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을 내가 존경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어찌 그리 사셨는지 였다.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부자놀이를 할 때가 있었다.
아 추운데 일본 가서 온천이나 하다가 올까?
첫 데이트는 무조건 프랑스지.
갑자기 파스타가 먹고 싶어졌어. 이탈리아 가서 파스타 먹고 오자.
그 분은 부자가 아님에도, 재벌이 아님에도 실제로 이런 삶을 사신 분이셨다.
동경해 오던 삶이고, 또 말이 안 되는 삶이라 생각해서 했던 말장난을 실제로 사신 분이셨다.
그 분이 비웃을 걸 각오하고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어 다시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말을 꺼냈다.
그건 참으로 어리석은 걱정이었다.
내가 왜 니가 하고 싶은 걸 가지고 뭐라고 하겠니, 다만 쉽지 않은 길일 게 분명하니 각오를 하라는 거야. 더 많이 경험하고, 그걸 써. 내가 이렇게 보면 있잖아, 글빨은 곧 경험인 것 같더라.
그렇게 그 분의 곁에서 그 분의 지식들, 그리고 경험담들을 전해 들으며 내가 그 분을 만난 것 자체가 내겐 아주 커다란 경험이라고 하면 그건 너무 오만할까.
네모가 사각형이 될 수도 있다는 다양한 시각들, 그리고 네모는 당연히 네모라는 공감들까지.
그 분과 함께 대화하는 건 내겐 참 즐거운 일이었다.
같이 차를 타고 갈 때마다 조잘거리는 내 엉뚱한 질문들에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셨고, 그걸 들으며 어느새 그 분의 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무엇보다 그 분께 가장 크게 배웠던 건 사랑하는 내 인생이었다.
언젠가 그 분께 인생의 목표를 여쭈어 본 적이 있었다.
사업 확장이나 혹은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야 라고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그 분의 대답은 또 한번 내 마음을 끄덕이게 했다.
한 번 사는 거잖아. 큰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나보고 일 벌레처럼 하루를 살라는 말인데, 나는 좀 즐기면서 살고 싶어. 일을 할 수 없게 될 때쯤, 하와이에 집을 한 채 장만하는 거야. 운동을 열심히 해서 하루 종일 서핑하고, 저녁으로는 집 밥을 먹는 거. 그게 내 인생의 목표야.
그 분이 그렇게 살아온 삶이 다른 누군가의 입장에선 사치일지도 모른다.
맛있는 초밥이 먹고 싶어 일본으로 날아가고,
분위기 좋은 데서 술 한잔 하고 싶어 영국에서 이탈리아까지 차를 몰고 달려가고.
그 분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책임감 없는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저 그 분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건 그 분 자신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아는가. 그렇게 그 분이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며 했던 여러 선택들로 인해 역시 잃은 것 또한 있다는 것을.
그 분은 분명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내는 삶 동안 본인이 잃어야만 했던 것들, 잃을 수 밖에 없었던 것들을.
내일을 위해 무언가를 아끼는 분이 아니셨고, 잃은 것들을 되돌아보며 다시 갖기 위해 손 뻗는 분이 아니셨다.
그러니까 그 분은 미래가 되어갈 지금을, 과거로 남게 될 오늘을 사셨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