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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Apr 04. 2019

마이너스 인생

여전히 빚을 갚아야 할 여행이 있다

  이따금 여행이 그리워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때가 있다. 사실 최근의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도 여건이 되지 않으니 별 수 없이 참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없었던 시간과 돈을 만들어서 떠났던 때도 있었다. 나는 스물 여섯이었고 파트로 일하게 된 학원에서 업무를 배워갈 무렵이었다. 지갑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일을 시작했으니 돈은 생기겠지만 떠날 수 있는 타이밍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시간과 돈이 둘 다 넉넉해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인생에서 여행을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시작된 것 같다. 통장 잔고가 음수인 일상이. 그리고 그때부터 마이너스 인생이 왠지 두렵지만은 않다.


  대학교 4학년을 마친 뒤 동남아를 다녀오고 7개월쯤 지나 여름 같은 가을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겨울엔 더 다닐 학교도 직장도 없었지만 하나씩 일을 만들었다.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고, 아르바이트를 했고, 과외를 하면서 공부도 했다. 친한 친구와 후배와 함께 '수다'라는 이야기 모임도 만들어서 꾸준히 나갔다. 그러다 초여름에 동남아 여행기로 출간 계약을 맺었는데, 완결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야 하는 기한이 있었다. 어느덧 한숨 돌리기 힘든 날들이 이어졌다. 점점 일이 버거워 카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는데 곧바로 과외가 끊겼다. 여행기 원고를 마무리하고 나니 바쁘던 생활이 또 한순간 잠잠해졌다. 참 평화로운 날들이었지만 생활비를 벌어야 했으므로 곧 친구의 소개로 연이 닿은 새로운 학원으로 출근했다.


  학원에는 곧 그만둘 강사가 아직은 일하고 있어서 나는 곧바로 본격적으로 일을 맡지는 않았다.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도 하루 세 시간으로 몹시 적었다. 일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마냥 자유롭지도 않은 애매한 타이밍. 문득 단 일주일만 어디론가 다녀오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학원에 최소한 반년 이상은 몸 담을 것이고 정식으로 수업을 맡기 시작하면 당분간 여행은 꿈도 못 꾸는 처지가 될 테니. 추석 연휴에 앞뒤로 이틀만 쉬어도 되냐고 학원에 물으니 흔쾌히 승낙을 해줬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을 얻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은행 앱 잔액을 물어봤다. 곧 명료한 대답이 돌아왔다.


 '네 처지에 여행은 무슨 여행.'

 

  젠장. 동남아 여행 이후로 나름으로 열심히 일했던 것 같은데 한 달을 쓰기만 했더니 벌써 다음 급여까지의 생활비도 빠듯했다. 얼마간 쓰지 않아서 돈이 얼마나 남아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계좌들 까지 다 들여다보며 총액을 계산해봤다. 희망은커녕 잔인하도록 현실적인 숫자에 마음만 쓰렸다. 그런 상황에 대뜸 비행기 표를 끊는 것은 아주 멍청한 일이 될지도 몰랐다. 그러면 여행을 포기해야 했을까. 하지만 돈은 어떻게든 벌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을 얻기란 점점 어려워질 것이었다. 흔히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하지 않나.


  그렇게 생에 첫 빚을 얻었다. 마이너스가 된 계좌로 일주일간 홀로 러시아에 다녀왔다. 브런치에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일주일>이라는 여행기를 꾸준히 써 내려갔다. 여행지에 대한 기본적인 감상을 바탕으로 혼자 하는 여행에서 마주치는 잡다한 사건과 감정, 연해주에 남아 있는 고려인의 흔적에 관해 이야기하는 여행기였다. 일상에서 얻기 힘든 강렬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행을 위한 빚은 어쩌면 나에 대한 투자이기도 했다. 물론 그전까지는 빚이 아니라 죽어라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여행을 다녔다. 어쩌면 순서가 바뀌었을 뿐이다.


  사실 대학에 다닐 때는 훨씬 더 궁핍했던 날들이 많았다. 친구들과 네 명이 함께 원룸에 살 때 옹색함은 절정을 맞았다. 냉동만두 몇 개가 식사의 전부일 때도 많았고 하루에 저녁으로 한 끼만 먹는 게 습관이 되기도 했더랬다. 술값은 어디서 났는지 밥은 못 챙겨 먹어도 음주는 꾸준하던, 그런 아둔함이 즐거웠던 시절.


