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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에 대처하는 팀장의 자세 2

일보다 제일 어려운

by 오흔

https://brunch.co.kr/@souldaeri/174



지난 글을 올린 후, 조회 수가 많이 올라가서 덜컥 겁이 나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면담을 위한 준비로 정말 주말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내 상사는 감정도 없고, 공감도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에 일도 못하는 무능력자같다. 어떻게 저 인간이 이 회사에 먼저 들어와서 승진을 했을까? 어떻게 저런 인간이 내 상사가 된거야!? 내가 해도 저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심지어 결혼도 했다면 도대체 어떻게 결혼을 했는지? 등등 모든 분노의 중심이 '내 상사'가 된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그 분노에 공감하는 이들이 하나 둘 모여 시간이 될 때마다 행하는 '상사 씹기' 가 퍽퍽한 회사를 다니는 유일한 낙이되고, 그 행위 하나로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친구가 된다.


그런 '낙' 을 이해한다. 나 역시 사원이었던 신입이었던 상사 때문에 화장실가서 울어본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나를 싫어했던 상사도 있었고, 나를 힘들어 했던 상사도 있었던 것 같고, 나와 친해지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서 멀어졌던 상사도 있었던 것 같다. 아이를 낳아서 길러보면 부모의 마음을 안다더니 결국 사람은 본인이 그 상황이 되어봐야 알 수 있다.


주말 내내 Chat GPT에 최대한 나의 감정과 그 동안의 일들을 기록하면서 '정리' 그리고 또 '정리' 했다. 첫 날은 어찌도 화가 나고 울분이 터지던지 그냥 버럭 사무실에서 화라도 낼 걸 후회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를 자꾸 회고하고 분노가 생겼던 순간을 계속 리마인드하니 신기하게도 사람이 초연해졌다. 그리고 면담 시뮬레이션만 10번도 넘게 했다.




드디어 면담 날,

해당 직원은 나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고 겉보기에도 굉장히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채 회의실로 들어섰다.










오늘 이 미팅은 그 동안의 저희 팀에 합류했던 '도토리(닉네임)' 님과의 시간에 대해서 회고해보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업무를 잘 해나갈 수 있는지 그리고 저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 풀고 싶어서 마련한 면담입니다.


이 말을 하기까지 ChatGPT 의 힘도 빌렸지만 대략 3일이 걸렸다.


양해를 구하고 내 말이 끝난 이후에 답변을 달라고 했다. 아주 간결하고 짧게 얘기했다. 이 면담이 오기까지의 상황, 그 상황에서 팀장인 내가 놓친 부분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아쉬웠던 점, 반대로 '도토리(닉네임)' 직원에게 기대했던 점과 아쉬웠던 점, 앞으로 내가 이 면담을 끝나고 '도토리(닉네임)' 에게 제안할 수 있는 선택지들에 대해서 딱 5분 이야기를 했다.


이 5분을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회고와 수정 그리고 수정의 반복이었다. 내 이야기를 쭉 듣던 '도토리(닉네임)'는 어쩐지 녹음을 한 것 같았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 이야기에 하나하나 답변을 하던 '도토리(닉네임)'는 상사로서 내가 직원을 끝까지 어떠한 업무 투입에 있어서 설득시키고 이해시키지 못한 부분과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한 신뢰를 잃은 점, 아직도 본인이 맡은 사업의 취지를 이해할 수 없고 (물론 이해할 마음도 없지만) 그래서 의욕도 없고 동기부여도 없었다는 점, 동료들에게 뒷담화를 한 것은 인정했지만 사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리고 전혀 내가 상처를 받을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 역시 오해가 있었던 지점을 차분히 설명했고, 대화는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경력직'이라는 이유로 조율을 먼저 꺼내지 않기로.

그게 배려가 아니라, 때로는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면담의 끝은 '부서이동'을 전제로 내 상사와 면담을 희망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도토리(닉네임)'에게 부서이동 외에 사람 대 사람으로 나에게 이야기할 것은 없는지 묻자,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다고 했다.


면담에 대한 내용은 내 상사에게도 즉각 보고되었고, 다음 날 바로 상사와 '도토리(닉네임)' 직원과의 면담이 잡혔다. 당분간 '도토리(닉네임)' 에게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고 대기하도록 안내했다. 면담을 하고나니 속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임박해서 '도토리(닉네임)' 에게 개인 DM 이 왔다.



팀장님 이야기 좀 해요


왜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을까,

팀장이 되면 일도 책임도 그리고 면담도 많아진다는 것을 ....






어쩌다 우리의 결말이 '부서이동을 위한 상사와의 면담' 으로 끝났는지 묻는 '도토리' 에게 나는 다시 차분히 설명했다. 그리고 그 끝에 '도토리'는 나에게 그 동안 감정적인 대응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본인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일단은 내일 면담 후 생각을 정리해보겠다고 했다. 이기고 지는것을 떠나서 이런 면담은 과정 자체가 힘들다.


부정과 미움에 대해 나서서 이야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몇 일 후, 다른 부서에서 나와 친했던 팀장이 퇴사를 한다. 야근은 버틸 수 있지만 직원들이 나가고 들어오고를 반복하면서 케어하는 것도 여간 사람 진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일을 10년을 넘게했어도 적응이 안된다는 그녀는 결국 회사를 나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그녀의 꽃길을 응원했고,

그녀는 나의 평안을 바랬다.


그래서

오늘도 무사히

팀장으로 잘 버텨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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