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되기를

안녕 그리고 안녕

by 오흔

택시 한 대만 빨리 병원으로 불러줘


1월 1일, 남들은 모두 일출을 보며 새 해의 평온을 기원할 때 나는 새벽녘 엄마의 전화에 콜택시를 불렀다.

으레 엄마가 돌보는 아파트 단지 내 할머니들의 건강 때문에 새벽이나 저녁에 병원에 종종 갔던 엄마의 전화라 생각하며 나는 콜택시를 부르곤 이내 잠이 들었다.


심지어 2일 전에도 다녀온 본가였기에,

별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선심쓰듯이 시간을 낸 남동생은 연초가 바쁘다며 밤샘 작업으로 초췌한 모습으로 부모님과 함께 저녁이나 하자며 본가로 향했다. 나이가 들면 고작 1시간 거리의 본가도 10시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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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가족은 서로에게 점점 숨기는 것들이 많아진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할까봐. 괜히 아무것도 아닌데 알면 커질까봐 마음이 아플까봐. 1월 1일에 내가 받았던 엄마의 전화가 바로 아빠의 사고 전화였다는 걸 본가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아주 작은 일이라 여긴 부모님은 우리 남매에게 아빠의 사고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엄마와 새벽길을 나서기 위해 아빠는 차량의 방한용품을 점검하다 창틀에 엄지 손가락이 끼었다고 한다. 뼈가 보일듯이 패여서 응급실로 향해 다음 날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당신도 왜 그런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멋쩍게 웃는 아빠와 그새 병원 생활에 적응이 된 엄마는 아빠 대신환자 침대에 누워 '아빠, 괜찮아' 라는 말을 백 번도 더 넘게 했다.






이번 주에 한 번 더 와야겠어. 고비가 될 것 같아


입원한 아빠의 컨디션과 엄마로부터 괜찮다는 말을 듣고는 반려견 별이와 짧은 인사를 한 채 동생과 일상으로 복귀를 했다. 일상 복귀와 동시에 아빠의 병원비를 수납했다. 비급여로 가득한 영수증은 아파도 아플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 동안 혼자 나가서 일을 보던 사무실에 남자친구이자 동업자인 파트너가 출근을 했다. 공식적인 첫 출근.

함께 일을 하면서 서로가 사용하던 용어와 업무 속도를 맞추고, 사업계획서를 쓰면서 알게 모르게 서로의 예민함은 불쑥 튀어나와 감정싸움으로 살얼음판을 달렸다. 그리고 결국, 그 싸움은 서로를 제일 잘 아는 서로가 서로에게 아픈 말만 콕콕 쑤셔대는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집에서 일상으로 복귀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던 4일 차, 엄마에게 집에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평소라면 집에 오지 말고 쉬라는 엄마에게 집에 오라는 메시지를 받자 가슴이 철렁했다. 남자친구에게 사무실에 당분간 출근하지 못할거라 얘기를 해두곤 바로 짐을 싸서 본가로 향했다.


도어락을 누르기도 전에 엄마는 알 수 없는 멋쩍음으로 나를 반기며 캐리어를 들어주었다.

'엄마가 너 메시지 보냈는데, 못봤어?'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엄마와 나눈 마지막 메시지는 내가 10분 뒤에 집에 도착한다는 말이었다.

그 뒤에 온 메시지에는 이미 무지개 다리를 건넌 별이에 대한 소식이 담겨져있었다.

메시지 첫줄을 확인하자 마자 나는 아이처럼 신발장에 그대로 주저앉아 소리내어 울어버렸다.

그런 내 모습에 엄마도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누나 또 올거야' 4일 전에 내가 반려견 별이와 헤어지면서 했던 말이었다.

그새 기력을 차린 모습에 안도를 하곤 곧 보자며 집을 나섰다. 그게 얼마나 기약이 없는 일이었을지.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느리긴 해도 다시금 큰 방석에 자고 있는 별이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며 문을 열었는데, 그 곳에 별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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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번갈아가며 내가 우울하지 않게 나를 달랬다.

밥을 먹이러 나가고, 집밥을 해주고, 바람쐬러 가자며 카페를 야외를 나갔다.

그리고 내 마음이 괜찮아지면 별이를 보내주기로 했다.

아빠는 별이가 가던 날, 어땠는지 생생하게 얘기해주었다.

반려견을 잃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화장터에서는 기본 - 고급으로 나뉘어진 상품들을 설명하며 추가를 요청했고, 그 모습에 부모님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0kg를 훌쩍 넘던 별이는 고작 몇 그램에 가루로 토기에 담겨져 왔다.


별이의 배변패드가 있던 자리는 새카맣게 장판이 물들었고,

별이의 쿠션이 있던 곳은 바람만 차갑게 남았다.




다행히 아빠는 점점 호전되고, 밤새 울면서 눈이 짓무르던 나도 마냥 슬퍼만 하기에 내 어깨는 부모님의 장녀이자 작은 에이전시의 대표이자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곳들이 한 두 곳이 아닌 사회인이기에 툭툭 털고 일어나려 노력중이다.


2026년에 가득히 채웠던 나의 투두 리스트와 버킷 리스트는 모두 삭제했다.


모든 것들이 돈에 맞춰져 있는 목표 대신에 나는 시간에 더 쓰기로 했다. 가족 그리고 내 사람들에게.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쫓기듯이 미루기 보다 느리더라도 주변을 살펴보면서 지금을 챙기기로. 사실, 후회하는 것보다 후회하지 않으려는 것들이 더 어렵다. '다음에 보자'는 말이 그래서 쉽다.


얼마나 더 좋은 일이 생기려고 동시다발적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1월 초에 하루하루 일들이 터졌는지 모르겠다.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고,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처럼. 안녕 그리고 안녕 -


PS. 늘 부족한 글을 읽어주는 구독자 여러분들께 새 해의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의 2025년 한 해는 상반기는 무난했고, 하반기는 마치 '지금처럼 살면 손해야!' 라는 경고장을 날리듯이 보란 듯 제가 해오던 일들과 관계에 변화가 생기는 기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이들에게 그런 터닝포인트가 되는 시점이 있기 마련이겠으나 연초부터 가족의 건강과 반려견과의 이별, 그리고 파트너와의 아주 작은 다툼은 앞으로 2026년을 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맞이해야하는지 많은 걸 느끼게 해주는 일들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8년차 직장인에서 초보대표로 거듭나며 무섭고 두려운 것들이 투성이지만 그런 부족함도 하나의 이야기로 덤덤히 브런치에 풀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올 해도 잘부탁드리며, 건강하고 웃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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