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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벽 위에 화를 그리는 일

[Review] 뮤지컬 '르 마스크'

by 유진

* 이 글은 뮤지컬 <르 마스크>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혜화였다.

원래 혜화 하면 그 상징성이 ‘연극’에 있지 않은가. 고등학교 때 체험학습으로 이 역 근처에서 첫 연극을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범인을 추리하는 내용의 극이었던 것 같은데, 나름 재미가 있었다.


더하우스콘서트를 알기 전까지, 혜화는 그저 친구와 좋아하는 식당에 가거나 과식한 날 두 정거장쯤 걸어 도착하는 익숙한 역이었다. 맛있는 탄수화물을 세트로 묶어 파는 가게에 들르는 재미가 있었다. (피자, 떡볶이, 김치볶음밥, 라면을 한 번에?)


그러다 지난여름부터—정확히는 올해 7월부터— 나에게 이곳은 '클래식'이 되었다. 7월만 해도 몇 번을 발 들였던가. 덕분에 좋은 추억을 이래저래 많이 쌓았고, 벌써 26년의 줄라이를 기대하고 있다.


문득—궁금해진다. 그때도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고 있을까? 워낙 뭐 하나에 빠지면 깊게 파고드는 편이라 아마 지금과 같을 것 같지만, 누가 알겠는가. 올가을이나 겨울, 그리고 다가오는 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이전 같으면 스쳐 지나갔을 작품들을 가까이서 만나고 있다. 올 8월만 해도 영화와 공연, 뮤지컬을 연달아 관람했다. 이곳 덕분에 세계가 한 겹 더 넓어졌다.


‘공연’을 제대로 ‘관람’하기 시작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축제가 있었어?"


나는 클래식 월별 축제가 줄라이 페스티벌만 있는 줄 알았다. 7월이 끝나면 당분간은 별일 없겠거니 했는데, 오히려 공연 일정은 더 빡빡하다. 날짜가 겹쳐서 못 갈 정도로 수많은 클래식, 실내악 공연이 곳곳에서 매일같이 열리고 있었다.


클래식만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발레면 발레, 연극이면 연극, 뮤지컬이면 뮤지컬, 페스티벌은 말할 것도 없다. 새로운 작품과 다양한 사람들의 의지가 모인 축제의 현장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이것만 따라다녀도 노인정에서 생일 파티하는 날이 머지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세상이 이렇게 가득 차 있을 줄은 몰랐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예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장르는 제각각이지만, 그들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었다.


"다, 예쁘다!"


이 단어에 누군가는 오글거려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뮤지컬 〈르 마스크〉를 보며 네 명의 배우를 바라보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예쁘다’는 형용사로, 생김새가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 좋다는 뜻과, 행동이나 동작이 사랑스럽거나 귀엽다는 의미를 가진다. 네 명의 배우가 표현한 서로 다른 모습들은 참 아름다웠고, 그걸 빚어낸 시간과 마음의 결이 꽤 사랑스러웠다.


음악과 예술, 극본과 관객, 그 앞에서 해사하게 웃는 얼굴. 부끄럽지만 묵묵히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들. 박수 소리에 고개를 깊이 숙이는 모습. 모두가 다—예뻤다.


조명 아래선 모두가 솔직해진다. 그렇다면 나도 굳이 체면을 차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선 누구나 조금쯤 혀 짧은 소리를 내고, 괜한 것에 안아 달라 투정부리곤 하지 않던가.


예쁜 얼굴을 가진 네 명의 배우와 그들과 시선을 주고받는 관객들이 함께 그려낸 뮤지컬이 〈르 마스크〉였다.


사실 처음 이 극을 보러 가기로 한 건 내용에 대한 흥미보다는 창작 뮤지컬이라는 점, 아직 가보지 않은 극장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혜화역의 긴 출입구를 빠져나와 작열하는 태양을 양산과 함께 맞서며 걸어가니, 건물 1층 바로 앞에 매표소가 있었다.


