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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번아웃을 겪으면서

by 오흔

지금 상태가 우울증과 번아웃이 동반된 상태에요.






몇 일 전, 인사팀장님과의 면담이 진행되었다.


승진한지도 언 1년이 넘었건만 조직개편을 5번이나 진행했고 그 와중에 내 상사는 두 번이나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내 팀원들을 정식으로 평가해야 하는 위치와 상황에 왔는데, 문제는 새로운 상사들의 어떠한 안내와 교육도 없어서 결국 부랴부랴 인사팀장과 1:1로 사내 성과평가에 대한 교육이 진행된 것이었다.


20분 정도 성과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있노라니 질문이 생길법도 한데 질문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 우리회사는 이렇게 평가하는구나.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전부였다. 내 흐리멍텅한 눈의 초점을 읽은 인사팀장님은 궁금한 게 있는지 아니면 그냥 요즘 어떤지 내 근황을 물었고 별다른 이야기가 없자 인사팀장님은 먼저 운을 띄웠다.


사실은 오흔님의 감정상태에 대해서 전달받았어요. 지금 일어나고 있는 회사의 잦은 조직개편과 구조 그리고 상사의 변경은 물론 스트레스겠지만 그래도 그만둘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버텨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팀 원들을 매니징하는 일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상황들. 비단 오흔님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저도 이 나이에 새롭게 배우고 배워가고 있는 걸요.

우리 조직이 좀 특이한 것 같기도 해요.


위로인지 공감인지 잘 모를 인사팀장님의 말을 듣고, 나는 그저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가까운 날에 인사팀장님과의 점심식사를 예약했다. 그제서야 오늘 날의 성과평가 교육을 받지 않아서 이뤄진 만남이기도 하지만 여차저차 나의 여러모로의 힘듦을 전달받아 이 자리가 마련된 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최근 나는 두 번째 '번아웃' 을 겪고 있다.


처음 번아웃을 겪었을 때는 솔직히 막막했다. 32살, 적지도 않은 나이에 번아웃이 오면 어쩌자는 말인가.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승승장구 할 일들만 펼쳐져 있는데 나는 못 버티고 회사에서 도망치듯이 퇴사를 했다. 그리고 딱 한 달. 거의 집순이처럼 집에서 밥먹고, 글쓰고, 영상을 배우고 찍고 하는 평범한 하루하루 속에서도 뭐가 그렇게 불안했는지 다시 작은 회사에 다시 면접을 보고 들어가 지금의 회사까지 이직을 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 번아웃이 왔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다시 또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나 지금 35살인데 다시 번아웃!? 남들은 평범하게 회사를 잘 다니는 것 같은데 왜 내 회사생활의 유효기간은 1년 5개월이란 말인가? 난 왜 첫 회사를 제외하곤 2년도 채우지 못하고 스스로 나가떨어지는 인간이란 말인가? 자책했고 그 와중에 무기력했고 따라주지 않는 머리와 몸으로 팀을 이끌고 일을 겨우겨우 해내고 있었다.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모든 일에 진심이었고, 모든 일에 뒤도 안돌아보고 내 자신을 갈아넣을 때바다 보람되고 희열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지만 이 에너지가 또 다시 고갈될 날이 올거라는 것을. 그 덕에 빠른 승진과 입사 6개월만에 연봉을 다시 올렸지만 그 만큼의 댓가는 혹독히 따르고 있는 요즘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원인을 내 자신에게서 찾기 바빴다. 두 번째 번아웃이 왔다고 해서 '다시 번아웃인가?! 오키! 다시 극복하지!' 라는 마음가짐을 갖긴 어렵다. 매 번 막막하고, 뭘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하루에 2-3시간 정도의 얉은 수면, 그럼에도 회사는 누구보다 일찍가서 놓친 업무들을 처리한다. 업무를 더더욱 놓치지 않고 잡고있노라면 전화를 받았다가 메일을 썼다가 A프로젝트를 했다가 C프로젝트를 하고. 그렇게 멀티플레이로 뒷골이 아파오면 뒤에서 나를 부르는 팀원들의 환청이 들린다. 확인을 해주고, 업무를 지시하고 나면 면담이 이어지고 면담이 끝나면 이제 오롯이 팀원들이 간 사무실에서 못다한 내 일을 처리하기 바쁘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침대에서 집중되지 않는 텔레비전에 오롯이 내 시선과 생각을 맡기지만 그마저도 5분도 채 되지 않아 내일의 도시락을 준비하고, 손가락은 분주히 움직인다.


그나마 첫 번아웃을 겪고 내가 배운 것은 굳이 뭘 극복해내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 불안해질때 불안해지지 않도록 내 자신을 컨트롤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불안해하면 불안해하는대로, 무기력하면 무기력한대로. 대신 부정적인 생각들은 떨쳐버리려고 노력한다. 먹고 싶은 음식, 하고 싶은 것들을 찾고 조금 더 내가 나은 방향으로 몸과 마음이 편한 방식으로 따르려고 한다.


마치 미역줄기처럼 물의 흐름에 따라서 그냥 몸을 맡긴다.

그렇게 지금 나는 두 번째, 번아웃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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