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식 날 아침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늘 그렇듯 전날 밤에 샤워하고 머리를 감아두고,
아침 8시 반 알람에 맞춰 대충 세수와 양치만 하고
텀블러와 교재를 챙겨 지하철로 교육원에 가는 루틴.
하지만 오늘은 수료식이니까
알람을 7시로 맞춰놓았다.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드라이를 해야 해서 머리도 새로 감았다.
며칠 전, 수료식에 맞춰 머리를 검정색으로 염색했는데
아침에 머리를 감자마자
검은 물이 계속 빠졌다.
두 번을 감아도 샴푸거품에 묻어나는 검정빛이 쉬 사라지지 않았다.
3년 가까이 노랗고 갈색으로 지냈던 머리를
오랜만에 다시 검정으로 돌리고 나니
거울 속 내 얼굴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옷을 고르다가
흰색 와이셔츠 대신 검은색 니트에 손이 갔다.
기찬이가 맞춰준 정장 바지를 입고
단정하게 메이크업을 했다.
피부만 얇게 커버하고,
눈썹은 빈 곳만 채우고,
아이라인은 생략했다.
입술엔 말린 장미색 립스틱을 얹고
드라이로 머리 결을 정리한 뒤
반묶음을 했다.
자켓을 걸치고
엄마가 사준 새 구두를 신었다.
그 모습을 본 기찬이가 말했다.
“블랙하린이 따로 없네.”
나는 그 말에 크게 웃었다.
오늘 뵐 유재철 명장님 책과 교수님들 책,
노트와 필기구를 가방에 넣고
기찬이의 차를 타고 교육원으로 향했다.
남부순환로를 따라 차가 달리고
서초역 표지판이 보일 무렵
기찬이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하린아, 오늘 잘하고 와! 화이팅!”
“고마워, 아기왕자야.”
나는 그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차에서 내렸다.
교육원 입구에 도착하자
원장님이 나를 보며 환하게 손을 잡아주셨다.
“오! 우리 서초 장례지도원의 호프, 하린이!
와, 이렇게 보니까 제법 태가 난다!
이제 돈만 벌러 가면 되겠다!”
그 말에 나도 웃었다.
오늘의 공기가 조금 더 따뜻해진 것 같았다.
곧 동기들이 하나둘 도착했고
우리는 늘 앉던 그 수업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만큼은 그 공간이 작은 수료식장이었다.
원장님은 우리를 천천히 둘러보며 말씀하셨다.
“큰 바다, 큰 태평양에
나뭇잎 하나를 딸랑 띄워보내는 기분이에요.
현업에 계신 분도 있고, 이미 취직이 된 분도 있고,
사업체 운영하시는 분도 있고,
우리 95기에는 목사님도 계시고…
참 다양한 분들이 모였죠.
서로 많이 의지하면서
잘 커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요.”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덧붙였다.
“여기를 친정처럼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힘들면 언제든 오세요.
기대고 싶을 때 오시고,
모르는 게 있다면 다시 오세요.
언제든, 친정처럼.”
그 말에 우리는 모두 큰 박수를 쳤다.
진심을 담은, 뜨거운 박수였다.
내 이름이 불리고
나는 앞으로 나가 배지를 받고, 수료증을 받고,
원장님과 사진을 찍었다.
종이 한 장과 작은 배지였지만
그 안에는 지난 몇 달간의 시간이 묵직하게 담겨 있었다.
수료식이 끝난 뒤
서정하 교수님 인솔 아래
우리는 영등포구의 한 장례식장으로 견학을 갔다.
그곳에서는 한 할아버지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었다.
영안실을 둘러보려 했지만
마침 상조회사 직원들이 고인을 염습하려는 차라
방해가 될 수 있어
고인의 모습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저 영안실의 구조만 조용히 살펴보고 나오는데,
잠깐 스쳐 지나간 고인의 모습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지도, 싸늘하지도 않았다.
그저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하는 마음만 조용히 스쳤다.
식사를 함께하고 동기들은 각자 흩어졌다.
몇몇은 유재철 명장님 강의를 듣기 위해 돌아왔고,
나도 그 자리에 꼭 참석하고 싶어
다시 교육원으로 향했다.
유재철 명장님을 뵙고
미리 준비해간 〈대통령 염장이〉 책에 사인을 받았다.
사진도 함께 찍었다.
교수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현장에서 일하고 계신 선배님들께
짧은 조언도 들었다.
그 말들이 묘하게 마음을 단단하게 해주었다.
강의 중 명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유명하지만 정작 배우러 오는 제자는
지금까지 딱 네 명이었다고.
매달 셋째 주 토요일마다 사무실에서 강의를 여니
정말 배우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오라고.
그 말에서 진짜 ‘스승’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에게 좋은 스승이 나타나면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배우세요.”
그 말은
‘하린아, 누군가 너에게 울림을 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부끄러워하거나 움츠러들지 말고,
자격지심으로 물러서지 말고,
혼나더라도 다가가서 배워라’
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들렸다.
그 말이 내게
묘하게 큰 용기를 주었다.
나는 원래 나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교육원에서는
이상하게도 유독 앞으로 나가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카톡방을 개설하게 되어
교수님이 나를 반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동문회에서는 여자 대표로 선서를 했고,
송년회에서는 분위기를 띄우는
건배사까지 맡았다.
그 순간에는 너무 부끄러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살면서 또 어디서 이런 경험을 하겠나 싶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하게 된 일들이
조용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첫 시작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돌아보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내가 특별히 용감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순간순간 앞에 놓인 자리들이
나를 조금씩 앞으로 밀어주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야 알겠다.
사람의 시작이라는 건
큰 결심이나 각오에서 나오기보다,
어쩌면 이렇게
작게 밀리는 한 걸음들로
조용히 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료식 날의 나는
그 사실을 아주 천천히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