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랄 400
세상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디딤돌 역할을 해준 책이 있다. 바로 사피엔스다. 누군가 소설이나 수필이 아닌 비문학 독서를 시작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며 추천을 요구할 때, 나는 항상 사피엔스를 먼저 추천한다. 그만큼 이 책은 역사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인류가 어떤 믿음으로 어떻게 엮여 살아가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후 다른 비문학 책들을 읽을 때, 마치 기둥 같은 존재로 지혜의 바탕이 된다.
그 후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등도 손에 들고 탐독했다. 사피엔스가 역사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도록 돕는 책이라면, 이 두 책은 현재를 토대로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다. 특히 호모 데우스는 약간의 공포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넥서스, 이 책은 이제 현실이 되어버린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 인류가 이룩한 축적된 정보와 방향성이 혁신적인 기술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야기한다. 두려움을 뛰어넘은 경고에 가깝다.
나는 AI 기술을 많이 활용한다. 콘텐츠 제작과 아이디어 도출, 생산성 향상을 위해 아낌없이 이용한다. 스튜디오의 인원 규모를 2인 이상으로 키울 생각이 없기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기술을 받아들이고 있다. AI는 나의 시간을 아껴주고, 생산성과 창의성을 높여준다. 그리고 AI를 도구 삼아 만든 콘텐츠들은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준다. 이 좋은 것이 우리 인류를 없애버린다고? 이 경고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너무 AI 추종론자처럼 보일까 봐 생각을 다시 꺾어본다. 그래도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엄청난 혁신이다. 그리고 이후 AI가 포함되어 새롭게 정의될 세상의 모든 서비스, 정치, 의학, 법률 등을 생각해 보아도, 이건 혁명 그 이상이다. 그가 우려하는 디스토피아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한편, 이런 생각도 해본다. 우리가 디스토피아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이야기할 때면, 너무 국가적·인류적인 이야기로 단정 짓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마치 살아본 것처럼 지옥 같은 시절이었다고 묘사하는 걸 보면, 개인의 입장에서 그때가 과연 지옥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자들은 큰 사건들을 토대로 마치 시민들이 지옥 같은 일상을 보냈을 것처럼 묘사하지만, 그 시절을 직접 겪은 많은 이들은 오히려 행복과 풍요의 시대였다고 말한다. 꿈꿀 수 있었고, 더 나아질 수 있었던 그 시절을 좋게 추억한다.
하라리의 예언처럼, 넥서스의 이야기도 국가와 정치, 인류의 지구 공헌도 측면에서는 어둡고 우려스러울지 모르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AI 기술이 기아를 해결해 줄 수도 있고, 교육의 질을 향상시켜 세계의 균형을 맞춰줄지도 모른다. 불합리한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주어 기업 성장과 수익 창출을 위해 인간의 삶이 희생되는 것을 막아줄 수도 있다.
핵미사일은 이미 우리에게 있고, 그 발사 스위치도 누군가는 누를 수 있다. 그게 독재자든 평화주의자든 결국 Go or No Go 결정을 내릴 것이다. 인간은 비완벽하며, 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위험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도 인류를 해칠 결정을 망치나 톱과 같은 도구에게 맡기지 않았다. 기술의 발전과 상관없이,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인간에 의해 결정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총칼의 발전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책 초반부에 민주주의의 약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약점을 통해 생겨나는 양극적인 정치 방향이 소름 끼치게 한국의 상황과 맞아떨어져서 너무 흥미진진하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