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 합병 이야기는 작년부터 나왔으며, 오늘부로 회사 합병에 대한 건이 최종 확정되었다. 본격적인 합병 작업은 연말부터 시작될 예정이다라는 내용이었다.
본인 회사 합병 소식을 신문 기사를 보고 알게되었다는 친구에 비하면 양반일테지만, 퇴근 후 이런 통보..장난해? 잘 다니고 있던 회사가 뚱딴지처럼 합병이라뇨...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였으며, 더 좋을 일만 가득할거라고 토닥이는 CEO의 말은 귓전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한 당혹감과 불안함이 온 몸을 옭아매었다.
한동안 사무실 전체는 혼란의 카오스였고 우울했다. 각자 본인 일들로 바빠서인지 혼란스럽지만 혼란스럽지 않은?! 이상한 기류를 유지한 채, 4개월이 흘러 우리는 12월을 맞이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동료들을 떠나보냈다
다행이도 그날의 혼란스럽던 콜 이후, 합병에 대한 움직임은 미비했다. 하지만 12월이 다가오자 모든 것들이 급격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회사의 크고 작은 시스템부터 웹사이트까지, 우리 브랜드이지만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생소한 컬러와 분위기로 회사가 바뀌기 시작했다.
합병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은 굉장했고, 덕분에 연말 분위기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애써왔던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어쩌면 합병이라는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을 수 있겠다 스스로 위로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였던 것 같다.
12월 23일 오전 8시.
회사 전체 인원이게 이메일 한 통이 전달되었다.
"이 이메일을 받는 모두는 지금의 회사를 있게 해 준 크고 작은 영웅들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합병이 되며 모기업과 보직이 중복되거나 몇몇 마켓이 정리됨에 따라 부득이하게 구조조정을 진행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사내 블로그를 통해 확인하길 바래"
그렇게 나 그리고 우리는 크리스마스 전전날, 30%이상되는 동료들을 떠나보냈다. 모두가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어떻게 어떤 위로를 해야할지도 모른채,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2019. 나 너무 심난해
사람은 간사하다고, 동료들과의 이별에 가슴 아프다가도 다가오는 현실에 다부져지는게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합병은 고됐다. 모두가 예민해진 상태에서 모든 걸 모기업의 문화와 시스템에 맞추는 작업은 정말이지 어려웠다. (TMI 이지만, 심지어 한번은 인보이스를 보내다 울컥한 적도 있었다)
우리 마켓은 작년보다 적은 마케팅 버짓을 부여받았지만, 마케팅 활동을 통해 만들어내야 하는 순수익은 작년보다 25% 높았다. 올해의 KPI를 듣자마자 무력감이 몰려왔다. (25% 실적 증가하면 스스로에게 파티를 열어줄 생각이다. 그럴일이 .. 거의 없겠지만)
합병 후, 프로젝트는 2배 정도 증가가 되었고, 대부분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업무 들이 태반이다. 슬프게도 실무자 수는 너무 제한적이라 한 사람이 6,7개의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맡게 되었다. 업무 프로세스도 제대로 파악을 못했는데 바로 실무에 뛰어들다보니 잡음도 많아지고 스트레스는 물론 자존감까지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이게 최선이야?','이거 설마 모르고 하는거야?', '확실해? 증명해봐' 라는 소리를 매일같이 들어대니 내 멘탈도 동료들의 멘탈도 남아나지가 않았다. (증명해주고 싶은데 새로운 시스템을 몰라서 허우적 거리는 난 안보이니..)
그렇게 4개월이 지나고, 4월 어느 날 드디어 한계가 다달았다.
"저 그만두고 싶어요. 정말 너무 힘들어요"
하지만 난 쫄보라는
그만 두고 싶다고 말한 순간부터 많은 이들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본사. 지렁이도 꿈틀한다는 걸 보여줘야하는 것일까?
이 포스트를 2019년에 마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2020년 5월이 되었다
2019년 4월 쫄보였던 나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었다. 하지만 11월 결혼을 하게 되며 퇴사는 무슨, 하루에도 참을 忍 을 5번씩 새기며 꾸역 꾸역 내 자리를 지켰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동물이라는 말에 공감하는 것이 2019년 초반에는 심적으로 매일 매일이 도망가고 싶은 하루였다. 하지만, 꾸역꾸역 견디다 보니 소소하게 웃는 날도 생기고, 한 없이 어렵기만 했던 새로운 시스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두려움보다 의문감이 많아진 때가 왔다.
하루 하루는 느리게 가는 것 같지만, 멀리보면 이보다 더 빠를 수 없는게 우리의 하루. 시간은 흐르고 흘러 2020년 5월이 되었다.
2019년의 나는 회사 합병으로 인해 동료들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그들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 글을 초안으로만 남겼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년만에 다시 이 글의 초안의 꺼내든 나는 여전히 같은 아픔을 겪고있다. 동료들을 떠나보내야만 하고 나도 아마 멀지 않은 미래에 그들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왜인지 묻는다면?
2020년 상반기는 2019년 합병보다 더 처절했다. 이번엔 우리만 처절했던 것이 아닌, 전 세계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그로 인해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모두를 한 배에 태우고 가려는 회사의 노력은 코로나를 이길수는 없었던 것 같다.
바로 몇 일 전, 5월 황금연휴가 시작되기 전... 많은 동료들이 다시 떠나갔다.
2019년에는 세계적으로 경제가 마비된 상황은 아닌지라 떠난 동료들이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있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절망적이고 더 가슴이 아프다.
누군가의 소중한 아빠일수도 엄마일수도, 집안의 가장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또 한 번 떠나갔다.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니 잘 풀릴 것이라는 마음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지만, 코로나가 풀리기 전까지 잘 견딜 수 있을 지 우선 그게 걱정이다.
그들도 걱정이고 나도 걱정이고 모두가 이번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을 지 솔직히 무섭고 두렵다.
회사를 떠나야 했던 동료들도 그렇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그 누구하나 피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어 무섭다.
예전에 아빠는 '할 수 있다'를 마음속으로 하루에 20번씩 외치면, 무엇이든 해쳐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했는데...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다'를 마음속으로 20번씩 외치면, 정말 우리는 이 난관들과 무서움들을 다 떨쳐내고 다시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