유의 언어를 가졌고, 고유의 문자를 가졌으며, 그것을 통해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쓴다는 것은 사실 이 작은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는 고등한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타의 다른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고 무엇을 쓰는 것이 그리 쉬운 일도 아니다. 강권적인 쓰기 교육을 받지 않은 세대 혹은 그것을 뼛속까지 다해 거부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쓰기라는 활동은 생각보다 정말 어렵다. 작가들도 심지어 그것을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한다. 이 모든 이유에는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배경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매일 무엇인가를 쓰고 있다. 그것이 한 글자 한 글자 연필로 종이에 꾹꾹 눌러쓰는 행위만을 쓰기라고 하지 않고 광의로 보았을 때 더욱 그렇다. 가령 연인들끼리 매일 주고받는 소셜 미디어 속 문자들은 말 그대로 시다. 그들의 대화를 엮어낸다면 그것이 시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매일 사랑을 속삭이기에 우리는 매일 시인이 된다. 직장인들은 보고서를 쓴다. 그 보고서를 통해서 자신의 업무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꼭 문학적이지만은 않더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으로서의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쓰기 활동이다. 그 외에도 정말 많은 쓰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일면 우리는 쓰기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봄직 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쓰기는 나의 역사를 기록하는 쓰기다. 나와의 대화, 내 내면을 남기는 것, 나의 인생 이야기를 스토리 텔링하는 쓰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쓰기가 완성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일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의 쓰기다.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솔직 담백하게 나에게 남기고 싶은 글을 쓰면 된다. 또한 가장 기본이 되는 쓰기 연습일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이 조차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신과 의사로서 아웃풋 분야에서 명성이 있는 가바사와 시온이라는 작가는 그의 저서 '아웃풋 트레이닝'에서 아웃풋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하였다. 그러면서 쓰기가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하루에 3줄만이라도 써보라고 권장한다. 이것이 간단하면서도 최고의 아웃풋 훈련이라고 소개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가수는 아니지만 가끔 노래를 할 일이 있어서 노래 연습을 하거나 연설을 할 일이 있어서 발표 연습을 할 때가 있다. 이때 내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이 의외로 효과가 좋다. 내가 듣는 내 목소리와 남이 듣는 내 목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면 깜짝 놀라곤 한다. 마찬가지로 일기는 제일 먼저 내가 듣는 내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어느 정도 된다면 비로소 남이 듣는 내 목소리들 들어볼 필요가 있다. 연습한 문장을 블로그나 소셜 미디어에 공개함으로써 비로소 짧은 문장이더라도 나의 쓰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나를 알리는 도구이면서 가장 품격 있는 도구다.


운이 좋게도 브런치 작가라고 하는 타이틀을 얻었다. 거절 메일을 몇 차례 받고 나서야 이룬 것이지만 덕분에 나는 공식적으로 매일 쓸 수 있는 좋은 도구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맞춤법 검사 같은 툴은 꽤나 유용하다. 덕분에 매일 일기를 브런치에 적고 맞춤법 검사를 한 후에 그것을 다시 휴대폰으로 옮겨서 저장해 둔다. 예전에는 노트에다 수기로 썼지만 시간을 절약하고자 키보드를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훨씬 좋은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야 된다는 부담이 생기면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인간이란 참 나약하기 그지없어서 적당한 고통을 주어주면 계속 도전의식이 생기지만 너무 어려운 것을 처음부터 마주하면 으레 겁먹고 포기하기 마련이다. 결국 글쓰기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따라온다. 이렇게 3줄이라도 적어보기 시작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쓰게 되고 쓰는 근육이 생기면 긴 글도 금세 써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계속해서 쓰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이건 내 영역이 아니라고 포기해 버린다. 그럴수록 우리는 써야 한다. 한 문장이라도 좋으니 써야 한다. 씀으로써 비로소 나의 존재가 남겨지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1922년 도쿄의 한 호텔에서 남겨준 쪽지가 2017년 무려 110만 유로에 낙찰되는 사례가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짧은 메모("평온하고 소박한 삶이, 성공을 추구하며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삶보다 더 행복하다.")는 여전히 남아있다. 더불어 그 메모를 남기려는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무려 110만 유로에 낙찰될 수 있었다. 그의 시신은 이미 원자 단위로 쪼개져 지구 대기 어딘가 혹은 우주 어딘가로 흩어졌을지 모르지만 그의 쪽지는 최고의 보관 장소에 인류의 유산으로 여전히 남겨져있을 것이다. 우리 역시 언젠간 혼백이 다 흩어지는 죽음과 종말을 맞이할 운명이다. 하지만 우리의 글은 그렇지 않다. 이 글 역시 나의 사후 브런치에서 내 계정을 굳이 삭제하지 않는다면 사이버 공간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브런치가 그렇게 친절할까 하는 생각에 이 모든 글들을 출력해서 남겨두어야지라는 생각도 한다. 늙어서 은퇴하고 나면 모두 다 필사를 해서 옮겨 적어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써 놓지 않으면 그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쓰기는 가장 품격 있게 나를 남기는 방법이다. 스스로 영원을 사는 방법이다. 더불어 인간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도구이다. 그런 쓰기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얼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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