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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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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a Sep 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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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달려 카파도키아에 떨어진 건 새벽 4시 정도였다.

다운 받아 두었던 지도에 미리 예약해 둔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했지만 허사였다.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딘지 지도가 깜빡 깜빡 표시를 해줘도 

어느 쪽으로 출발해야 하는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한번도 내가 길치라고 생각해 본 적 없던 나는 

여행이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내가 심각한 방향치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그 새벽, 캄캄한 어둠 속 듬성듬성 있는 가로등, 

그리고 내 뒤를 자꾸만 따라오는 강아지들이 왠지 조금 무서워져

이 길, 저 길, 일단 대충 느낌 오는 곳으로 열심히 걸었고, 

원점으로 되돌아 오기를 3번정도 반복한 후에야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새벽이니 대충 체크인 하고 내일 아침에 여권을 보여달라는 말에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가니 한 여자가 곤히 자고 있다. 

침대를 보니 저절로 몸이 움직인다. 

빠릿한 몸놀림으로 짐을 내려놓고 겉옷을 벗은 뒤 침대로 들어가 누웠다. 

기침이 연신 나오더니 멈추지 않는다. 

감기기운이 좀 있었는데 새벽 공기가 더 심해진 기침의 원인인 듯 하다. 

내 기침 소리에 처음에는 조금 뒤척이는 정도였던 그녀가 이제는 욕설까지 내뱉기 시작했다. 

기침소리나 재채기 소리가 얼마나 사람을 예민하게 만드는지를 잘 아는 나로서는 미안한 마음에 주섬주섬 겉옷을 다시 주워 입고는 옥상으로 향했다. 

이제 막 해가 뜨려나 보다. 

누군가 나와 같은 사람이 다녀갔던 건지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의자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바위들의 도시를 응시한다. 

처음 트라브존에 발을 디뎠던 낯선 공기부터 시작해 지금 내가앉아 보고 있는 동 틀 무렵 바위들의 찬 냄새까지 나를 지나간다.

여행 전과 여행 후로 내 인생이 나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무심코 고개를 내밀자, 

죽기 직전의 파노라마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인생의 몇 페이지들이 나를 빠르게 훑는다.

나는 참 게으른 아이였고, 노력 부족형의 올빼미였다. 

열심히 공부를 했어도 시험을 보는 그 날은 늦잠을 유난히 더잔다거나, 몸이 아프다거나 했었고 

면접 날에는 5분만 일찍 출발했으면 됐을 텐데 그 5분 지각으로 마이너스를 먹고 들어갔다.

그래 놓고는 이것 저것 핑계 구실을 만들어 합리화로 내 자신을 다독였고, 

그 분야에 있어서 나는 가히 전문가였다. 

일기 예보는 맞든 틀리든 오늘의 날씨를 친절하게도 예언해준다. 

분명 오늘은 춥다고 했는데 옷을 얇게 입고 나온 주제에 춥다고 징징거리는 꼴이라니, 

그리고 그 꼴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니.

사회 생활에 발을 디디면서 나는 참 많은 후회를 했었다. 잘 할 걸, 조금만 더 해볼 걸.

이토록 지독했던 게으름들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던 것들을 만회하고자 후회 이후 나는 꽤나 복잡하게 그리고 또 정신 없이 살았다. 

스무 살 이후로는 천천히 걸어본 적이 없었고 1년 중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그렇게 고군분투했던 짧은 몇 년, 

이제 막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목에 건 이십 대의 나에게는 당연히 감당하기 벅찼을 시간이었다. 

지친 내가 그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배낭 하나에 의지해 떠난 여행, 그리고 뜻밖의 고독의 시간.

해가 완전히 떠오름과 동시에 여기 저기서 열기구들이 높이 날아오른다. 진풍경이다. 

이 순간까지의 여정이 너무 감사해서,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쫓기듯 걸어온 시간들 속에서 이제야 비로소 여유를 손 끝에 만져본 기분을 껴안은 채 

다시 방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여전히 곤히 자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기침 없이 나도 곤히 잠든다.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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