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경험한 자의 시작은 다르다
새로운 걸 좋아한다. 달리 말하면 잘 질린다. 그래서 늘 꾸준함이 부족하다. 반면 실행력은 좋아서 하고 싶은 운동이 생기면 학원 알아보고 등록하는 건 초스피드다. 그러나 새로운 운동복이 하나 둘 늘어날 때쯤, 그 운동이 그만하고 싶어 진다. 핑계는 다양하다. 스케줄이 엉켜서, 어깨에 무리가 와서, 날이 추워서, 학원비가 비싸서. 기구필라테스, 테니스, 헬스 기타 등등의 운동을 그렇게 그만두었다. 정확히 3개월만 지나면 모든 운동에 정체기가 찾아오는 편이다. 난 도대체 왜 이 모양일까... 매번 자괴감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시작만 하고 끝을 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참 많다. 공모전에 시나리오를 내기 위해 몇 달을 준비해 원고를 썼지만, 마감시간에 치여 포기해 버린 적도 있다. 당시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번엔 너무 급하게 준비했어. 잘 다듬어서 다음 공모전에 낼 거야.' 하지만 다음 공모전에도 그다음 공모전에도 새로운 스토리만 빌드업하다 끝났다. 기존에 써놓은 스토리보다 새 스토리에 더 흥미롭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방송 구성작가로 일하면 매주 새로운 아이템과 대본을 쓰고, 정해진 요일에 방송을 꼭 내야 하다 보니, 질릴 틈이 없었고 내 기질대로 흐지부지 끝낼 수도 없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공동집필한 책도 발간할 수 있었다. 혼자라면 절대 끝을 보지 못했을 일들이다. 동료애 또는 타인으로부터의 자극이 나의 등을 떠밀어 결국 '끝'에 다다르게 해 줬다.
스스로 끝까지 도달하는 힘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습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스스로 맺은 끝을 경험한 자의 또 다른 시작은 분명히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온전히 나의 의지와 끈기로 이뤄낸 시작과 끝. 나는 그것이 타고나야 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원래 끈기가 있는 사람. 뭔가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 시작이 반이라는 말만 덥석 믿고 아무 계획 없이 뛰어든 나는 그 끈기라는 것이 어디선가 주어지는 건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학습하는 거였다. 온전한 끝맺음을 통해 매번 조금씩 조금씩 쌓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시작은 나와 다르게 즉흥적이지 않고, 무계획 적이지 않다. 항상 마지막 피니쉬 라인까지 떠올리며 시작한다. 테니스나 한 번 배워볼까...가 아니라, 테니스 동호회에 가입해 취미로 할 수 있을 때까지 배워보자. 공모전에 한번 도전해 볼까...가 아니라, 이번 공모전을 준비하며 완성한 시나리오는 각색해서 다른 플랫폼에 연재해 볼까? 이렇게 말이다.
끝을 떠올리며 시작하면 잠시 지칠 수 있겠지만, 결국 끝까지 다다를 확률이 높다.
나는 아직 홀로 몸을 가눌 수 없는 미약한 끈기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지지대가 필요하다. 그래서 한 달 글쓰기 챌린지인 글루틴에 참여하고, 매주 독서모임에도 나간다. 그 안에서 경험한 완결의 아름다움, 학습된 끈기가 자양분이 되어 스스로 마침표를 자신 있게 찍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글루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