티켓을 금방 수령한 뒤 좁은 계단을 올라가자 아늑한 크기의 로비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굿즈도 팔고 있었고, 배우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메시지들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연남동의 작은 소품숍에 들어선 기분이랄까.


꽤 무더웠던 날이라 로비에서 금방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에 들어서자 공연 무대와 객석이 세상 가까워 놀랐다. 마치 내가 이 극의 관객 역할을 하러 투입된 단역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배정받은 좌석도 꽤 앞쪽이라 거의 배우를 코앞에서 보는 수준이었다.


다만 내 좌석이 꽤 안쪽이었는데, 이미 관객들이 앉아 있는 상황에서 맨 안쪽 자리였다. 양해를 구하며 살금살금 이동했는데도 길이 좁아 옆 관람객의 발을 밟을 뻔해 큰 실례를 할 뻔했다. (밟았나…?) 다행히 웃어주셔서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 (하하)


좌석에 털썩 앉아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며 한숨 돌린 뒤 무대 세트 장치를 찬찬히 구경했다. 예술의전당 공연장처럼 무심코 사진을 찍으려다 커튼콜을 포함하여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는 안내를 보고는 그냥 내 무릎(?)이나 찍었다. 잠깐 쉬는 사이 관객석은 금세 가득 찼다.


사실 공연 전 가장 걱정했던 건 내가 이 극에 쉽게 몰입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차마 어떤 뮤지컬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몇 년 전 친구와 함께 창작 뮤지컬 한 편을 관람했는데 내용이 너무 유치했고, 넘버의 가사는 오글거렸으며, 좌석은 또 잘못 잡아 출연진의 뒷모습만 실컷 보고 온 적이 있었다. 아마 그날을 계기로 창작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끊겼던 것 같다.


기대보다 걱정이 컸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공연은 시작부터 몰입하기에 충분했다. 배우들이 그렇게 이끌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캐스트는 레오니 역의 홍지희, 프레데릭 역의 임진섭, 페르낭 역의 장두환, 안나 콜먼 래드 역의 김지민 배우였다. 어떤 배우의 연기로 볼까 고민하다가 내가 상상한 캐릭터와 이미지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을 골랐는데, 만족스러웠다.


특히 잡화점 직원 페르낭을 연기한 장두환 배우는 극의 공기가 살짝만 무거워져도 금세 등장해, 분위기를 둥—둥—띄워주곤 했다. 그 경쾌한 에너지가 캐릭터와 놀랍도록 잘 맞았다.


줄거리도 간단히 살펴볼까?


제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1918년, 전쟁의 상흔이 짙게 드리운 파리. ‘초상가면 스튜디오’는 얼굴에 큰 부상을 입은 군인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들의 부상 전 사진을 바탕으로 실제 얼굴과 흡사한 가면을 제작해, 그들이 다시 사람들 앞에 설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이곳에서 일하는 레오니는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해 스튜디오에서 늘 허드렛일을 도맡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가면 제작을 배우고 싶은 오랜 꿈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귀족 출신이었으나 전쟁 중 총탄을 맞아 얼굴에 흉터가 생긴 프레데릭의 가면 제작을 맡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다루는 주제나 인물들의 배경은 결코 가볍지 않다. 레오니는 소아마비로 발 한쪽이 자유롭지 못하고, 프레데릭은 전쟁이 남긴 상흔으로 얼굴에 깊은 흔적을 안고 살아간다. 이미 우리가 ‘일반적인 사람’이라고 부르는 조건에서 멀어진 이들의 이야기다.


나는 당연히 주인공이 남녀로 구성되어 있길래 흔히 예상하는 결말로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초상가면 스튜디오’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 손을 맞잡고 함께 미래를 바라보는 선택지가 아니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자리가 사실은 또 다른 시작점임을 직면하게 되며 각자의 길을 선택한다.


