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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의 노블 테라피 Sep 07. 2024

"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다"는 말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_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내가 가지게 된 어떤 생각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속 어딘가에 발아되어 도사리고 있다가 불현듯 스치는 그 생각은 비밀이 되었다. 소중히 간직하고픈 비밀은 아니다. 그 반대다. 할 수만 있다면 흔적도 없이 삭제하고 싶은 비밀이다. 그래서 그것은 무조건 내 안에만 있어야 한다. 절대 밖으로 새어나와서는 안 된다. 억누르고 감추고 숨겨야 한다. 일기장에도 적을 수 없다. 글자로 형상화된 그것을 내 눈으로 보는 게 두려워서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일기장을 펼치는 순간 하늘이 내려다보고 땅이 올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가끔 너무 외롭고 사방이 막힌 듯 막막할 때면 이런 생각을 한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라면-정확하게는 내 딸과 같은 형편에 처한 누군가의 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조심스럽게 그 비밀을 꺼내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그라면 이해해줄지 모르니까. 어쩌면 그도 나와 같은 비밀로 외롭고 두렵고 괴로워했을지 모르니까. 슬픔은 슬픔을 알아보기 마련이니까. 그게 흔치 않은 슬픔일수록 더더욱 그럴 테니까. 이 소설에서 "슬픔으로 밀착"된 지우와 소리, 채운처럼. 그들이 각자의 비밀로 서로의 비밀을 돕는 것처럼 말이다. 


_예고 없이 맞닥뜨린 시련을 온몸으로 지나오면서 나는 '동병상련'이라는 사자성어에서 위로를 받았다. 뜻밖이었다. 그 고리타분하고 구태의연한데다 케케묵은 말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기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얻게 될지 몰랐다. 나의 처지와 슬픔이 흔치 않기에,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었기에 더 그랬을까. 그래서 나는 책을 읽었다. 자연스러운 수순이고 당연한 전개였다.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람들이 책에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흔치 않은 슬픔을 가진 책 속 인물들에게 내 비밀을 털어놓는다. 속으로만 비밀스럽게 털어놓되 거침없이 풀어놓는다. 그들은 이런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 또한 그들의 슬픔과 비밀을 고스란히 공감하고 받아들인다. 아마 그들 역시 내가 그러하리라는 믿음이 있을 테다. 이렇게 그들과 나는 동병상련하는 사이이고, 이 관계는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그들과 나는 슬픔과 비밀로 "밀착"되어 있으므로. 그리고 "삶은 가차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 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p.239)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점에서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_"서로 시선이 꼭 만나지 않아도, 때론 전혀 의식 못해도, 서로를 보는 눈빛이 얼마나 꾸준히 그리고 고요히 거기 있었는지 보여주는 거였다.(...)그렇게 그저 시점이 바뀐 것만으로 지우가 무언가 알아챘음 싶었다. 비록 그게 지우가 이미 아는 걸 한번 더 알려주는 거라 해도. 그런 앎은 여러 번 반복돼도 괜찮을 것 같았다."(p.132)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누군가를 잡은 손과 놓친 손이 같을 수 있다'고."(p.191)


"지우는 그보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이야기, 그래도 괜찮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떠나기, 변하기, 돌아오기, 그리고 그 사이에 벌어지는 여러 성장들. 하지만 실제의 우리는 그냥 돌아갈 뿐이라고, 그리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당시 자기 안의 무언가가 미세히 변했음을 깨닫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런 것도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이 무척 올래 걸리는 데다 거의 표도 안나는 그 정도의 변화도? 혹은 변화 없음도? 지우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다만 거기에는 조금 다른 이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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