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다음], 희정
_죽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70퍼센트를 차지하고 나머지가 '타자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죽음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천국이니 지옥이니 연옥 같은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일 뿐, 죽으면 그것으로 끝,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다. 없음. 절대적이고 완전한 무(無). 철학에서 말하는 허무(虛無). 그래서일까,
_'나의 죽음'을 떠올리면 두렵다기보다는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편안함인지 알고 있다. 해방감이다. 죽음으로서만, 죽음을 통해야만 비로소 벗어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뒤부터 나는 '나의 죽음'을 자주 생각하고 때론 간절히 원한다. 그러니까 나에게 죽음은 절대적 허무(虛無)인 동시에 완전한 해방인 것이다. 무덤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 금세 마음이 풀리곤 했다고 말한 이가 에밀 시오랑이던가.
하지만 나는 그 '다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죽은 다음" 남겨질 "사별자"(p.45)의 그 '다음'은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애통, 회한, 그리움. 사별, 하면 흔히 떠오르는 감정으로는 그 '다음'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유독 많은 이가 입관식에 참석했다. 내내 눈물을 보이던 고인의 막내아들은, 장례지도사가 메이크업 도구를 꺼내자 울음을 그치고 입을 열었다.
"어머니 눈썹 예쁘게 그려주세요. 눈썹에 신경을 많이 쓰셨어요."
병실에 있을 때도 지인들이 병문안을 오는 날이면 아들이 눈썹을 그려줬다고 했다.(...)노는 손 하나 없어야 하는 분주한 입관실에서, 평소 고인의 아들이 눈썹을 그려주었다는 말에 장례지도사는 붓질을 멈추고 붓을 내민다. 허공에 들린 붓을 본 아들은 주춤하더니 이내 어머니에게 다가가 눈썹을 그린다. 그의 얼굴을 타고 눈물이 툭 떨어지는 걸 고인의 발치에서 본다. 이거 슬픈 직업이구나."(p.94-95)
생생해졌다. 나의 입관식을 상상하니 '나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별자의 그 '다음'이 생생해졌고, 지인의 죽음 이후 사별자가 된 나의 그 '다음'이 몹시도 생생해졌다. 생생해지니 내 오랜 믿음에 의문이 든다. 죽음만이 해방으로 가는 길일까. 모르겠다. 이 의문을 풀어가는 여정이 내 남은 삶이 되겠지. 아무튼 뜻밖이었다. 입관식 현장, 아니 "장례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이야기에서 이런 울림을 받을 줄 몰랐다. 장례 노동이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 "기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일, "누구나 들어올 순 있어도 아무나 할 순 없"는 일이어서 그랬을까. 그리고,
_나머지 30퍼센트, '타자의 죽음'. 나에게 '타자의 죽음'은 "그게 나였을 수도 있"는 죽음이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요즘 세상이기도 하지만, 죽음의 본질을 따져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죽음은 운명과 무작위, 불확실의 영역에 속하므로 "그게 나였을 수도 있"는 확률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므로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와 타자, 우리 모두의 "죽은 다음"을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여기서 "죽은 다음"은 곧 사는 일, 기왕이면 잘 사는 일, 이왕이면 누구에게나 좋은 삶과 같은 뜻이라는 것을.
"값싼 옷이 값싼 수의가 되고, 좁은 집은 좁은 목관으로 이어진다. 어찌 보면 세상사 순리다. 다만 결관 끈까지 가난할 수 있다니. 부의 불평등이 너무도 구체적이라 슬플 뿐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나. 아니, 악마도 가난의 디테일을 이길 수 없다."(p.261)
_"있었다"(p.14)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곱씹었는지 가슴에 콕 박혔을 정도다.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 그리고 "있다가 없어진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