  아마 그때 밥 좀 제대로 챙겨 먹자고 대출을 받았다면 여행보다도 정당해 보였을 것이다. 대학생도 생활비 명목으로 소액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빚을 낸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단돈 50만 원이라도 내 몫의 빚이 생긴다는 것이 남들 몰래 하면 안 될 일을 저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론 빚이라는 단어가 마냥 두렵기도 했다. 빚을 져서 돈을 쓸 바에는 배를 좀 곯는 것이 나았다. 정 힘들 때는 가족 중 누군가에게 돈이 떨어졌으니 조금 보내달라 이야기하기도 지금보다 몇 곱절 쉬웠다. 그때는 진짜 빚보다 마음의 빚이 더 무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 스물여섯의 어느 시점에는 계좌에 마이너스가 붙고 백만 원, 이백만 원이 쌓여도 썩 무섭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이만큼 쌓였나, 뭐 갚으면 되지' 하는 태평함까지 생겼다. 빚으로 여행을 다녀온 이후, 배를 곯아도 50만 원 대출이 두렵던 더 어린 시절과는 무언가 달라졌던 것일까. 찔끔찔끔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보다는 강사로서 받는 급여가 조금 낫기 때문인 것도 한 이유겠지만, 적어도 내 생활과 소비는 직접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 커져있었. 어쩌면 단지 내성이 생긴 것이고 혹은 *톱니 효과의 일종일 수도 있다.


(* 톱니 효과 : 한 번 늘어난 소비가 소득 수준이 감소해도 잘 줄어들지 않는 현상 - 제임스 듀젠베리)


  급여를 받아도 그대로 계좌는 마이너스니, 월급은 스쳐 갈 뿐이었다. 내가 일을 한 게 맞나, 하는 허탈함이 들던 월급날은 몇 번이나 그렇게 흘러갔다. 모든 게 나의 업이라 해도 일하는 시간에 비해 쓸 수 있는 돈이 현저히 적으니 꽤 고달프기도 했다. 이 타이밍에 한 가지 고백할 일이 있는데, 마이너스 생활이 끝이 보이던 때에 투자랍시고 DSLR 카메라를 구매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사진은 꼭 배워보고 싶은 분야였고 그러면 여행기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하나 더 얻으리라 믿었다. 그 대신에 당분간 술자리를 포기하기로 결심했고, 매끼 식사의 퀄리티도 낮출 수밖에 없었다. 퀄리티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소고기가 삼겹살이 되는 퀄리티 저하가 아니라, 몇 천 원짜리 도시락이 라면 한 그릇이 되는 그런 변화. 나에 대한 투자의 대가로 감내해야 하는 마이너스 인생은 대개 그런 식이었다.


  어떤 사람은 마이너스를 오가며 생활하는 게 무슨 자랑이라도 되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과소비를 투자로 포장하지 말라는 비아냥이 들리는 것도 같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마음 한편에 약간의 뿌듯함이 있다. 어리다면 어린 시절에, 빚을 얻어서라도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애써본 일과 스스로의 성장에 투자했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는 않다. 의존을 줄이고 내 두 발로 걷기 위해 꾸준히 일했다. 투자라는 명목으로 행한 지출 책임지려 힘쓰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가치 있는 수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스물여섯의 가을, 겨울, 그리고 스물일곱의 봄까지 이어진 마이너스 인생은 나에게 있어서 고달프긴 해도 마냥 결핍은 아닌 날들이었다.


  계속해서 안정된 직장은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이너스 통장을 없애버려도 될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돌이켜보면 갚을 자신이 있는 수준의 빚으로 나에게 투자하는 것은 생활을 이끌어주는 하나의 원동력이었다. 무얼 원하든 마이너스 통장 따위는 필요 없는 배경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빚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 덕분에 적절한 시기에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왔고, 사진도 시작할 수 있었다. '더 안정적인 직장이 생기면, 돈이 충분히 모이면'이라는 식으로 미루기에는 나 같이 지독하게 평범한 환경의 이십 대가 처한 시간은 오늘날 너무나 빠르게 흐른다.


  다만, 내가 갚아야 할 것들이 그저 계좌만 채우면 끝나는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하물며 잠자는 시간이 부족해도 수면빚이 쌓이는데, 내가 지금껏 살아오며 진 빚이 돈 몇 푼이 전부일 리가 없다. 마이너스 인생은 통장 잔액이 양수로 바뀌어도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래. 한국이 추석일 때 여행하며 은행에 졌던 빚은 금방 갚았지만, 일 년에 두 번뿐인 명절을 제 욕심에 홀로 타지에서 보내며 쌓인 마음의 빚을 나는 갚았던가. 그리고 그 수많은 여행에서, 가야 할 길이 막막하던 낯선 길 위에서 진 빚은 무엇으로 갚아야 할까. 어쩌면 마이너스 인생이란 처음부터 정해진 숙명일지도 모른다.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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