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입관

by 하린

취직을 하지 못한 채

나는 다시 실습을 받고 있다.

이미 한 번 지나온 과정이지만

추가금을 내고 다시 들어온 자리다.

배우는 입장이면서도

어딘가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시간.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장례식장에 나왔다.


어제까지는 고인이 없었다.

실습생으로서는 잠시 숨이 놓이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오늘, 빈소 현황을 확인하니

세 분의 고인이 들어와 있었다.

입관 시간은 오전 열 시와 열한 시.

막연히 흘러가던 하루가

갑자기 구체적인 시간표를 갖게 되는 순간이었다.


안치실로 내려가기 전부터

몸이 먼저 긴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냄새가 먼저 밀려왔다.

마스크를 써도 가시지 않는 냄새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첫 번째 고인은

전기장판 위에서 주무시다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몸의 오른쪽은

유독 부패가 심했다.

배는 가스로 부풀어 둥글게 튀어나와 있었고,

머리 쪽은 더 이상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 채

피부가 뭉개지고 표피가 벗겨져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미리 얼굴을 가렸다.

보여줄 수 없었고,

보여주지 않는 것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선택처럼 느껴졌다.


입관 보조를 하며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냄새가 괴로웠고,

몸이 먼저 힘들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의 불편함이었다.

견디고 나면 벗어날 수 있는 위치였다.


입관을 앞두고

아들이 고인 앞에서 말을 꺼냈다.

“아버지… 제가 제 살기 바빠서

아버지를 이렇게 외롭게 보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참고 있다가 터져 나오는 목소리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나는 울지 않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내 감정이 더해지면

그들의 슬픔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감정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입관 보조를 하며 느꼈던 냄새,

숨이 막히던 순간들,

‘아, 너무 괴롭다’고 중얼거리던 내 속마음.

조금만 더 깨끗할 때 모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부패된 고인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들을 붙잡았다.

유가족의 감정을 그대로 따라가면

내가 먼저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 번째 고인은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다.

수의를 입히고 정리를 마쳐도

부패의 냄새는 남아 있었다.

나는 불편했을 뿐이지만

유가족들은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냄새 앞에서

그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을 떠올렸을 것이다.

얼굴을 보지 못한 대신

죄책감은 더 선명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첫 번째 고인은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아주 연로한 분 같지는 않았고,

그래서 더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죽음이 늦게 온 것도 아닌데

끝이 이렇게 험하게 남았다는 사실이

유가족을 더 괴롭게 하는 듯했다.


두 번째 입관은

다른 동기가 보조를 맡았다.

나는 옆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요양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신 고인이었고,

부패는 없었다.

누워 계신 얼굴은 비교적 편안해 보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부장님께 말했다.

“아까 첫 입관 때는 부패가 너무 심해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는데,

이번 고인분은 그래도 깨끗하게 돌아가셔서

마음이 좀 편합니다.

표정도 되게 편안해 보이세요.”


부장님은 웃으시며

고인의 얼굴 근육을 천천히 풀어주셨다.

굳어 있던 눈매를 부드럽게 만들고

웃는 눈처럼 다듬어 주었다.

면도를 하고 얼굴을 정리하자

표정은 한결 더 편안해졌다.

부패가 없었기에

그 얼굴은 그대로 유가족에게 보여졌다.


유가족들이 고인을 보고 말했다.

“아이고, 우리 아버지 얼굴이 참 편안하시네요.”

그 말 속에는

기쁨이라기보다

안도가 섞여 있었다.


그날 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는 냄새가 괴로웠을 뿐이고,

몸이 힘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아버지를 잃는 자리에 서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우리가 서 있던 자리는 전혀 달랐다.

나는 일을 하고 있었고,

그들은 삶의 한 부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장례는

고인을 보내는 의식이기도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덜 책망하도록 돕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의 방식이 아니라,

남겨진 얼굴이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데려간다는 것도.


오늘 나는 두 번의 입관 사이에서

많이 흔들렸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

고인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보내드렸다’는 감각만 남아 있다.


오늘은

사명감에 취한 날도,

무너진 날도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의 마지막을

두 번, 조용히 배웅한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오하린의 마지막을 상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