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늘 그렇듯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달리고 있었다.
집까지는 몇 정거장 남지 않았고, 나는 자리에 앉아 몸을 기댔다.
그날도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고,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내 앞에는 서울대학교 과잠을 입은 여자애들이 서 있었다.
그 글자를 보는 순간,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린다.
똑똑함, 성실함, 그리고 어딘가 단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중 한 명이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자기 얼굴을 가까이 두고, 화면을 들여다보며 각도를 바꾸고 있었다.
셀카였다. 요즘은 너무도 흔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화면 안에, 내 얼굴이 들어와 있었다.
그건 단순히 스쳐 지나간 장면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봤으면
아, 저거 너다 하고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그날의 표정까지 그대로 담겼을 것 같은 거리.
나는 순간 몸을 틀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거의 반사적으로.
요즘은 누구나 안다.
카메라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는 남겨지고 싶지 않은 흔적이 될 수 있다는 걸.
한 장의 사진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고,
몇 초짜리 영상이 누구에게 공유될지 알 수 없는 시대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조심하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아무 준비도 없이,
누군가의 화면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 애는 카메라를 내렸다.
영상이었는지, 단순히 확인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 애매함이 오히려 더 마음을 건드렸다.
한 정거장을 지나고 나서야 말을 걸었다.
“혹시 아까 셀카 모드로 영상 찍으신 거예요?”
“아니요.”
그 말은 너무 단단하게 닫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 번 더 말했다.
“아까 셀카 모드 하실 때 제 얼굴이 나온 것 같아서요.”
그때였다.
그 애와 옆에 있던 친구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둘이 동시에 웃었다.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 웃음이, 단순히 상황이 어색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뭐야, 왜 저걸 물어봐” 하는 쪽에 더 가까운 웃음처럼.
이런 상황이면
옆에 있는 친구라면 말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야, 조심해.”
그 말이 먼저 나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사진 찍으신 거냐고 물어보는 사람 앞에서
둘이 눈을 마주치고 웃고 있는 그 장면이,
그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그저 가볍게 넘겨도 되는 일로 여기는 것처럼,
그래서 결국 그 질문 자체까지도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웃겨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삼켰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이 장면은 더 이상 작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버스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계속 움직였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그 짧은 장면이 계속 맴돌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화가 난 이유는 단순히 찍혔을지도 모른다는 불쾌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크게 남은 건,
그 이후의 태도였다.
사실 나는 대단한 사과를 바란 게 아니었다.
“영상 찍은 건 아니에요.
셀카 모드로 제 얼굴 확인하다가 뒤에 잡히셨을 수도 있어요.
불편하셨죠, 죄송해요.”
그 정도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 말 한마디면
이 상황은 그 자리에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건
“아니요”라는 단정과,
그 뒤에 이어진 웃음이었다.
그건 사실을 말한 것이 아니라
상황을 끊어낸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그 자리에서 지워버리는 방식이기도 했다.
나는 그 순간 생각했다.
공부 잘하면 뭐 하나.
지식은 쌓였을지 몰라도,
사람 앞에서 한 번 멈추는 법을 모른다면
그건 끝까지 완성되지 않은 배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