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웃을 수 있었던 날들》3편

늦봄, 우리가 처음으로 손을 잡던 날

by 현서


사귀게 된 건 수학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았다.
같은 복도, 같은 교실인데
그 애가 있는 쪽은 늘 조금 더 밝았다.
햇살이 그 애를 따라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친구들 앞에서는 평소처럼 장난을 치고,
밥을 먹을 때도, 단체사진을 찍을 때도
눈빛 한 번, 손끝의 미세한 떨림조차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그게 오히려 더 짜릿했다.
비밀을 공유한다는 건 세상에 단둘이 있는 기분이었다.


수학여행 당일 버스에 올랐다.
나는 맨 뒤에 앉았고 그 애는 내 앞자리에 앉았다.
딱 한 자리 차이.
눈을 조금만 올리면 그 애의 머리칼이 보였다.
햇빛이 닿을 때마다 반짝였고 그 빛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괜히 불안하게 뛰었다.
창문에 비친 그 애의 옆모습이 내 시선을 자꾸 붙잡았다.


한참을 달리다 버스가 휴게소에 멈췄을 때,
친구들은 우르르 내렸다. 화장실로, 매점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들 시끄럽게 떠들며 사라졌다.


그 애는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옅게 열린 입술,
길게 내려앉은 속눈썹,
버스 창가로 흘러드는 햇살이 그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나는 잠시 서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 옆자리에 앉았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혹시 그 소리에 그 애가 깰까 봐 숨을 죽였다.


“자?”

조심스레 묻자,


그 애가 천천히 내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햇빛도, 엔진 소리도, 바깥의 소란도 모두 멀리 사라지고

남은 건 그 아이의 따뜻한 손과 내 심장이 내는 규칙 없는 박동뿐이었다.

그 손은 생각보다 작고 부드러웠다.
손끝이 닿는 부분마다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따뜻했다.
나는 그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단지 잠깐의 순간이었는데 온 세상이 그 안에 들어와 있었다.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급히 자리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시선은 자꾸만 뒤로 향했다.
그 애의 얼굴에는 꿈을 꾸듯 옅은 미소가 떠 있었다.
그 미소 하나로 그날 하루는 이미 완벽해졌다.


마지막 날 밤, 우리는 놀이공원에 갔다.
야간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공기가 설레는 색으로 물들었다.
불빛들이 공중에 흩어지고 사람들의 환호와 음악이 뒤섞였다.


눈부신 조명 아래,
그 애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 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나는 무심한 척했지만 사람들 사이에 밀려서 그 애의 손이 내 손에 닿는 순간 숨이 멎었다.

이번엔 도망치지 않았다.
그 애도, 나도.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세상은 눈부시게 시끄러웠지만 우리 둘 사이엔
고요한 음악만 흐르고 있었다.


“몰래, 다른 데 갈까?”


그 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은 마치 비밀의 주문 같았다.

우리는 그 말 하나에 동시에 웃었다. 그리고 달렸다.
불빛을 피해, 사람들을 피해,
가로등이 드문 어둑한 길로 들어섰다.
봄밤의 공기가 두 사람 사이를 스치며 달콤하게 흔들렸다.


“그때 고백할 거, 나 이미 알고 있었어.”
“진짜?”
“응, 네가 부를 줄 알았어.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떨렸거든.”


그 말에 나는 웃었고, 그 애도 따라 웃었다.
서로의 웃음이 부딪히며 봄밤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그 웃음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그날 밤의 공기는 유난히 달았다.
살짝 습하고, 부드럽고, 손끝에 남은 온기는 쉽게 식지 않았다.
그 온기가 내 안에서 천천히 퍼져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면 정말 꿈처럼 사라질 것 같아서.
그저 가만히 내 안에서 아직 뛰고 있는 심장의 소리를 들었다.


그날 이후,
봄바람이 불면 그 손의 온도가 떠오른다.
그게 내 첫사랑의 기억이다.
늦봄의 햇살처럼,
조용히, 그러나 오래도록 남아 있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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