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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다이어트

by 하린

안승남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인간 다이어트라는 말을 아느냐고, 인간 다이어트라는 말은 교수님이 직접 만들어서 쓰시던 말이라며. 살을 덜어내듯, 불필요한 인간관계도 줄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어트라는 말은 나에게 크게 필요 없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원래부터 인간관계가 넓지 않은 사람, 굳이 인맥을 억지로 이어가거나 과식하듯 삼키는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사람과의 관계로 치자면, 나는 비만형이 아니라 오히려 저체중에 가까웠다.


그래도 나는 꾸준히 군살을 덜어내듯 관계를 정리해왔다. 나와 전혀 맞지 않고, 앞으로 다시는 연락할 일도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번호는 과감히 지워버렸다. 형식적으로 인사치레로 받아둔 연락처들도 하나씩 지웠다. 휴대폰 안에서만 덩그러니 남아 있던 이름들은 이제 더 이상 내 일상에 붙어 있지 않았다.


최근에는 조금 더 단호해졌다. 나를 힘들게 했고,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도 곁에 붙어 있던 사람들까지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전의 나는 정 때문에, 언젠가는 나에게 좋은 말을 해주겠지, 언젠가는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연락을 이어가곤 했다. 그러나 결국 깨달았다. 한 번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또 상처를 주고, 또 주고, 끝내 반복해서 나를 아프게 한다는 것을.


굳이 ‘다음에는 안 그러겠지’라는 기대를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인연을 과감히 끊었다. 전화번호를 지우고, 차단했다. “나 너 차단했어”라고 말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오히려 그렇게 조용히 정리하는 편이 나를 더 단단하게 지켜주었다.


살다 보면 지켜야 할 것도 많지만, 지우는 일 또한 삶의 한 부분이다. 남겨야 할 것을 남기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배워간다. 비워진 자리는 처음엔 허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를 새로운 공기와 빛이 채운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내가 지켜야 할 얼굴들이 더 또렷해진다.


어쩌면 인간 다이어트란, 나를 홀가분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내 곁에 남아야 할 사람을 더 분명히 알아보게 만드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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