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자 장례 봉사활동을 다녀오고 나서부터였다.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는 말이, 그날은 유난히 피부에 와닿았다.
뉴스나 통계로 접할 때는 그저 그런 말이었는데,
실제 장례식장에 서 있으니
그 변화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얼굴로 보였다.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함께 살지 않거나,
연락이 끊긴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진 사회.
혼자 사는 삶이 더 이상 특이하지 않은 사회.
그러니 무연고자라는 존재가 늘어나는 것도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들을 바라보면서
처음에는 나 역시 관성처럼
‘외롭겠다’, ‘가엾다’는 감정을 떠올리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감정이 오래 머물지 않았다.
연민이 채 자리 잡기도 전에
다른 생각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아,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그 생각은 놀라울 만큼 담담하게 찾아왔다.
겁을 주듯 몰려온 것도 아니고,
비극처럼 밀려온 것도 아니었다.
그냥 문득,
너무 자연스럽게 떠오른 예감에 가까웠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다.
이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이 선택이 만들어낼 미래를
이제는 조금씩 상상하게 된다.
지금 이대로 나이를 먹는다면
내 장례를 누가 치러줄지 떠올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남동생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사이고
누가 먼저 떠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내 장례를 위해
일상을 멈추고, 시간을 비워
먼 길을 와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솔직히 현실적인 생각은 아니다.
다들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각자의 생계와 책임이 있는 나이니까.
와준다면 고마운 일이다.
정말로.
하지만 오지 못해도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서운해할 이유도 없고,
원망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그래서 나는
기대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게
차라리 정직하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에게 마음을 맡기기보다
상황을 미리 정리해두는 쪽으로
생각이 흘러갔다.
그러다 문득,
그 와중에도 이런 마음이 스쳤다.
그래도 누군가는
나를 한 번쯤은 추모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래서 생전장 같은 걸 해야 하나,
이런 생각까지 이어졌다.
죽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죽음을 앞당기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분명히 살아 있었고,
어딘가에 흔적을 남겼다는 걸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아주 인간적인 욕심 때문이었다.
그 욕심을 부정할 수가 없어서
생각은 다시 현실 쪽으로 흘렀다.
결론은 의외로 차분했다.
내 장례비는 내가 미리 준비하고,
장례 절차는 전문적으로 위임하고,
동생들은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되되
행정적으로 관리한 역할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구조.
기대는 내려놓고,
대신 제도를 만들어두는 방식.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겠다는 말은
사람을 믿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뜻에 가까웠다.
그리고 어차피
찾아올 사람이 많지 않다면
굳이 묘를 남기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관리되지 않는 묘 하나 남기는 것보다
유택동산에 산골되는 편이
오히려 나답다는 느낌도 들었다.
조용히 정리되고,
누군가에게 부담을 남기지 않는 방식.
그렇게 생각을 정리해가던 중에
또 하나의 아이러니한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이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을 때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
생각해보면 잔인한 발상이기도 하고,
욕심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끝까지 가지는 못했다.
마지막에는 늘 이 문장 앞에서 멈췄다.
그렇다고 죽어야 되는 건 아니지.
이건 죽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었다.
살기 싫다는 말도 아니었다.
잊히는 게 두려운 마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상태로
조용히 사라지는 게 무서운 마음이었다.
참 아이러니하고,
참 욕심 많은 생각이다.
살고 싶으면서도
기억되고 싶고,
혼자가 편하면서도
완전히 혼자는 싫은 마음.
그 모순을 안고
계속 살아가는 게
아마도 사람이라는 존재일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무연고자 장례식장에서,
그 누구의 가족도 아닌 자리에 서서
처음으로 또렷하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