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지도사 수업 시간에는 교수님들이 고인들의 사진을 보여준다. 아주 험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모습이다. 그 사진들은 설명을 위한 자료라기보다, 일종의 통과 의례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이 일을 하게 되면 이런 시신들을 실제로 마주하게 될 거라는, 각오하라는 신호 같았다. 이 정도를 보고도 버틸 수 있느냐는 질문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 사진들을 피하지 않았다. 징그럽다는 말을 속으로 몇 번이나 하면서도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얼굴을 찡그린 채로, 그러나 끝까지 다 봤다. 적어도 눈을 돌리거나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투신한 고인의 경우, 사람은 무거워서 떨어질 때 머리부터 떨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머리가 크게 훼손된다고 했다. 그래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 모습이었다. 나는 그 장면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공포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가장 잔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불에 타 돌아가신 고인들, 교통사고로 몸이 심하게 훼손된 고인들, 살해를 당해 온몸에 상처가 남은 고인들에 대한 사진도 있었다. 그리고 고독사로 인해 돌아가신 오랜시간 부패가 진행된 고인들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익사로 돌아가신 고인들, 이 부분은 수업에서 사진으로 마주한 적은 없었다. 교수님께서 분명 수업시간에 설명은 해주셨을텐데, 사진으로 본적이 없으니 단기간에 많은 내용의 수업을 진행하며, 자연스레 그부분은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 내용을 어느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알게 되었다. 현업에서 8년에서 9년 정도 일한 장례지도사가 운영하는 채널이었고, 사람이 죽으면 수습을 위해 어떤 과정을 겪는지, 장례지도사만이 알 수 있는 현장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영상들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채널을 구독하게 됐고, 여러 영상을 보며 물에서 돌아가신 고인들이 수습이 힘들다는 영상을 보았다. 오래 물에 있었던 경우에는 피부가 심하게 손상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살과 뼈가 분리되기도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교육원 동문회 자리에서 기수가 아주 높은 선배와 같은 자리에 앉게 됐다. 나는 95기였고, 그분은 17기였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음속에 남아 있던 질문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선배님, 혹시 물에 빠져 돌아가신 고인들은 정말 뼈랑 살이 분리되기도 하나요? 피부가 뭉개지고 벗겨져서 수습이 매우 힘들다던데 혹시 익사한 고인들도 염습 해보셨나요?”
그 질문을 듣자 선배는 정색을 했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느냐고, 누가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유튜브에서 봤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나를 혼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는다며, 그런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틀린 걸 바로잡아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의문이 남았다.
그 유튜버는 오랜 기간 현업에 있었고, 이 선배의 말 역시 확신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결국 나는 어느 쪽도 확신하지 못한 채, 그 질문을 물음표로 남겨두게 됐다.
한 달쯤 지나, 나는 교수님 추천으로 교육원 동문회 임원이 됐다. 실습 기회를 더 얻고 싶었고, 취업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서 동문회 임원회의 자리에 참석했다. 회의를 마친 뒤, 원장님이 식사를 사주셨고, 이어 2차로 치킨집에 가게 됐다.
그 자리에서 나는 현업 3년 차 장례지도사 선배에게 다시 그 질문을 했다.
그 선배는 아주 다정하게, 그리고 상세하게 설명해줬다.
오래 물에 있었던 고인들의 경우 피부가 심하게 손상되고, 경우에 따라 살과 뼈가 분리되기도 한다고.
그래서 시신을 다룰 때는 특별한 처치가 필요하고, 그에 맞는 약품도 사용한다고 했다.
그 설명을 듣는 순간, 한 달 전 그 선배가 떠올랐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한달전에 17기 선배님께 그 질문을 했더니, 선배는 저를 혼내셨어요. 이상한 유튜브 영상보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고요.”
그 말을 들은 선배는 웃으며 말했다.
“그분은 물에 빠진 고인을 직접 수습해본 적이 없으신 것 같네요.”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방금 졸업한 후배에게 확실하지 않은 말을, 자기도 잘 모르는 영역의 이야기를 단정적으로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그럴 땐 모른다고 하셔야죠.
아마도 갓 졸업하신 하린씨가 질문하니,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던게 아닐까 싶어요.”
그날 이후로 알게 됐다.
나에게 잘못된 지식을 알려준 선배는 지금 현업에서 장례지도사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얼마나 이 일을 했는지도 알 수 없다는 것.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내가 느꼈던 불편함의 정체를 이해했다.
그건 단순히 혼이 난 기분이 아니라 배신감이었다.
자기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내용을 가지고,
막 졸업한 후배 앞에서 권위처럼 말하고, 혼을 내고, 눌러버린 태도에 대한 배신감.
나는 그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한 것처럼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자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 선배처럼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