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없는 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묵묵], 고병권

_나는 인생의 4분의 3을 '다수자(라고 불리는)'의 편에 속해 살아왔고, 나머지 4분의 1에 해당하는 10년 가까이를 '소수자'의 삶에 편입되어 살고 있다. 확률로 따지면 100만분의 1, 전세계 100여 명 남짓한 극희귀난치질환자에 포함되니 이보다 더 '소수자'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정확하게는 딸아이가 '소수자'의 삶에도 편입된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문을 여는 데만 나는 7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감당하기 힘든 불행을 수용하는 데는 오랜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했고, 그것은 내가 인간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문을 열었으니 이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갈 일이 남았다. 어쨌든 앞으로 '소수자'의 삶도 함께 살아야 하는 나로서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 예상되는 그 행로를 인도해줄 무언가가 절실했고, 때마침 운명처럼(?)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_[묵묵]은 우리 사회에 엄존하는 많은 '소수자' 중에서도 장애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원해서 장애인이 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알고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났든 후천적인 사고에 의했든 장애인은 그의 의지에 반하여 그런 운명이 주어지게 된 사람이라는 것을.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잊고 지내는(혹은 알고 싶지도 않을) 엄연한 사실이 있다. 그런 운명은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것. 극단적인 상상을 한다면, "장애인을 보며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런 것을 표출하면 자신이 속물처럼 보일까봐 일부러 환하게 웃는 세련된 위장술을 발휘"(p.65)하던 사람이 불과 몇 시간 뒤 갑작스런 사고를 당하거나, 그의 가족이 비슷한 일로 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전 몰상식한 차별 조장 발언으로 국민을 이간질했던 모정당 대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사실을 단 한번도 자기 일로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게 분명하다. 하기야 비단 그 뿐이겠는가. 그를 비난하는 나 역시 7년 전 불행이 닥치기 전에는 장애인과 그들의 삶이란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 여겼으니까.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당시 장애인은 내 사고의 범위 밖의 일이었다.

집을 나서서 도로를 걷고 건널목을 건너고 지하철을 타는 일, 배우기 위해 학교에 가고 일하기 위해 직장에 가는 일, 마트에서 장을 보고 쇼핑몰에서 옷을 사는 일, 산책을 하는 일...'비장애인의 삶에서는 당연한 출발점이 되고 이미 소유한 것처럼 보이는 권리들이 장애인에게는 도달점이 되고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하는 권리(p.208)'라는 것, 오랜 세월 장애인들은 계속 울부짖어 왔지만 그것을 듣지 않으려는 과거의 나 같은 사람들이 그들을 "목소리가 없는 자"로 간단히 치부해왔다는 것.

"'목소리 없는 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고의로 침묵하게 되었거나, 듣지 않고 싶어 해서 들리지 않게 된 자들이 있을 뿐이다."(p.51)

"도로를 설계하며 턱을 만들 때, 지하철 이동통로를 설게하며 계단을 통해서만 이동하게 할 때 국가는 장애인이 이동할 수 없도록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공간의 설계 자체가 장애인들의 인신을 한정하고 속박하는 행위가 아닌가.(...)이것은 단순한 '방치'가 아니라 적극적 '추방'이다."(p.210)
- 여기서 '국가'로 지칭한 비장애인의 편협한 인식으로 인해 평생 갇혀 지내야 하는 이들이 더욱 "장애화"된다는 것. 그들 개인의 불운일 뿐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비정할 뿐아니라 불공평 현실이다.

장애인이 될 수 있었지만 운 좋게 비켜나간, 그러나 언제든 그런 운명을 만날 수 있는 비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장애인이 된 이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 마치 외줄타기를 하듯 그 위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정작 걷고 있는 당사자는 까맣게 모르고 있는 아슬아슬한 그 경계를 생각했다.

한때 나는 '소수자'를 "목소리가 없는 자"라고 여겨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그러나 간사하게도 나와 내 가족이 '소수자'의 범주에 발을 들이니 너무나 오래 울부짖어 쉬어버리고 작아진 그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_니체는 "다른 사람의 피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p.124)라고 말했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인간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라는 사실이 새삼 서글프게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