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

by 오지나

“내일모레 마흔”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은 30대 후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어쩌다보니 브런치에 쓰는 첫 글이 이런 글이 되었는데, 그냥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보니 혼자 끄적끄적 생각을 정리정돈 되지 않은 채 마구 적을 곳이 필요했다.

운영중인 블로그는 정보성글을 주로 올리고, 지인들도 아는 공간이기에 그냥 혼자 글을 쓸 곳이 필요했다.


그냥, 혼자 쓰는 글로 만족하려면 핸드폰 개인 메모장에 적었겠지.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생각을 나누었으면 하는 마음반, 내 생각을 비난받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 반인지라 아직은 누군가 내 글을읽는다면 ‘이런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정도였으면 좋겠다.


혼자이지만, 혼자는 아니고싶은 마음이랄까.


뭐라 정리정돈이 안되는 것 같지만, 그냥… 일기처럼 적어보는 글들이다.

때로는 생각나는대로 그냥 적는 일기일 수도 있고, 때로는 떠오르는 소설? 망상? 의 일부일 수도 있겠다.


그냥 머릿속에만 두면, 시간이 흘러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알 길이 없으니 그냥 떠오르는 말들을 마구 적는 곳으로 이용하겠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요즘 다양한 것들을 생각하는데, 그 것들을 다양한 말로 묶어볼 수 있겠다만, 당장 생각나는 문장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 생각들을 그냥 쭉 적어보려한다.





좋은머리, 내 능력의 노화(?)


부모님께 감사해야하는지, 신께 감사해야하는지 모르겠다만, 난 머리가 좋은 편이다.


누군가 보면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만, 일정부분에 한해서는 난 머리가 좋은 편이다.

30대 후반인 지금도 10대시절의 일부를 동영상처럼 기억한다.

그 날 누가 어떤 옷을 입고 있었고, 어떤 모션을 취하며 어떤 말을 했었는지를 기억한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으려나?

이걸 능력이라고 말해도 될 지 모르겠다만, 이걸 설명할 만한 단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으니, 그냥 능력이라 하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으로 묶은 다양한 생각들 중 하나, 그 좋은 머리, 그 좋은 능력이 좀 줄어들고 있다.

만화를 보기 위해서 학원에 가기 싫었고, 그래서 공부를 했던 10대시절 친구들의 부모님께서 종종 “라리도 같이 놀지만 성적이 좋잖아.” 라고 친구들에게 잔소리하셨다.

신나게 놀기위해 수업시간에 집중했고, 잠들기 전에 잠깐씩 공부를 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난 공부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들었던 내용, 교과서와 참고서에서 본 것들을 노트에 정리하고나면 교과서와 정리한 노트를 사진 혹은 동영상처럼 떠올릴 수 있었고, 시험 볼 때 머릿속 동영상을 재생하고 책을 펼쳐보면 됐다.


그때, 이게 능력이라는걸 알았다면, 죽어라 공부했을거고, 그 결과 ‘더 좋은대학에가고 더 많은 것을 익혀서 더 좋은 일을 하고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아, 후회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 시절, 내가 하고싶었던 “놀기”를 정말 원없이 했고, 그 결과이긴 하지만, 지금의 삶에 불만족하진 않기때문에.


아무튼, 10대에는 정말 많은 것들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기억했고 (기억하고자 하지 않아도 그냥 머리에 남아있었다.) 그걸 원할 때 펼쳐내곤 했는데, 지금은 기억에 남는 것들이 많지는 않고, 펼쳐내보려 할 때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확히는 블러처리되거나, 메모리에 남지 않은 사진같달까…?


뇌도 근육이라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헬스장에서 쇠질해서 근육을 늘리듯, 좀 더 훈련했다면 지금 더 잘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내 마음은 열일곱인데… 열일곱살짜리 마음이칠순의 몸에 갇힌 것 같아.”


내가 벌써 30대 후반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새삼 내 나이에 대해 인지할 때마다 떠오르는 말.

잠이 오지 않던 날 밤, 할머니와 도란도란 수다떨다가 할머니가 했던 말이다.


예의가 없다고들 생각 할 수 있겠지만, 난 할머니한테 할머니라고 잘 부르지 않는다.

라여사, 혹은 한 때 할머니가 본인의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며 어디가서 돈주고 받아온 쎄련된(세련된 이라고 써야하는 것을 알지만, 우리 할매 발음 그대로 적었다.) 이름인 선아씨 라고 부른다. 띠가 네번돌긴 하지만, 아무튼 띠동갑이기도 하고, 어릴 땐 정말 어딜가도 “막내딸이에요?”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젊어보였던 우리 라여사이기에, 그냥 내 멋대로 부르고, 라여사도 딱히 그걸 싫어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아했다.


아무튼, 우리 라여사와 도란도란 수다를 떨다가, 라여사가 어린시절을 이야기해주었는데, 그 기억이 너무 선명하게 떠오르듯 말하는 표정을 보며 한참 듣다가 “라여사는 어린시절 말할 때 너무 예뻐” 라고 나도 모르게 말했고, 그 말에 라여사가 “난 아직도 내가 열일곱같아” 라고 말했었다.


내 마음은, 내 기억은 열일곱살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은데, 내 몸이 나이들어서 여기저기 아픈게 답답하다고… 그리고, 아직도 모르는게 너무 많고, 어려운게 너무 많은데, 내 나이가 칠순이기에 어른인 척, 다 아는 척, 다 괜찮은 척 하곤 한다고 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그냥 막연히 소녀같은 할머니가 내 할머니라 좋다는 생각이었는데, 10년은 더 된 것 같은 저 대화가 아직도 선명하고, 아직도 곱씹게 되는걸 보면 나도 모르게 꽤나 충격받은 말이었나보다.


그리고, 나이들 수록 이해하게 되는 말이기도 하다.


난 아직도 초등학교 동창들의 이름과 얼굴이 기억난다. 졸업 후 단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고,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생각나고, 어떤 장난을 쳤었는지도 기억나곤 한다. 그들은 날 잊었겠지만, 적어도 난 기억한다. 그리고 가끔, 그때처럼 집 담벼락에서 뛰어내리고 놀고싶고, 놀이터에서 우다다다 달리고 뛰어놀고싶은데 지금의 내몸으로 그렇게 놀면 어디하나 부러지거나 다칠 거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내 몸이 나이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나이들어가고있다.

관절이 아프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어가고, 병뚜껑을 열 힘이 없어 동생에게 열어달라 부탁하는 일이 늘어가고 있다.

여행지에서 몸이 힘들어서 일정을 바꾸고, 호텔에서 쉬는 시간이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마음 상하는 일들에도 사회적 체면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일이 늘고있고, 모르는 것, 어려운 것에 대해서 무작정 묻기보다는 혼자서 어떻게든 알아내고 해결해보려는 노력을 한 뒤에 주변에 조심스레 묻거나 도움을 청하는 일이 늘고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내 마음같아서는 난 아직도 애인것 같은데, 몸이 안따라주고, 어른인척 혹은 어른스러운 척하는 순간들이 늘어가고있다.


이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