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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오 Apr 22. 2023

소화장애가 아니라 공황장애라고요?

위마비증 환자의 정신과 상담기록

공황장애입니다.
네..? 제가요???............ 아니 그....... 네? 왜요...?........???



'제 발로 정신과를 찾아가 놓고 공황장애 진단을 믿지 못하다니. 글로 쓰고 보니 그때의 나. 제법 판단력도 안 좋았구나'싶다. 나는 '기능성 소화장애' 중에서도 '위마비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병원 2곳에서 1년여간 치료를 받았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당시 먹는 게 고통이니 먹고사는 건 내게 정말 큰 시련이자 고난이었다.



위마비증은 담적이라는 염증요소가 위장에 끼이고 쌓여 마치 위가 마비된 것처럼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증상이라고 했다. 위가 얼마나 움직이는지 확인하는 '위전도 검사'에서는 정상인의 위 운동량에 절반은 무슨, 반의 반의 반도 미치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 거의 8분의 1 수준이었는데 이는 남들은 밥 먹고 평균 4시간 후에 소화를 하지만 나는 32시간이 지나서야 밥이 소화가 될 수도? 있다는 뜻과 같았다.



항상 윗배는 딱딱했고, 소화불량으로 인한 속트림, 역류성 식도염, 만성변비 등 소화 관련 안 좋은 증상은 다 가지고 있었다. 나는 보통 '배가 고프다'보다는 '손이 떨린다', '당이 떨어진다' 정도로 끼니때를 챙겼다. 그래서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지만 어쩔 수없이 먹는 때가 많았고, 그래서인지 식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밥을 먹을 때 심지어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소화장애는 '식이장애'로까지 이어졌다. 정말이지 총체적 난국이었달까. 병원에서는 담적이 위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단계라고 했다. 그래서 당시 허리도 아프고 피부도 엄청나게 뒤집어지고 누가 봐도 어디 하나 상태 안 좋은 사람이었다. 위마비증으로 그렇게 고생했는데... 이게 '공황장애'라니..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병원에 들인 돈만 그 해에 1000만 원이 넘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시간이 무쓸모였다니.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더는 여기서 해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 말을 하는 의사의 입을 세게 때리고 싶었다. 국내 탑 소화전문 병원이라고 해서 몇달을 대기하고 들어온 곳이었는데. 심지어 몇 백만원이나 하는 병원비가 보험도 안됐는데. 여기가 얼마짜리 병원이고 남들은 다 나아서 나가는데 왜 나만 안된다는 거야!! 책임지고 고쳐놔야지 뭐..? 방법이 없어??? 화가 머리 끝까지 나다가 거의 자포자기인 마음상태가 됐다. 난 방법도 없는 인생인가....



병원 마지막 퇴원날. 도저히 차도가 없자 자포자기 심정으로 치료를 포기했다. 병원에서 짐을 싸는데 서울 자취방으로 들어가면 막연히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모르겠다. 당시 이유도 없이 나는 그 방에 들어가면 죽을 것 같고,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은 막연하지만 엄청나게 큰 공포에 사로 잡혔다. 



그리고 나는 곧장 본가로 내려갔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수년간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지방으로 내려오게 됐다. 그리고 이 도시에 정착해 일을 시작했고,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서 찾은 곳이 바로 이 병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 일상을 바꾼 이 모든 변화가 공황장애였다고?'라는 생각이 이르자 머리가 상당히 복잡해졌다.



"근데 선생님.. 그 연예인들 보니깐 공황장애는 과호흡이 와서 막 숨 막히고, 죽을 것 같고, 폐쇄공포증처럼 막 그런 거 느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근데 전 그렇지는 않은데요...?"

"과호흡 증상 있다고 하셨죠. 왜 그 증상이 울어야 호전이 되는 걸까요?"



당시 나는 식사 후에 약간의 호흡곤란 내지는 과호흡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에이 참, 이거 소화가 안 돼서 호흡이 한 번씩 달리는 건데 이게 공황장애라니. 정신과 왔다고 다 정신병으로 보시려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설명을 듣고 나의 증상을 말할수록. 

