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딴 사과로 굽는 애플파이
내일 뭐하지? 늦은 밤, 휴가 온 사촌동생과 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내가 공부를 시작할 무렵, 나와 연년생 자매처럼 자란 사촌동생은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일이 바빠 한 번도 제대로 된 휴가를 간 적이 없던 그 애가 처음으로 짬을 내서 뉴욕에 왔다. 한국에 갈 때마다 만나기는 했지만 둘이서 이렇게 시간을 같이 보내는 건 어린 시절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그간 쌓인 이야기를 하느라 그 애가 뉴욕에 온 첫날 밤부터 우리는 새벽 다섯시까지 수다를 떨었다.
그 때 나는 평일에는 매일 밤 열시까지 리허설이 잡혀 있어서, 주중에는 사촌동생과 시간을 보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그 애는 혼자서 곧잘 돌아다녔고, 밤에 리허설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신나게 들려주었다. 야식을 먹으며 사촌동생과 밤새 수다를 떨다 보면 피로가 가시곤 했다.
모처럼 내가 노는 날을 맞아 우리는 어디 근교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나이아가라는 어때? 그건 어려울 것 같았다. 일정이 너무 임박해서 이미 예약이 다 마감된 상태였다. 조금 더 일찍 계획을 세워둘 걸, 후회가 됐다. 뭔가 특별한 걸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러다 삼촌에게서 연락이 왔다. 앵두가 죽었다고. 앵두는 사촌동생이 어릴 때부터 키우던 앵무새였는데, 휴가 오기 전부터 많이 아팠다고 했다. 미국에 있는 사이에 죽으면 어쩌지. 휴가 오는 길이 많이 망설여졌다고 했었는데 앵두는 결국 그 날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다. 앵두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한 걸 마음 아파하면서 사촌동생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그 애를 어디 좋은 데 꼭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았다. 모처럼의 휴가가 너무 슬퍼지면 안되니까.
그럼 우리 사과 따러 가자!
내가 처음 사과 과수원에 가본 것은 몇 년 전이었다. 선배 언니를 따라 근교 과수원에 가서 사과를 땄는데, 미국에 온 이래 처음으로 빡빡한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본 날이었다.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서는 가을이면 애플피킹을 가는 것이 흔한 일이라고 하는데,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게는 너무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가을이면 자꾸자꾸 과수원 풍경이 생각날 만큼 나는 그 날이 좋았다. 마침 사과가 제철이었다.
아직 서늘한 아침, 우리는 새벽 기차를 타고 과수원에 도착했다. 도심에 있을 때는 계절이 바뀐 걸 실감하기 어려웠는데, 근교로 조금만 나가니 온통 가을이었다.
다행히 사과 철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알이 굵은 사과가 많이 남아 있었다. 사과 종자마다 나무의 키가 제각각이어서 어떤 건 까치발을 하고 손으로 따기도 하고, 어떤 건 끝에 작은 바구니가 달린 장대로 땄다. 우리 둘만 있다시피 한 이른 아침 과수원에서 우리는 깔깔대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사과를 땄다. 지난 밤의 슬픔은 잠시 묻어두고서.
햇살이 퍼지고 과수원이 붐비기 시작할 즈음 자루 두 개가 가득 찼다. 간식으로 과수원에서 파는 애플 사이다랑 애플 사이다 도넛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탔다. 일찍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였더니 자꾸만 눈이 감겼다.
그 주말, 우리는 잔뜩 따온 사과를 가지고 파이를 만들었다. 직접 뭘 만드는 것보다 남이 해주는 걸 먹는 게 좋다던 사촌 동생도 막상 만들기 시작하니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감자칼로 사과를 일일이 깎아 큼직큼직하게 싼 뒤 달달하게 졸여 미리 사다둔 냉동 생지에 얹었다. 파이가 오븐에서 익는 동안 온 집안이 시나몬과 넛멕 향으로 가득 찼다.
모양은 투박하지만 속이 꽉 차 묵직한 파이를 들고 우리는 센트럴 파크로 갔다. 마침 뉴욕에 잠깐 다니러 온, 나의 소중한 다른 친구도 함께. 파란 잔디, 빨간 담요 위에 앉아 우리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파이를 먹었다.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