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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의 노블 테라피 Jan 10. 2024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_사람은 변한다.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변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변했다. 세상의 첫 빛을 보게 됨과 동시에 변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2015년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 이후로 나는 완전히 변했다. 전생과 이생으로 구분하고 싶을 만큼. 생활이 변하고 일상이 변하자 미래에 대한 전망과 기대가 달라졌다. 생각과 사고와 가치관이 변했고 세상을 보는 눈과 세상을 듣는 귀가 달라졌다.


왜 나는 내가 되었나. 어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팔 년 전 난데없이 맞닥뜨린 불가피한 운명 때문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궁금해진다. 사람을 변화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왜 사람은 변하는 걸까. 사람은 어떻게 달라지는 걸까.


_'펄롱'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가장이다. 현실적이고 기민한 아내와 잘 키웠다고 자부하는 다섯 명의 딸이 있는 그는 "평범"하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p.22) 알았고, 사회경제적으로 모두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애써 지켜온 자신의 가정이 깨지지 않을까 "공연히 긴장"하고 불안해한다. 때때로 반복되는 삶에 환멸과 권태를 느낀 나머지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p.44)을 하기도 한다. 눈을 조금만 돌려도 목격할 수 있는 위태한 일상을 견디는 사람들과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자신의 처지에 막연한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뒤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p.24)힌다.


지극히 "평범한 마음"(p.71)으로 성실히 살아가던 '펄롱'은 어느 날 수녀원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충격을 받은 그는 깊이 동요되어 수없이 고민하고 매순간 갈등한다. 소설은 '펄롱'의 곁을 지키며 그윽한 시선으로 그가 변화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생각했다. 맞아, 누구나 그런 일을 겪으면 혼란스러울 거야. 게다가 '펄롱'은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마음이 더욱 술렁이고 요동치겠지. 그런 사건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법이니까. 어떤 식으로든.


책장을 넘길수록 점점 심장이 두근두근거렸고 결말에 이르렀을 땐 한동안 꼼짝할 수 없었다. 희망차지도 낙관적이지도 않은, 오히려 혹독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한 소설의 마지막에서 나 역시 '펄롱'처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p.121)고 싶었다. 사람에게는, 삶에는 그럼에도 끝내 단념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남아 있으리라고. 몇 번이고 결말을 반복해 읽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 책의 처음으로 돌아갔다. 조심스레 헤아리고 차근차근 되새기려 노력했다.그런 과정을 거쳐 또다시 결말에 이른다면 어쩐지 전보다 조금 나은 '나'로 변화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마음"이 들었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p.120)


_"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이루어내는 "하나의 삶"과 그것으로 인해 또다시 이루어질 또다른 "하나의 삶". "사소한 것들"이 이루어냈고 또 이루어낼 무수한 "하나의 삶"들. 그러니까 사람을 변하고 변화하고 달라지게 만드는 것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었다. '보잘것없이 작거나 적은' 것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었고 나를 변하게 만든 것이다. 앞으로도 변화하게 만들 테고. 그러니 어찌 아래와 같이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p.121)


 몇 번이고 정성스럽게 반복해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소설이다. [맡겨진 소녀]와 마찬가지로. 사랑합니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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