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내가 나를 계속 믿어주면 좋겠습니다."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최진영

_"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십니까?"라는 (자신의)질문에 철학자 에밀 시오랑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나를 견딥니다."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를 견'디는 사람이다. '나를 견'디는 것이 지긋지긋하지만, 그럼에도 견디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애를 쓴다. 무엇을 견디느냐고? 자기혐오, 자기검열, 자기불신, 자기연민, 자기비하, 자기낙인, 슬픔, 불안, 의심, 수치, 자조, 분노, 허무, 두려움, 외로움, 죄책감, 무력감, 막막함을 견딘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견디고, 나를 사랑하고 싶어하는 나를 견딘다. 어떻게 견디느냐고? 나의 몸과 정신으로, 그러니까 나로써 겪고 체험하면서 어떻게든 견디고 있다. 왜 견디느냐고? 모르겠다. 왜 견디는지 모르면선도 견디고 있다. 견디다 보면 알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서.


감히 짐작하건대, 작가 역시 자기 자신을 견디는 데 인이 박힌 사람 같다. 그의 글을 읽으면 알게 된다. 스스로를 견디느라 매순간 고투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아무도 모르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분투를. 어둡고 외진 곳에서 몸부림치고 버둥거리는 처절한 몸짓을. 그런 그가 말한다.


_"일단 살아봐야 한다", "살아보자고, 살면서 찾아보자고", "살아 있어달라고 말한다", "정신 없게라도 살긴 살아야 해", "일단 살아야 한다"고.


조금씩 변형은 있지만, 반복적으로 말한다. 끊임없이 곱씹는다. 주문을 걸듯, 최면을 걸듯. 당부하듯, 어쩌면 간청하듯. 그 말이 내 가슴에 와 콕콕 박혔다. 그리 대단한 말도 아닌데. 어디에서든 들을 수 있는 말인데도 그랬다. 왜 그랬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저는 주기적으로 우울감이 짙어지고 정서적으로 불안해지면 위험한 생각도 할 만큼 취약합니다. 그리고 그런 때가 오면 웅크리고 앉아서 나를 단단히 껴안고 버티기만 하면 다시 좋아진다는 걸 기억하고 믿을 만큼은 강한 사람입니다.(...)나는 나를 믿어요.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오직 나를 믿고 있어요. 부디 내가 나를 계속 믿어주면 좋겠습니다. 실망하면 어떤가요. 어차피 나만 아는 일. 괜찮을 겁니다."(p.218)


_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나는 "결국 나여서 힘을 내고 기를 쓰고 해내"고 있다.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오직 나를 믿고 있"기에 나를 견디고 있다. 어제의 내가 그랬듯. 운이 좋다면 내일의 나도 그러할 것이다. "부디 내가 나를 계속 믿어주면 좋겠습니다." 제발, 부디부디, 원컨대.


"나는 나 때문에 지치고 나 때문에 쪽팔리고, 아무리 실망하고 후히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해도 결국 나여서 힘을 내고 기를 쓰고 해내는 것 같다."(p.215)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이 없어도 가능한 삶이 있다. 있어야 한다. 그래야 죽지 말아달라고 말할 수 있다. 삶에 이유나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런 것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살아보자고. 살면서 찾아보자고."(p.78)


"멀리 떨어져서, 거시적으로, 시공간의 의미조차 없는 우주에서 나를 바라보면.....나는 없다. 나는 먼지조차 아니고 0.000000000001초도 아니다. 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여기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기 분명히 있다. 이해 불가능한 세상을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사람들."(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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