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록에 남지 않는 진짜 일의 기록

신입 팀장의 회고

by 오흔

사회 초년생 시절의 일이다.


유일한 막내이자 직원인 나와 임원급 대표님들은 종종 술자리를 가졌다. 으레 그 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보통 과거에 본인이 얼마나 잘나갔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아주 약간은 앞으로 회사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느 날엔가 사업팀 실장님이 나에게 '꿈이 뭐야?' 라며 질문했고, 나는 그 질문에 '꿈이 없다' 는 이야기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에 실장님은 젊은이가 왜 꿈이 없냐며 갑자기 건방지다는 이야기로 나에게 막무가내로 폭언을 퍼붓곤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후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내가 본인을 무시하고, 본인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정말 술김에 주정을 부린 것이었다.


퇴직금을 주지 않겠다는 회사도 있었고, 사직서를 쓸 때 미션을 주면서 이것만 통과하면 보내주겠다는 회사도 있었고 정말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그 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축적되었다면 축적되어 어느 정도의 '담력'은 길러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의 퇴사를 겪으면서 나의 '담력' 은 아직도 멀었다는 사실과

내 리더쉽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까워져야 할 사람보다
멀어져야 할 사람의 유형 리스트만 늘어간다.



처음 팀원이 생겼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이었다.

말 그대로 팀원에게 일을 알려주지 않았고, 팀원의 능력을 믿지도 않았고, 그래서 오히려 조기 퇴근을 시키거나 허드렛일만 배정했다. 어느 팀원을 일찍 퇴근시켜주는 나를 좋은 상사라하고, 어느 팀원은 성장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팀원들을 일찍 보내고 팀원들의 몫 이상을 해내며 나를 갈아넣는 리딩을 해왔다.


다음 팀원이 생겼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해결사'가 되는 일이었다.

업무량의 균형을 잡으면서 모든 팀원들이 일을 하게 되었지만,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겼을때는 여과없이 내가 나서서 처리해주었다. 그랬더니 대부분은 성장하지 못했다. 문제 해결능력의 기회를 빼앗으니 결과적으로 잘 된 프로젝트를 자신의 능력이라 자부하고, 문제가 생기면 여과없이 나를 찾았다.


그리고 지금의 리딩에서 나는 그간의 경험으로 팀원 개개인의 성장도 팀 전체의 목표달성도 자신했다. 그런데

이제는 관계의 문제였다. A의 말을 들어주면, B는 억울해했고. B의 말을 듣다보면 A는 나쁜 사람인데 돌아보면 A와 B는 다른 이들을 뒷담화하면서 친해져있다. 초기 시그널을 읽고도 직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개개인 감정으로 직원을 다루다보면 누구는 어려서, 누구는 아파서, 누구는 처음이라 등등의 불필요한 사유들로 제대로 된 리딩이 흐려졌다.




앞과 뒤가 다르고, 왜곡되고, 나의 헌신과 다르게 평판이 갈리는 모습들을 마주하면 드럽고 치사해서 일을 때려치우고 싶고 사람들도 싫어서 무인도에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가끔은 내가 원해서 리딩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이래도 G랄, 저래도 G랄을 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기도 하고 너무 화가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일을 좋아한다.

일을 하는 나를 좋아한다.


일을 하고 있으면 힘들면서도 살아있음을 느끼고, 일의 마무리에 맥주 한 잔 하는 것이 나의 큰 낙이다.

이 사실 하나로 지금의 연차와 커리어를 쌓아왔다. 내 선택에는 항상 내 스스로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있고, 나에 대한 회고는 끊임없이 한다. 하지만 내가 모든 걸 책임지고 케어할 수 없다는 것과 좋은 리더가 꼭 팀원 개개인에게 맞춤형 리스너가 될 필요가 없다는 걸 ..


나야말로 공과 사를 구분하는 리더로 성장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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