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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결핍

by 하린

나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 작은 것을 해주기만 해도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다.

좋아서 잠을 못 자고, 침대 위에서 혼자 발을 동동 굴리고,

괜히 가슴이 벅차서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이런 나를 보며 스스로도 생각한다.

나는 정말 애정 결핍일까?


그런데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삶은 사랑이 넘치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김씨 집안의 첫손주였고,

장남의 첫 딸이었다.

태어나자마자 가족 전체가 번갈아 안아주었고

나를 귀하지 않게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사랑의 정중앙에서 자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 사랑은 방향을 잃었다.

동생 서준이가 태어나면서

엄마의 손길은 자연스럽게 동생에게 향했다.

그리고 사촌동생들이 차례로 태어나자

집안의 모든 활력과 관심은

더 어린 아이들에게 흘러갔다.

나는 주목의 중심에서 조금씩 밀려나

시야의 가장자리로 조용히 옮겨졌다.


그 와중에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단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빠였다.

아빠에게는 늘 엄마가 1번이었지만

그 바로 옆자리에는 언제나 내가 있었다.

딸이라는 이유로, 첫 자식이라는 이유로

아빠는 나를 가장 예쁘게 키우고 싶어 했다.


아빠는 동생에게는 매를 들었다.

“어디 이놈의 자슥이 누나를 때리면 되나!”

남자아이에게는 더 엄했고,

잘못하면 맞아야 한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혼내는 방식부터 달랐다.

혼내기 전에 먼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설명하고,

내 마음을 이해시키고,

마지막에는 꼭 안아주는 사람이었다.

동생에게는 매로 가르쳤다면

나에게는 품어주며 가르치는 사랑이었다.


그렇게 사랑받으며 자라던 내가,

아빠가 갑작스레 떠나자

삶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기댈 곳이 사라진 것이었다.


엄마는 너무 젊었고,

너무 충격을 받았고,

너무 막막했다.

우리에게 마음을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줄 힘이 없었다.

엄마 표현대로라면,

“앞으로 이 두 아이를 어떻게 먹이고 살아야 하나

그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히던 시절”이었다.


동생과 나는 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집안의 중심이던 아빠가 사라지자

서준이는 더 기어올라왔고

우리는 자주 싸웠다.

엄마의 시선은

아빠가 죽은 줄도 모르던 ‘천둥벌거숭이 같은’ 서준이를 향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뭔가를 빼앗긴 듯한 마음으로

몇 십 년을 살았다.

공허하고, 허전하고,

가끔은 이유도 없이 막 슬펐던 시간들.


그런데 요즘 나는 너무 행복하다.

이유는 복잡하지만,

단 하나로 말할 수 있다.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행복을 떠올리고,

내 안의 오래된 기억들을 다시 꺼내며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되찾기 시작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드디어 찾았다는 사실이

삶의 방향을 다시 세워주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놀라울 만큼 좋은 벗들을 만났다.

미야 선생님이

“하린아, 너는 특별한 제자야.”

라고 말해준 날.

글빵 동무들 앞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며 나를 특별하게 받아준 날.

그 기쁨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서 콩콩콩 뛰었다.

정말 어린아이처럼.


그리고 요즘은

이상할 만큼 ‘특별 대접’을 자꾸 받는다.


장례지도사 공부를 마치고

자격증란에 두 줄이 새로 생겼다.

장례지도사 국가자격증,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자격증.

이제 내가 어떤 길을 걸어갈지가

조금은 분명해졌고

엄마도 그걸 누구보다 기뻐했다.


“면접 갈 때 새 신발 하나 신어야겠다.”

내가 명품 신발을 고르며 망설이던 순간,

엄마는 화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 세무보다는 이 금장 달린 게 더 낫다.

애나멜 가죽으로 된 걸로 해라.”

그리고 정말로

그 비싼 신발값을 내 통장에 넣어주었다.

“서준이한테는 말하지 마라. 비밀이다.”

그 말에 나는

동생이 태어나기 전,

외동딸이던 시절로 잠시 돌아갔다.


몇 주 전에는 운채 작가님이

“하린씨, 하린씨를 위해 무료 강의를 해드릴게요.

저도 예비 장례지도사들께 도움 되는 강의를 해줄수 있어 기쁘고, 하린씨도 동기들과 원장님 앞에서 기 좀 살라고.“

라고 말해주셨다.

누군가 나 하나 때문에 움직여준다는 그 느낌

그게 또 나를 ‘외동’처럼 만들어주었다.


기찬이 또한 그랬다.

자기 약속을 취소해가며

“내가 데리러 갈게.”

라고 말해주는 사람.

그 따뜻함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

어쩐지 오래 굶주리던 마음이

천천히, 부드럽게

포만감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 마음의 움직임을

결핍의 증거로만 보지 않는다.


결핍은 언제나 결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타인을 향해 열려 있다는 징후이기도 하고,

마음을 흔드는 일들 앞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숨어 있던

애정에 목말라 있던 작은 나에게

이제는 조용히 말해준다.


너는 부족한 존재가 아니라,

사랑을 알아보는 감각이 남다른 존재였다고.

그 예민함은 약함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더 정교하게 느끼는 능력이라고.


언젠가

그 감각이 결핍을 향해 떨리는 대신

삶 그 자체를 향해 고요히 열릴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계속해서 내 안의 작은 나를

낭비 없이, 조용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품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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