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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물 Jul 03. 2024

「Shinning road」 (술탄오브더디스코)

2024.07.03

https://youtu.be/05BWsYqMiYE?si=JRO6kffBPxY8ZOJy

뚜껑이 열린 차를 타고


제철 노래를 또 하나 낚아 왔다. 이 노래를 주위에 소개하면서 나는 ‘죠지의 <Boat>를 좋아한다면 무조건 좋아할 노래’, ‘뭍에만 살아본 사람이 만든 <Boat>’ 라는 식으로 죠지의 <Boat>를 끌어와 소개를 했는데, 두 노래의 감성이나 분위기가 일면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당장 여름 휴가 기간의 기차표나 누군가의 기깔나는 여행 브이로그를 찾아보게 된다는 점에서.


나의 까탈스러움을 고백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실은 마냥 행복한 이야기만 하는 노래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면 한동안은 즐거이 듣다가도 어느 순간 이 노래가 나와는 이역만리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만치 행복하지는 않은데, 그 순간부터는 노래가 더는 노래로 들리지 않고 자기최면 ASMR처럼 느껴져버린다.


어찌보면 이 노래도 내내 행복만을 노래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런데도 이 노래를 계속 듣게 되는 이유는 이 노래가 주는 현장성, 그러니까,정말로 뜨거운 도로의 한복판을 달리는 '뚜껑이 열린 차'에 앉아 있는 듯 느끼게 해준다는 점인 듯하다. 묘하게 열화된 사운드가 주는 후덥지근함과, 열렬한 확신과 축복을 담은 코러스 같은 것들이.


노래의 댓글창을 보면 이 노래를 결혼식 퇴장곡으로 썼다는 간증글이 더러 있다. 내심 감탄했다. 언젠가 내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그 아이디어를 베끼고 싶다 생각할 정도로. 정말 좋은 노래에는 반응이 아니라 사연이 달린다고 하던가. 노래와 큰 관련은 없을 수도 있지만 나의 사연도 치렁치렁 매달아 본다.


생이 하염없이 부끄러울 때도



6월의 중반도 지났다고 할 수 있으려나. 지났다고 해버리고 싶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힘든 시기의 기억을 휴지 구기듯 압축해서는 최대한 꺼내기 힘든 구석에 처박아두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이제 막 6월의 중반을 힘껏 구겨서 처박아두고 온 참이기 때문이다. 흉측하게 짜부라진 그 안에는 러브 버그, 초과 근무, 그리고 자책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요 며칠은 아침마다 죽어 있는 러브 버그를 쓸어내는 것이 업무가 되었다. 매일 쓰레받기를 두 번씩 비워냈다. 그래야지 겨우 사람 지나다닐 길을 만들 수 있었다. 주변에서 '그거 해봤자 또 쌓여요~.' 라든지, '그걸 왜 쌤이 다 해요~.' 하며 만류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매일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뺏기지 않으려 애썼다. 그 일은 요 사이 내가 유일하게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문득 올해 지도하는 밴드부 학생들에게 잘난 듯 했던 말이 떠오른다. '경험상 무대에 올라가서 스스로 '쪽팔리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무대를 망치게 된다.' 내 꼴이 꼭 그러했다. 수업이라고 아이들에게 떠들어대고, 학습지를 나누고, 피드백을 주고, 이 모든 게 부끄러웠다. 내 수업을 받는 아이들에게 떳떳하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힘든 반에 들어가면 45분을 버티고 오는 기분이었다. 풀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아이들이 던져대는 '이딴 것도 수업이야?' 라는 화살을 간신히 튕겨내다가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아이들이 벌떡 살아나는 것을 보면 마음이 꺾이는 기분이었다.  


멍하니 다음 학기 수업을 구상하는 때가 많았다. 다음 학기에는 이렇게 해야지, 이런 점을 꼭 고려해야지, 이런 활동을 해야지. 그러나 그 내용은 구체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막연히 성공적인 수업을 되찾은 다음 학기의 나를 상상하며 지금의 산적한 문제로부터 회피하려는 방어기제에 불과했다. 그 시간에 PPT를 손 보거나, 부족한 수업 시간을 꾸러 다녀야 했지만 도무지 그럴 수 없었다.


그런 와중이었다. 수행평거 발표 PPT를 완성해 제출한 학생이 짤막한 메세지를 함께 보내주었다. '항상 수업에 진심이신 OOO선생님 감사합니다.' 낯이 달아올라서 한참 동안 그 메세지를 턱을 괴고 쳐다봤다. 머릿속에서는 드르륵… 탁… 수업에 진심이신… 드르륵… 탁… 반복 재생이 멈추질 않았다. 과분하기도 한, 내가 덥썩 받아들려다가 팔이 부러져도 모자를 그런 말인데도.


발표 수행평가를 어떻게든 끝내고 온 참이다. 어떤 아이는 다음 수업에 사례로 쓰고 싶을 만큼 탁월하게, 또 어떤 아이는 찌끄린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대충, 그럼에도 어찌됐든 발표를 했다. 어떤 아이는, 한글 자모를 거꾸로 쓰거나 초성과 종성을 반대로 쓰는 일이 잦아 수업을 따라올 수조차 없는 어떤 아이는 방과후에 학교에 남아 만든 PPT를 보여주어 박수를 받기도 했다. 두려움이란 것은 시작하기 전이 가장 크다는 것, 그리고 정말 부끄러운 것은 두려움에 져 러브 버그를 치우는 청소부 같은 일로 물러서서 멈춰 서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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