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웃을 수 있었던 날들》2편

그 봄밤, 그녀의 웃음

by 현서


처음 어떻게 만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복도에서 스치듯 마주쳤거나 친구들과 웃던 무리 속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공기만은 또렷했다.
햇살이 유난히 부드럽게 교실 안으로 스며들었고 창문에 붙은 먼지들이 금빛으로 떠다녔다.


그때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세상이 잠시 멈춘 듯했다.
그 짧은 찰나가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아마 그게 시작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5월의 늦봄이 되었다.
그녀의 집 앞에는 작은 초등학교가 있었고 나는 퇴근길의 사람들 틈을 헤치며
저녁 일곱 시쯤 그녀를 불렀다.
초등학교 뒷문 쪽 나무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바람이 살짝 불어와 그녀의 머리카락이 흔들릴 때마다,
그 향기가 내 마음을 간질였다.


“오늘 하늘 예쁘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 웃음에 세상의 모든 소리가 잠시 멎은 것 같았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소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웃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지금 말해야 할까? 아니면 조금 더 기다릴까?’

시간은 잔인하게 흘렀다.
그녀가 시계를 보고 말했다.


“이제 들어가야겠다.”
“그래, 들어가자.”


입은 그렇게 움직였지만, 마음은 다급했다.
데려다주는 길 내내
‘지금이야’, ‘아니야, 아직 일러’
그 두 문장이 머릿속에서 싸우고 있었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결국 그녀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눈동자에 반짝였다.
숨이 막힐 만큼 예뻤다.


“할 말이 있어.”


그 말을 꺼내는 데 수십 분은 걸렸던 것 같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마음속에서는 수천 번 연습했지만 막상 입을 열자 모든 문장이 흩어졌다.



“우리... 사귀자.”



그 한마디가 공기 속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입술 끝이 천천히 올라갔다.
그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봄밤의 바람처럼 맑고 따뜻했다.


“너무 늦었잖아.”
그녀가 내 어깨를 톡 치며 말했다.
“생각 좀 해보고 문자로 말해줄게.”


“그래, 알았어.”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지만 가슴은 이미 터질 듯 뛰고 있었다.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불빛들이 모두 그녀의 얼굴처럼 보였다.

집에 도착해서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씻고, 밥을 먹고, TV를 켜도
시선은 자꾸 휴대폰으로 향했다.
알람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덜컥거렸다.


그러다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누워 있던 순간,
‘띵’ 소리가 났다.

그녀였다.


문자를 열었다.


단 한 문장.

“그러자, 사귀자.”

순간 숨이 멎었다가 곧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진짜?”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누나가 놀라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아냐!”
얼굴을 감싸 쥐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날 밤
잠을 자려 누웠지만 눈을 감을 수 없었다.
핸드폰 속 그녀의 이름 옆에 하트를 붙였다.
그 작은 하트 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반짝였다.


창문 너머로 봄밤의 바람이 스며들었다.
그 바람 속에는 아직도 그녀의 웃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이, 내 첫사랑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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