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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을 자청하며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소회하는

by 유진


내가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 모집 공고를 본 것은 아마 6월의 언젠가였다.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지? 그즈음 나는 브런치에 ‘매일 글을 올리겠다’는 나 혼자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 산책하고, 굳이 공연을 보러 가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지나간 혹은 지나온 연주가들을 생각했다.


정말 신기한 건, 어떤 글 앞에서든 쓰기 직전까지는 늘 ‘도대체 내가 음악을 주제로 해서 무엇을 쓸 수 있는가? 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하며 한참을 헤맨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불현듯— ‘아, 모르겠다’는 말조차 떠오르지 않을 즈음이면, 그저 키보드 앞에 주저앉아 긴 연주를 시작한다. 마음 가는 대로 나불나불, 누가 뭐라 하겠는가. 부담감이란 게 아예 없었다. 이곳은 모두의 공간이지만, 나에게는 작은 일기장이었다.


‘매일 쓰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 처치해야 하는 하루하루의 퀘스트는 머리를 쥐어잡고 싶으면서도,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사실 쓸 때는 지겨워하면서도, 발행 이후 다시 그 글을 되돌아보면 나는 내 글의 가장 깊은 애독자가 된다. 재미나게도 썼다. 지금도 즐겁게 쓰고 있지만.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활동하면서 ‘주 1회의 글 발행’ 약속은 사실 내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개인 메일로 “주 1회 이상 기고해도 될까요?” 하고 되물었으니 말 다 했다. 할 말이 지나치게 많아서 문제였고, 봐야 할 공연들을 어떻게든 더 넓은 세상 밖으로 꺼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뭔가 그래야 할 것 같다.
할 수 있는데 굳이 어렵다고 하지 않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클래식을 주제로 그렇게 많은 말을 할 수 있었던 게 나도 신기했다. 보통 글을 쓰거나 무언가를 만들기 전에는 이전의 완벽한 사례, 즉 레퍼런스를 참고하지 않던가. 나 역시 클래식을 주제로 한 책이나 기사들을 많이 살펴봤는데, 이상하게 집중이 안 됐다. 미묘하게 머릿속에 콱 박히지도 않았다.


모르는 용어나 전공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 잔뜩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엄청 친해지고 싶었지만, 누구의 글이든 그 세계는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왠지 그들과 닿기 위해서는 음악대학을 나와야 하거나, 교양 수업을 들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러기 싫었다. 분명 그렇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지금쯤은 ‘아, 다른 재밌거리를 찾아볼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과 친해질 것인가? 나는 화살표의 방향을 바꿔보기로 했다. 이 무시무시한 장인들이 있는 ‘클래식’ 세계를 직선으로 바라보는 대신 그 뒤에 멀찍이 서있는 ‘나’에 집중하기로.


그냥 내 이야기를 하지 뭐.

내 글의 모든 시작점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고 싶다’는 그 한 줄에서 출발했지만, 누군가를 응시하며 마음껏 표현하는 이 시절의 ‘나’를 위한 선물도 잊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야 나의 조명을 받으면 되지만, 나는 누구의 조명을 받는가. 스스로 내리쬐어야 언제든 이 날들을 되돌아볼 수 있지.


결국 이 짧은 몇 개월 동안 기—다란 일기장을 써온 것이다. 이론을 택하기보다 실전으로, 누군가의 조언을 듣기보다 눈을 콱! 감고 내 손으로, 유명세를 따르기보다 순전히 마음 가는 대로. 오케스트라도 좋지만 실내악의 근방으로. 공연뿐 아니라 마스터클래스나 교육을 수강하며 내 멋대로 생각하는 재미를 들였다.


그러다 보니 들리는 게 생기기 시작했고, 보이지 않던 형체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게 어떻게 판단이 되냐고? 몰라. 잘 모르겠다. 나는 당신이 아는 기본적인 클래식 용어의 반도 모를 수도 있다. 그냥, 내게 이 세계는 ‘소리’의 장난감들이다. 귀로 듣고, 이렇게 말로 표현할 때 비로소 마음이 그려진다. 어려운 용어, 박자표, 화성학, 기교의 명칭들? 거의 모른다. 일단, 내가 알아야 하는가?


듣기도 바쁜 와중이고, 봐야 할 공연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들이 왜 무대에 섰겠는가. 관중들 앞에서 자신의 소리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닌가.


그들이 논술시험 보러 온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채점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잘’ 들어주면 그걸로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나는 알고 싶었다. 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궁금했고, 도대체 왜 그들의 연주가 그렇게 내 귀에 닿는지, 저 사람과 이 사람은 왜 내 취향이고 또 취향이 아닌 건지 알고 싶었다.


좋아하는 연주가의 무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배움의 기운이 느껴지면, 그냥 가고 싶었다.


그런 내적 욕심이 반복되다 보니 ‘에디터’라는 명칭이 근방에 놓였고, 브런치에서도 예쁜 이름표 하나를 더 받았다. 뭐지? 바람을 버렸더니 잊고 있던 바람이 스스로 되돌아왔다. 신기한 세상이다.



브런치 팝업 전시회에 글을 전시하게 되면서, 이 공간도 정말 만만치 않게 많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지켜왔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입구 전시장에서부터 출구까지, 곳곳에 스태프분들이 얼마나 많던지. 어찌나 다정하게 설명해주시던지, 꼼꼼히 하나하나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맨 처음 공간에서 다음 스팟으로 이동한 뒤, 가려진 커튼 너머로 들어갔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방이 어둑했고, 벽 위에 글이 써 있었다.


후레시로 흰 벽을 비추면, 물음의 응답이 파란빛 사이로 천천히 드러났다. 그곳에는 작가로서, 글쓴이로서 품게 되는 온갖 생각들에 대한 상냥한 답이 적혀 있었다.


그걸 보면서 알았다. 아, 글쓰기라는 게 나만 어려운 게 아니구나. 이 사람들도 다 어려움을 느끼는 일이구나.


사소하고 바보 같은 질문들이 나 혼자만의 물음이 아니었다. ‘글’이라는 건 이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구나. 이만큼 누군가를 잔뜩 괴롭히는 존재구나. 그럼에도 포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부럽네.


정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니 하루의 양끝마다 ‘무엇을 쓰지? 아, 이번에는 안 쓰려고 했는데...’라는 말이 끝도 없이 반복된다. 할 일 많고 바빠 죽겠는데, 뭘 해도 내 일정을 다 차지해버릴 만큼 이토록 강력한 존재라니.


욕심이 많아도 너무 많다! 밤을 새지도 못하면서 새벽에 글을 두드리기도 하고, 굳이 카페에 가 하루 반나절을 보내며 글을 썼다. 그렇게 지난 4개월 동안 43개의 글을 발행했다. 31일에는 그동안 기고한 글의 URL을 정리할 일이 있었는데, 복사·붙여넣기를 하느라 아주 힘들었다.


처음으로 욕심부린 것을 아주 작게나마 후회했다. (?)


글이란 뭘까.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도 왜 이 앞에 서 있는 걸까. 여전히 그 답을 스스로에게 묻지만, 대답은 잘 내려지지 않는다.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다.

내가 글을 쓰면 기뻐하는 미소들을 몇 번 보고 나니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콕콕—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그냥, 예쁘더라구, 작고 하얀 손수건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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