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의미 있는 일일까?
사진: Unsplash의NASA Hubble Space Telescope
나는 삶이 몹시 피곤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런 과정이 몹시 고결한 인간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선민사상에 불과하다. 되레 인간은 원래 동물보다 더 하찮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오직 인간만이 같은 종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정말 의도를 갖고 죽이는 종이지 않는가.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원죄 이후 최초의 자범죄인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인간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이 도대체 동물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 기독교적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창조된 자로서의 의미를 찾는 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결코 처음부터 인간이 고결하다는 식으로 단정 짓고 시작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일까. 의미를 찾는다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하겠지만 의미가 생각보다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종종 두렵기도 하다.
최근 재정적 문제로 인해 살면서 처음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돈은 모든 의미를 집어삼키는 블랙홀 같은 존재였기에 터부시 하지는 않지만 의미로 돈을 덮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삼가 왔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했던가. 돈이 궁해지자 의미고 뭐고 정말이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돈을 가장 쉽게 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니 마침 미 대선으로 전 세계 시장이 요동칠 것 같아 투자를 해보기로 했다. 시드머니는 1,400만 원.
초심자의 행운이라도 되는 것일까. 나는 꼬박 2주 만에 100만 원 정도를 벌었다. 주식으로 83만 원을 코인으로 20만 원을 번 것이다. 너무 쉽게 돈이 벌렸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스마트폰을 쥐고 그저 터치 몇 번을 하고 기다렸을 뿐이다. 이것을 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의미를 찾지 못했다. 되레 지금까지 내가 숭고하다고 믿으며 해왔던 모든 일들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리는 경험을 했다.
돈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돈이 의미가 되고 목적이 되는 순간 그 거대한 블랙홀은 걷잡을 수 없이 삶의 다른 의미들을 삼켜버린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빨려 들어간 의미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그렇게 돈이 삶을 잠식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공허한 빈 공간으로 삶이 채워지는 것이다. 진정한 무의미다.
사건의 지평선 앞에 섰다.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중력으로 한없이 떨어져 나가는 나의 의미, 그 편린들을 온몸으로 막아내어 하나씩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돈 앞에서도 여전히 빛날 수 있는 유의미한 것들. 내가 그렇다고 믿기에 선택했던 것들.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나의 의미들이 내 앞으로 쏟아져 나왔고 이제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스러져 가려하고 있었다. 더해서 그렇게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의미들을 비웃는 존재들이 떠올랐다. 너만 잘났냐는 냉소를 보이는 염세주의자들. 결국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비관론자들. 돈이 제일이라며 돈 없으니까 의미 따위를 찾는 거라며 돈이 많으면 이미 의미를 초월한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물질만능주의자들이 숱하게 스쳐 지나갔다.
이제 돈의 중력에 바스라져 날카롭게 조각난 나의 의미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가며 나에게 생채기를 남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베이고 찔리고 박히며 내게 소중했던 것들이 되레 나를 괴롭히는 것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았나. 아빠라면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이든 했어야 했고, 해냈어야 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고, 모두가 마음껏 누리도록 해주었어야 했다. 나의 시답잖은 의미 찾기 놀이 때문에 결국 가족 모두가 어려움에 처한 것이다. 성공해서 돈이 넘쳐나는 수많은 아빠들에 비하면 넌 패배자야. 의미 따위로 핑계 대며 실패한 삶을 덮으려 하지 마.' 이런 생각이 들자 아팠다. 그 누구보다 빛나던 의미들을 찾았었기에 그것이 조각나고 바스라지자 그 무엇보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찔렀다.
하지만 오랜 시간 사유를 통해 단련된 나는 그 와중에도 내 눈앞에 펼쳐진 수없이 빛나는 의미 중에서도 유독 빛나는 별 하나를 주시할 수 있었다. 시간은 불가역적이다. 시간이 흐르는 방향에 대해서는 여러 논쟁이 있지만 적어도 시간은 거꾸로 흐르진 않는다. 그렇기에 내 앞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의미의 별 조각들 역시 그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이 또한 성장이다. 성장. 어쩌면 의미는 성장에 있지 않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내가 했던 선택들, 찾았던 의미들이 갑자기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사건의 지평선 앞으로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세심하게 조각 하나를 들여다본다.
첫 번째 선택의 별. 육아휴직. '우린 아파트 한 채 없어. 그러니 주담대 부담도 없으니 육아휴직을 써서 줄어든 급여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할 거야.' 아내와 나는 아파트 한 채 없이 무주택자로 살아온 십수 년의 시간이 되레 우리에게 운이 좋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바보들이나 다름없다.
두 번째 선택의 별. 제주로의 이주. '아이들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달라. 우리가 여러 혜택을 이용해 육지에 좋은 아파트를 산다고 해도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에 이렇게 자유롭고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줄 수 있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어.' 두 아이의 학창 시절 12년, 도합 24년을 미래에 오를지 확실치 않은 부동산 투자금의 기회비용으로 쓰기로 했다.
그 순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킴벌리 커버거의 시가 떠오른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아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몰랐기에 이 선택을 했다. 설령 지금 잠깐 상황이 어려울지라도 그 선택이 틀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이 선택 덕분에 나의 의미뿐 아니라 아내도, 우리 아이들도, 엄마도 의미를 찾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때 지금 아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돈을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돈을 벌고 갖추고 나서 그런 낭만을 찾아보자고 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더 지혜롭다고 믿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육지의 아파트 어딘가에서 뛰지 말라는 단호한 부모의 통제 아래 그림도, 춤도, 글짓기도, 축구도 없이 열심히 수학 문제집과 씨름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행이다. 그때의 내가 몰라서. 철이 없어서. 그래서 낭만을 쫓고 의미를 찾으려 할 수 있어서.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용기를 잃는 것이구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구나. 돈의 블랙홀에 모든 것이 삼켜져 버리는 것이구나. 그래서일까. 돈을 벌기 위해 매일 아침 출근길 버스에 지하철에 승용차에 몸을 싣고 도로 위를 달리는 어른들의 눈에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가 보이지 않고 공허한 어둠만이 있는 것은...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흐르던 빛의 조각들이 갑자기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시간은 불가역적인데. 블랙홀을 향해 나아갈 때보다 더 빠르게 더 선명하게 더 빛나며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나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의 상처가 다시 새살처럼 보드라워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해진다. 블랙홀은 작아지고 힘을 잃는다. 그렇게 점점 작아지는 블랙홀이 다시 별이 되었다. 아주 작은 별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분명 빛나고 있는 별이...
돈. 그 자체도 하나의 의미일 수 있다. 어쩌면... 그 작은 별을 키우고 키워 초신성이 되게 하고 끝내 폭발하여 블랙홀이 되게 하는 것은... 인간의 탐욕인 것이다. 내 우주의 어떤 별을 블랙홀로 만들어버릴지 아니면 조화롭게 흐르는 은하수로 만들 것인지는 결국 나의 선택이다. 내가 의미를 찾는 그 행위 속에 답이 있는 것이다. 다시 용기를 낸다. 지금 어려운 시기도 하나의 의미로 만들어 별로 띄워보기로 한다.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의미를 찾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분명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또 의미가 된다. 별이 될 것이다. 우리의 우주 속 어딘가에서 빛을 낼 것이다.
다행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몰랐기에. 우리는 이 아름다운 우주를 창조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