'어? 아니 어쩌면 진짜.. 공황장애인가? 이왜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시 식사 후 약간의 과호흡 증상을 겪고 있었다. 위가 운동을 잘 못하니 음식을 소화하느라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위가 딱딱하게 멈춰있어서 음식이 들어가면 딱딱한 위에 부담이 가고 그래서 얘가 어떻게든 음식을 소화시키려 운동을 하느라 호흡이 달리는 증상이 나오는 줄 알았다. 병원에서도 그렇게 말했고 나 역시 다른 이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소화가 안될 때 호흡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증상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과호흡이 진정되는 방법은 조금 특이했다.

바로 '눈물'이었다.


보통 식후, 그리고 밤에 과호흡 증상이 많이 찾아왔다. 그래서 저녁 식사 후에 혹은 식사 중에 과호흡이 왔는데 그땐 숨을 천천히 몰아쉬면서 위에 산소를 공급해 준다. 그리고도 증상이 쉽게 가시지 않는데, 그럴 때 눈물을 흘리면 몸이 촥 가라앉으면서 과호흡 증상이 사라지곤 했다.



난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과호흡인데 눈물 같은 이완행동? 같은 걸 하니깐 나아지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진짜 '소화장애'라면 약을 먹으면 먹었지 왜 '눈물'이 그 증상을 완화해 줬을까. 난 한 번도 가지지 못한 의문이었다.



"그런데 선생님, 전 막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진 않아요. 공황장애는 그런 공포에 휩싸이는 거 아닌가요? 전 그냥 '아 빨리 과호흡 증상이 가라앉아라...' 이 정도만 생각하는데요...?"


"공황장애라는 용어 안에 공황발작이 포함되는 개념이에요. 보통 연예인들이 많이 말하는 그 증상은 공황발작에 더 가까워요. 공황장애를 겪는 모든 사람이 공황발작을 겪는 것은 아니듯이 공황발작 증상이 없다고 공황장애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깐 호흡곤란과 불안한 증상을 느끼는 것. 이 자체가 공황장애라는 것이었다. 난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상담을 시작한 첫날 공황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약물치료와 상담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의심이 가시지 않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당시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살기 위해 어떤 것이라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심은 정확히 일주일 만에 해소됐다. 상담 이후 과호흡 증상이 많이 호전됐기 때문이다. 나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그 증상은 점차 사라졌고 이후 몇 년간 식후 과호흡은 오지 않았다. 여전히 위 운동성이 떨어지는 것은 맞다. 이게 '나'라는 사람 자체가 불안도가 높아서인지, 혹은 병원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냥 선천적으로 위가 약하게 태어난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정상범주 수준으로 들어와 일상생활을 하고, 과거에 겪던 여러 증상들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공황장애인지도 모르고 병원을 전전하며 그 좁은 침대에서 매일 밤 울던 것을 생각하니 그때의 내가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내가 좀 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걸. 그런 상황으로 나를 밀어 넣지 말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또 그렇게 병원을 입원하고 퇴원하고,  또 다른 병원으로 이전하고, 서울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고, 또 용기를 내 정신과를 찾아간 것 자체가 나를 살리기 위한 여러 방법과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이후, 꽤 오랜 시간 공황장애의 원인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그리고 내가 만난 그 원인은 공황장애 진단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참 그때 선생님은 내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공황장애 원인 진단 편은 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한 번도 제대로 말해보지 못했는데 글로 복기를 해보려니 사실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정신과 이야기를 주변에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리고 쉽게 정신과 방문을 권한다. 나처럼 의사가 포기한 위마비증 환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끊임없이 권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신과 상담을 권유한 것은 역시나 그 친구. 아이스 바닐라 라떼의 주인공이다. 의학계에 종사하는 그녀는 내 증상을 보고 우울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구세주같은 그 말을 내게 해줬다. 여전히 나는 그 친구에게 그 말을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한다. 나를 살렸던 그 말을 말이다.



켈리야, 정신과 한번 가보는 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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