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보어 다이어트를 아시나요?
말 그대로 고기만 먹는 식단이다. 채소도 과일도 밥도 없다. 오로지 동물성 식품만 먹는다.
나의 20대는 항상 저체중이었다. 치아 교정으로 밥을 잘 못 씹을 때는 38kg까지 빠진 적도 있었다. 30대 초반에 데이트 폭력을 일삼던 한 남자를 만나고 나서는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며 먹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다이어트를 도전하며 살기 시작했는데, 그 식단을 알기 전까지 나는 다이어트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시작은 늘 있었지만 끝은 없었고, 의지는 늘 입 안을 맴돌다 사라졌으며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람이었다.
우울증이 깊어져 충동적으로 삶의 끈을 놓아버리려는 행동이 문득문득 보이던 그 아찔했던 시기에, 기찬이는 나에게 계속 정신과를 가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듣기 싫어서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병원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약은 내 마음을 잠재우는 대신 내 몸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뜨리고 있었다.
나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고, 눈을 감고 누워 있어도 잠은 내려오지 않았으며, 몸은 지쳐 있는데 머리는 끝까지 깨어 있는 채로 밤을 버티는 날이 많았다. 그랬기에 의사는 나에게 수면제를 같이 처방해주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그 시간들 사이에서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내 체중은 26kg이 늘었고, 어느 순간 내 몸무게는 80kg을 훌쩍 넘어서기 시작했다.
수면제를 먹고 나면 밤이 깊어질수록 단 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당겼다. 이유도 없이 밀려오는 그 욕구를 나는 끝내 막지 못했다. 베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시켜 먹고, 동네에 있는 소문난 맛집의 초코 브라우니를 쌓아 놓고 먹고, 쿠팡에서 대용량 초콜릿을 사다 놓고 뜯어먹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대부분의 날들은 그 모든 과정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양치를 하고 나서도 다시 단 것을 집어 먹으며, 내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도 멈추지 못했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어떤 날은 달랐다. 수면제를 먹고 난 뒤 무언가를 먹었는데, 다음 날이 되면 그 기억이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뜯겨진 포장지와 남겨진 흔적들만이 내가 먹었다는 사실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그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내 몸을 빌려 쓰고 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기억하는 날과 기억하지 못하는 날들이 뒤섞인 채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서 내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기찬이는 그런 나를 보며 한숨을 쉬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카니보어와 케톤 식단을 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나에게 약을 끊고 다이어트를 하라고, 이대로는 안 된다고 계속 밀어붙였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싫어서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 왜 나를 또 몰아붙이냐고 쏟아냈고, 정신과를 가라고 해서 갔더니 이렇게 겉잡을 수 없이 고도비만이 됐는데 이제 와서 약을 끊고 다이어트까지 하라고 하느냐고 말하며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그 말에는 억울함과 원망이 뒤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고, 숨은 점점 더 빨리 차올랐으며, 이대로 가면 더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다시 붙잡게 되었고, 카니보어와 케톤식에 대해 정보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결국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끝내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렇게 카니보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수많은 다이어트 방식 중,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다이어트 방을 운영하던 한 인플루언서의 다이어트 정보 단톡방에 들어가 그 방식을 따라 해보기로 했다. 100일 동안 치팅없이 식단을 유지해야만 지방이 주 에너지 원으로 바뀐다고 했다. 물은 경도 300에 미네랄이 충분히 함유된 것만 골라 마셔야 했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생제를 맞지 않은 돼지고기 그러니까 사육 방식부터 관리된 좋은 고기를 먹는 것이었다. 계란 역시 아무 것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난각 번호 1번만 가능한 식단이었다.
이 방식은 다른 키토 식단보다 훨씬 더 제한적이었다. 탄수화물과 채소는 거의 금지에 가까웠고, 허용되는 범위는 극도로 좁았다. 물에 씻은 김치를 돼지기름에 구워 아주 소량 곁들이거나, 애사비 식초와 소금으로 만든 양파 피클을 조금 먹는 것이 전부였다. 여기에 다시마와 햄프씨드 가루 정도가 추가되는 수준이었다. 주식은 돼지고기 삼겹살, 하루 약 300g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식단을 이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주일, 길어야 이주 정도를 버티다 보면 결국 무너졌고, 다시 시작했다가 또 포기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완전히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그 기간 동안 체중이 더 늘지는 않았고 오히려 조금씩 빠지고 있었기에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못한 채 계속 그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 흐름 속에서 장례지도사 실습을 나가게 되었고, 나는 그곳에서 수많은 고인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중에는 화재사고로 불에 탄 채 발견된, 나와 같은 나이의 여자 고인도 있었다.
그 고인의 염습을 도와드리며 사람이 불에 타면 어떻게 변하는지를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는데, 라텍스 장갑을 끼고 만지는 고인의 피부는 불에 그을린 돼지 껍데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삼겹살을 마주할 때마다 그 장면이 겹쳐졌고, 고기의 단면이 그 고인의 피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삼겹살을 단순한 음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고기를 먹는 일 자체가 고통이 되었고, 입에 넣는 순간마다 그 장면이 떠올라 한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러다 실습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충격적이던 기억이 조금씩 흐려질 때쯤,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2월 22일부터 시작했다. 다이어트 정보방에 있는 다른 참가자들 보다 약 두 달 반 늦은 출발이었다. 누군가는 이미 끝을 보고 있는 시점에서, 나는 그제야 발을 들였다.
맛있어서 먹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먹히는 느낌으로, 버티듯 삼키는 방식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힘들다. 버터를 씹다가 속이 울렁거리기도 하고, 삼겹살을 씹으며 미식거림을 겨우 눌러 넘기는 날도 있다. 돼지 간을 먹을 때는 입안에 남는 감각을 견디듯 삼켜야 하는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먹고 있다. 계속 버티고 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이어간다.
카니보어 식단을 제대로 시작한 지 30일째. 30일 만에 7.5kg이 빠졌고,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골격근량은 오히려 1kg가까이 늘었다. 지난 주말부터는 피로감도 많이 줄었다. 피부결은 나의 20대 초반처럼 보드랍고 촉촉해졌고, 기찬이는 내 모공이 작아지고 혈색도 돌아오고 광이 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찐 살이 하루아침에 드라마틱하게 빠질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아주 미세하게 건강해진 몸을 느끼고는 있지만, 그것 또한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변화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했으니, 결국 원래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갈 날도 머지않았으리라 믿어보며,
100일이 끝나고 마음껏 원하는 것들을 먹을수 있는 단 하루 바로 그날,
기찬이가 약속한 신라호텔 더 파크뷰 뷔페를 먹고 더 라이브러리에서 애플망고빙수를 먹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