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에서 동작으로 향하는 길, 우리는 남산 3호터널 앞에 서 있었다. 늦은 오후의 햇빛은 저물고 있었고, 터널은 이미 커다란 입을 벌린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빛에서 어둠으로 넘어가는 그 경계에서 차 안 공기는 조금 무겁게 가라앉았다. 기찬이 차는 자율주행 모드로 달리고 있었고, 우리는 그 편안함에 기댄 채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른 저녁을 먹은 뒤라, 노곤한 기운이 은근히 차 안을 감쌌다. 마치 안전벨트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를 붙잡고 있는 듯한 그 안락함 속에서, 방심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자율주행 표시가 불시에 꺼졌다. 전조도, 경고도 없이, 차는 스스로를 놓아버렸다. 운전대를 쥔 손끝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벽이 순식간에 눈앞으로 밀려왔다. 금속이 벽에 끽 소리를 내며 스쳤고, 휠은 거칠게 끓으며 바닥을 긁었다. 차체 옆면은 눈 깜짝할 사이에 긁혀나갔다.
“미안!” 기찬이가 놀라 외쳤다. 그 짧은 한마디에 당황과 죄책감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에는 목소리를 더 가라앉혀야 했다. 차분하고 단호하게, 심각하게 말했다.
“기찬아, 이건 네 운전 경력이 애매해서 그래. 초보라면 오히려 더 긴장했을 거야. 그런데 이제 자신감이 붙으니까 방심하는 거지. 마음가짐을 바꿔야 해. 우리 아빠처럼 되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해. 하지만 난 네가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아.”
내 목소리는 꾸중이 아니라 간절한 부탁에 가까웠다. 그날 기찬이의 나이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나이와 겹쳐 있었다. 그래서 내 말은 농담이 될 수 없었다. 아버지를 잃은 기억과 두려움이 그대로 경고가 되어 기찬이에게 흘러나왔다. 내가 차분하게 들려준 목소리 안에는, 사실 누구보다 절박한 마음이 숨어 있었다.
부딪히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더 무서운 장면이 스쳤다. 만약 차가 그 자리에서 픽 돌아 터널 안에서 핑글핑글 돌았다면? 뒤에서 가깝게 따라오던 차량들이 차례차례 들이받으며, 터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차가 회전하며 흩뿌렸을 헤드라이트 불빛, 금속과 시멘트가 부딪히며 울릴 굉음, 이어질 연쇄 충돌의 비명…. 상상 속의 장면은 너무 생생해 오히려 현실보다도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긁힌 차체보다 더 오래 남은 건, 그 공포스러운 상상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자율주행은 안전을 보장하는 기술이 아니라, 단지 우리를 잠시 안심시키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편리함은 방심까지 책임져주지 않는다. 결국 운전대는 내 손에 있어야 한다. 삶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살아줄 사람은 없다. 내 방심이 내 삶을 위협할 뿐 아니라, 뒤따르는 누군가의 삶까지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짧은 충돌의 순간에 온몸으로 느꼈다.
다음 날, 견적이 나왔다. 200만 원이 넘는 금액. 돈으로 메울 수 있는 상처라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러나 나는 안다. 그날의 사고는 단순히 차체에 남은 흠집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새겨진 경고로 남았다는 것을.
200만 원은 그 대가의 숫자일 뿐, 진짜 값은 훨씬 더 무거웠다. 터널 안에서 차가 핑글핑글 돌던 그 상상이, 지금도 내 마음을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