오, 이렇게 끝날 수도 있구나. 그 점이 꽤 인상 깊었다. 당연히 두 사람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페르낭 역시 가련한 짝사랑에 머문 인물로만 남을 줄 알았는데, 결과는 모든 이에게 열린 결말이었다. 레오니가 누구와 이어질지, 프레데릭이 약혼녀 르네와 다시 재회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서로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인 뒤, 각자의 자리에서 ‘바로 서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 바로 서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맨땅 위에 가만히 서 있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머릿속에 사과를 떠올리지 말라고 하면, 그 새빨갛고 둥근 과일을 흰 바탕 위에 그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떠올리지 말자’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커다란 엑스표시 뒤에 사과를 그려 넣기에 바빠질 것이다.


하물며 말 한마디에도 쉽게 흔들리는 사람인데, 거대한생채기가 흉이 되어 등 뒤에 꽂혀 있다면? 그건 매일 흔들의자 위에 서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앉아 있는 게 아니다. 서 있는 것이다.


가볍지 않은 체중으로 무게중심을 잡으려니 여간 쉽지 않다. 다리 한쪽은 제 역할을 못 하고, 당당히 드러내야 할 얼굴 한쪽은 무너져 있다. 모든 게 갖춰져 있어도 모자랄 판에, 스스로 ‘완전하지 못하다’는 사실(그들의 자기 서사 속에서)이 자꾸 발끝을 붙잡는다.


두 사람은 자신의 멍을 메워낼 무언가를 끝내 찾으려 했다. ‘나는 완전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라도 증명하려 했다. 그렇게 '욕심'을 갖게 된다.


초상가면 스튜디오에서 허드렛일만 맡아온 레오니는 마담 래드의 제안으로 처음으로 프레데릭의 가면 제작을 맡게 된다. 레오니에게 프레데릭은 첫 번째 기회이자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비록 마담 래드가 후원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권한을 준 제안일지라도, 레오니에게는 달랐다.


래드는 말한다.

“적당히, 무리하지 말고, 무난하게만 해.”


하지만 레오니의 시야엔 이미 빛무리가 번져 있었다. 누구나 첫 시작 앞에서는 설레고, 원대한 포부를 품는다. ‘완벽한 가면을 만들어 내가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임을 증명하겠다.’


프레데릭은 어떤 사람일까. 사랑하는 약혼자가 있었지만 전쟁의 상흔으로 얼굴이 무너져, 스스로를 ‘괴물’이라 부르며 트라우마에 갇혀 있던 남자였다.


어디 아픈 기억이 사람을 가만히 두던가. 다정한 물음 한마디에도 총성이 들리고, 내밀어진 손길에 잊고 싶은 장면이 겹쳐 보인다. 그런 상태로 반강제적으로 스튜디오에 오게 된 프레데릭에게 거울을 마주하는 일은 곧 고문이었다.


그런데 레오니가 ‘완벽한 가면’을 만들어주겠다고 애원한다. 단칼에 거절하려 했지만, 그녀의 절뚝이는 다리를 보고 발걸음을 멈춘다. 그 순간, 프레데릭의 마음 빗장이 살짝 열렸다. 사람은 결국, 자신과 닮은 이에게 더 오래 시선을 두는 법이다.


프레데릭이 마음을 연 이유도 레오니와 다르지 않았다.


"날 구원해줄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두 사람의 욕망은 서로를 향한 듯 보였지만, 끝내는 자신을 향해 있었다.


레오니는 완벽한 가면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고, 프레데릭은 무너진 얼굴을 되찾아 다시 세상에 발을 딛고 싶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사실은 각자의 ‘자리’를 원했다. 그래서 욕심을 부린다.


결국 레오니는 약혼녀 르네에게 절대 편지를 보내지 말라는 프레데릭의 경고를 어긴다. 가면을 만들려면 사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레데릭을 알아갈수록, 그의 다정함을 알수록, 진심으로 그가 다시 '제대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자신의 선의와 그를 향한 감정이 얽히고설킨 끝에, 프레데릭이 가장 원하지 않던, 끝내 미뤄두었던 편지를 발송하고 만다.


