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따고 취업 준비를 하다 보니, 공고마다 비슷한 조건이 하나씩 붙어 있었다. 운전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사람, 운전 가능한 자. 면허 소지자가 아니라 ‘운전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상황에 따라 직접 운전을 해야 할 일들이 생길 수도 있어서 앰뷸런스 운전이 가능한 사람들을 따로 뽑기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부터 그 문장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기찬이가 나한테 “운전 연습 안 해?”라는 말을 자주 하기 시작한 게.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한 번씩 운전을 시켜달라고 말했고, 그래서 차가 없는 내가 핸들 감을 익힐 수 있게 사람이 많지 않은 영흥도 같은 곳이나 기찬이네 별장이 있는 문막처럼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곳에 가면 한 번씩 운전을 하게 해주곤 했다. 주로 별장 들어가는 섬강을 따라 가는 시골길을 주로 운전연습을 시켜주지만, 가끔 별장에서 문막 휴게소까지 짧은 구간을 몰아본 적도 있었다. 길이 단순하고 거리도 짧아서 그때는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무엇보다 그런 연습들은 대부분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시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는 운전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이는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대부도를 지나 영흥도에 들어가면 차가 많이 안 다니는 길에서 잠깐 운전을 해보는 정도,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한 10분 정도 가볍게. 그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고, 대부도까지 오는 동안에는 별다른 긴장 없이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선재도로 들어가기 직전쯤, 차가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내려”라는 말이 들렸고,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어서 “핸들 잡아”라는 말이 나왔을 때는 이게 선택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영흥도에 가서 운전을 할 줄 알았는데, 기찬이는 차가 생각보다 훨씬 많이 다니는 대부도에서부터 나에게 운전을 시키고 있었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그냥 바로 도로 위로 올라가야 했다.
기찬이 차가 무슨 엄청 비싼 차는 아니었지만, 초보인 내가 연습용으로 몰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외제차였다. 보통 연습용으로 타는 차들보다 브레이크와 엑셀이 훨씬 예민해서 살짝만 밟아도 차가 확 나가고, 살짝만 건드려도 바로 반응이 왔다. 그걸 내가 따라가기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고, 내가 운전을 한다기보다 차의 반응에 끌려가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렇게 나는 대부도 끝자락부터 영흥도까지, 한 번에 쭉 간 게 아니라 계속 차를 세우면서 갔다. 왕복 이차선 도로이다 보니, 뒤에 차가 붙기 시작하면 갓길에 한 번 세우고, 보내고, 다시 출발하고, 또 조금 가다가 뒤에 차가 쌓이면 또 세우고. 그걸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멈췄다가 가고, 멈췄다가 가는 식으로 거의 삼사십 분을 핸들을 잡고 있었다.
그래도 속도는 쉽게 올라가지 않았다. 선재도를 지나는 동안에도 나는 대부분 30 정도의 속도로만 갔고, 스스로도 답답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네비게이션을 보랴, 전방 후방 주시하랴, 차선 맞추랴, 그 이상으로 밟는 게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 영흥대교에 올라서면서부터는 나름대로는 속도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엑셀을 더 밟았고 속도는 50에서 60 정도까지 올라갔다. 분명 규정 속도 안이었다.
그때, 옆에서 기찬이가 말했다.
“니가 지금 몰고 있는 차가 팔천만 원이라는 걸 명심해.”
그 말은 이미 긴장하고 있던 나를 더 단단하게 묶어버리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뒤에서 카니발 한 대가 빠르게 따라붙었고, 그 차는 내가 속도를 맞추고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경적을 울리며 나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나는 영흥대교 위에서 이미 할 수 있는 만큼은 밟고 있었는데도 그 차는 계속 나를 재촉했고, 그 소리를 들을수록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운전하기가 어려워졌다.
영흥대교는 처음에 살짝 오르막이었다가 중간을 지나면서 미묘하게 내리막으로 이어졌는데, 그 구간에 들어서자 차가 스스로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걸 견딜 수가 없어서 브레이크에 발이 자꾸 갔다.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결국 속도를 적당히 맞추지 못하고 브레이크를 계속 건드리다 보니 속도는 40, 30, 결국에는 20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나는 앞으로 가고 있었지만, 계속 멈추려고 하고 있었다. 뒤에서는 더더욱 답답하다는 듯이 여전히 경적이 울리고 있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점점 더 쫓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다리를 건너고 갓길이 보이자마자 차를 세웠다. 거의 도망치듯이었다. 시동을 끄고 문을 열고 내렸을 때, 그제야 핸들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게 보였다. 손을 씻고 물기를 닦지 않은 것처럼 그대로 젖어 있었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차에서 내렸을 때까지도 가슴은 계속 조여 있었고, 심장은 쿵쾅거리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몸이 아직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느낌이었다.
기찬이는 뒤차를 보내고 다시 운전을 해보자고 했다. 목적지인 십리포 해수욕장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조금만 더 가보자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 이건 더 못 한다.
오 년 전, 십리포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던 길이 떠올랐다. 좁고, 옆으로 빠질 것 같던 굽고 굽은 그 길. 지금 상태로는 그 길을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너무 선명하게 들었다.
그래서 그냥 말했다.
“나 운전 안 해. 나 운전 못 해. 나 못 하겠어.”
그 말이 나오고 나서야,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 시간 이후로는 계속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긴장이 한 번에 풀려서인지 집에서 밥을 먹고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배가 엄청 고파졌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기운이 쭉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십리포 해수욕장에서 나는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갈매기 떼들이 바다 위를 맴돌고 있었고, 조금 전까지 내가 겪고 있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름답다!
나는 그걸 한참 보다가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날 내가 거기까지 왔다는, 그 시간의 증거 같은 사진이었다.
차에서 내렸을 때까지만 해도 가슴이 계속 조여 있었고, 심장은 쿵쾅거리면서 속이 울렁거렸는데, 바다를 보자마자 그게 싹 풀어졌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다리 위에서 그렇게 쫓기고,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해 있었는데, 막상 바다를 보고 갈매기 떼들이 날아다니는 걸 보고 있으니까 그게 또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가슴 졸이며 버텨냈던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흐릿해졌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전날 밤 라면을 먹고 자서 아침에 팅팅 부었다고 후회를 하면서도,
그날 저녁 치킨 먹방을 보다가 결국 또 치킨을 시켜버리고,
끝이라고 말했던 관계를 돌아서자마자 다시 시작하기도 하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도 결국 또 누군가를 찾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조금 전까지의 나를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바다를 보고 설레고 있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