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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재희 Dec 28. 2017

국립대 캠퍼스의 주차요금

경합성과 배제성

 대학 신입생 때, 동기 H와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캠퍼스안에 주차되어있는 차량들을 지켜보던 H가 갑자기 주차요금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H : 여기 학교에서도 주차비 받는다더라.

나 : 응? 주차비?

H : 우리 학교 국립대잖아. 국립대 캠퍼스에서 주차 장사로 돈 벌어도 되나?

나 : 아.. 근데 주차비가 없으면 여기 주차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질 것 같은데.

H : 그것도 그렇긴 하네. 그래도 뭔가 좀 마음에 안 드는데. 학교가 주차장도 아니고.




부산의 한 대학교 캠퍼스의 주차요금

 처음 대학에 왔을 땐 캠퍼스에서 차량이 나갈 때마다 주차요금을 징수하는 모습이 어색하게 보이기도 했다. 더구나 여기는 국비의 지원을 받는 국립대학교이지 않은가. 아마 '뭔가 좀 마음에 안 든다'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H 한 명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내 다른 친구도 종종 '아 여기 등록금 내고 다니는  학생인데 매번 이렇게 주차비 내야 되나'라고 말하곤 했다.


 그렇다면 대학교는 실제로 '주차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주차비가 무료일 때 벌어질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면 마냥 '국립대학교니까 주차비를 없애라'는 주장을 하긴 힘들다. H는 주차비를 받는 캠퍼스를 보며  "학교가 주차장도 아니고"라고 말했지만, 주차비가 없어지는 순간 학교는 정말로 주차장이 된다. 특히나 우리 학교는 완전히 번화가의 중심에 있어서 주차수요가 엄청나게 많은 곳이다. 주차요금이라는 비용이  없으면 캠퍼스는 무료주차를 위해 빙글빙글 캠퍼스를 도는 차량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나마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은 완전히 가득 차고, 자리를 찾지 못한 차량들로 거리까지 훨씬 혼잡해질 것이다. 대학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이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조금 더 경제학적으로 접근해보자면, 주차비를 무료로 바꿀 경우 해당 주차공간이라는 상품은 경합성은 있는데 배제성은 없는 재화가 된다. 여기서 경합성이란 한 사람의 소비로 다른 사람이 소비할 수 있는 양이 줄어드는 성질을 말하고, 이란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재화를 이용할 수 없는 성질을 말한다. 비배제성을 띄는 재화들은 흔히 '공유지의 비극'이라 말하는 문제를 겪는다. 예를 들면 수렵이나 채취에 대한 아무런 환경규제가 없는 경우, 사람들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무분별하게 산과 바다의 생물을 고갈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다.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한 과소비 문제가 발생할 때 이를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한다.


 번화가에 위치한 대학 캠퍼스의 주차공간은 명백하게 경합성을 갖는다. 한 사람이 주차를 하면 다른 사람은 그 공간을 이용할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만약 주차비가 없다면 어떻게든 주차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공급되는 공간은 고정되어 있는데 비해 수요가 지나치게 많아 캠퍼스가 엉망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주차요금을 통해 주차공간이라는 재화에 배제성을 부여하고 한정된 공급에 맞게 수요량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교에서 주차요금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지나치게 많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린다. 앞서 말했듯 적정한 수준의 주차비는 캠퍼스가 주차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하지만, 대학이 '주차 장사'를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의 수익을 올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특히나 국립대라면 수요를 조절하는 수준 이상의 가격으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을 정도의 주차요금은 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혹은 주차요금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의 투자로 갚아줄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런 방법을 선택해줄지는 잘 모르겠다.




 경합성 : 한 사람의 소비로 다른 사람이 소비할 수 있는 양이 줄어드는 성질

 배제성 :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재화를 이용할 수 없는 성질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띄는 재화를 '공공재'라고 하고, 경합성과 배제성을 가진 재화를 '사유재'라고 한다. 공공재는 무임승차와 외부효과 등의 시장실패가 발생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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