레오니를 온전히 탓할 수만은 없었다. 선택은 이기심에서 비롯됐지만, 그 덕분에 프레데릭은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얼굴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르네와의 재회는, 끝내 잔혹한 결과로 이어졌다. 약속이라도 한 듯 달려간 자리에서, 르네는 더 이상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전쟁의 흔적은 생각보다 깊고 잔인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장면이 현실로 덮쳐오는 순간, 프레데릭의 제어 장치는 완전히 부서졌다.


삶을 끝내려는 그를 붙잡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레오니였다. 가면을 만들겠다는 욕망에서 시작된 관계는 이제 ‘살아달라’는 간절한 애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폭풍이 몰아쳤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고요했다. 스튜디오에 스며드는 성당의 종소리만 맑게 울릴 뿐이었다.


그렇다. 세상은 언제나 조용하다. 어리석은 인간만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만년필 펜촉을 제게 들이댈 뿐이다.


어쩌면 이들은 운이 좋았다. 가면을 제작하는 시간 동안만큼은 서로의 가쁜 숨이 되어주었다.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을 잠시 잊고, 함께 심호흡하며 시간을 버텼다.


누군가가 나를 들여다봐주는 경험. 내가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아주 잠깐이라도 확인받는 순간. 그런 기적을 겪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두 사람이 처음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 순간은 의외로 단순했다. 계단 위에 나란히 앉아, 레오니가 건넨 한마디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이름이 뭐예요?”


이름, 그까짓 게 뭐라고. 하지만 내 이름이 타인의 입에서 불릴 때, 느낄 수 있는 ‘쿵’ 하는 감각은 분명히 있다.


이름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작품명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각자의 이름으로 명명되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기에 내 이름을 묻고 불러주는 행위는 그 자체로 마음을 두드린다.


그 질문이 프레데릭의 마음에 따뜻한 붕대를 둘렀다. 상처는 그렇게, 스스로를 향하던 방향에서 아주 천천히 돌아서기 시작한다.


초상가면 스튜디오는 그에게 선언한다.

“네 벽 위에 내가 화를 그리겠다.”


몸에 남은 흉터를 따라 꽃을 얹고, 잊고 싶은 기억 위에 예쁜 천을 덮는 것이다.


굳이 ‘완벽한’ 예전으로 돌아가야 할까. 그냥 이대로 있자. 아프면 아픈 대로, 시간이 흐를 때까지 함께 기다리자. 어차피 사람은 종이에 베인 작은 것에도 엄살을 부린다. 세상은 생각보다 조용하다는 걸 조금만 일찍 깨달아도 충분하다. 내가 나를 흔들지 않으면, 세상도 나를 흔들지 못한다.


한들—한들, 나뭇잎이 흩날리는 대로 팔을 맡겨보자.


아—무 생각 없이, 잠시 동안만 현실을 잊어보자. 두세 번의 들숨과 날숨을 허비해도 좋다. 숨을 들이쉰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는 순간, 바람소리가 귀에 스며들고, 저 멀리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타닥—타닥 지나간다.


그래, 결국은 다 지나간다. 그렇게 사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흔들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단단히 붙잡는 것.


레오니가 울부짖는 프레데릭을 물끄러미—올려다보던 순간을 떠올린다.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을 맑은 눈망울로 마주하던 표정. 담벼락 위 초록잎과 작은 장미를 바라보는 듯한 얼굴이다.


초상가면 스튜디오의 전속 제작자는 한참 동안 작품을 바라봤다. 그만큼 예뻤던 거겠지.

나도 덩달아 고개를 살짝 들어 바라봤다. 그 벽 위엔 하얀 구름 하나가, 파랗고 선명한 하늘에 떠 있었다.


분명히 봤다. 응, 정말 봤다.

아마 그 구름 아래에서, 나도 이제 아주 조금씩은 바로 서 보려는 중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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