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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원형

[공연 리뷰] 제1140회 더하우스콘서트 : 엘가와 타네예프

by 유진


우리는 오늘 소리만 논할 것이다.

이 순간, 연주가도 기획자도 자리를 비워주셔야겠다.

나는 1일에 태어나 사그라진 것들과 겨뤄야만 한다.



구덩이가 파였다.

ⓒ 유진


깊게도 패였다. 거대한 몽둥이 하나가 방바닥을 쿵쿵 내리찍어 오는데, 나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으니 까맣게 짓눌렸다. 타네예프의 후반부로 달려갈 즈음에는 괜히 등을 더 뒤로 밀어 넣었다. 압박감이 심했다.


귀에 꽂혀 내려오는 것에 고개를 숙였다. 이게 뭐지? 이게 맞나 싶어 뒤를 돌아봤다.


벽도 바닥도 새하얀 공간 한쪽에, 새까만 구 하나가 놓여 있다.


그 원형은 내가 패인 자리와 딱 맞아떨어질 만큼 같은 크기였다. 아—저것이구나. 정확히 그만한 범위로, 나를 짓눌렀던 것이다.


비워진 자리는 허하고, 눌린 데는 답답하니. 이를 어디에도 내어보내지 못한 채, 가만히 돌아앉아 무릎을 꿇고 그것과 눈높이를 맞췄다.


글을 쓴다는 건, 붙잡히지 않는 예술을 내 손으로 내려놓는다는 건 뭘까.


모두가 이미 지나간 자리에 제일 늦게까지 있겠다는 뜻이겠다. 어제에 당분간 머물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눈으로 붙잡혔던 것을 하나하나 바닥에 내려꽂는 일이기도 하겠지.


뚫어져라 봐야 보이는 것이 있고, 아무 생각 안 해도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것이 있다. 너의 것을 잡아챔에 있어 온 힘을 내보여야 하니, 내 시선 한가운데 꽂히는 너는 내 마음에 꼭 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내 시간을 쏟는 데 후회가 없을 테니.


그런데 이건 뭐지? 저 새까만 원형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무릎 위에 턱을 괴고 한참을, 보다 뚫어져라 들여다봤다.


보면 볼수록 불쾌하고 불편하게 생겼다. 어디서 데려다 놓은 걸까. 나는 저 이름 모를 것의 출처를 곰곰이 더듬어볼 수밖에 없었다. 생긴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어, 얼른 내보내고 싶었다.


거대한 착각 속에서—

ⓒ 유진


모든 시작은 내 섣부른 기대감과

무지 속에서 태어났다.


원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미묘하게 아는 척하며 작은 것도 크게 보며 신나하는 걸 아시는가. 나 역시 그랬다.


12월 1일에 연주될 엘가와 타네예프 피아노 퀸텟이 이렇게까지 새까맬 줄은 전혀 몰랐다. 그저 ‘좋아하는 연주가 나온다’, ‘하콘 오랜만이다’, ‘12월의 첫 시작을 여기서 하네’ 같은 생각만 앞서, 오래전부터 홀로 들떠 있었다.


감정선이 대략 -30에서 시작해 거의 300까지 빈번하게 치솟다 내려왔다. 예습할 때는 음색이 따뜻한 버전을, 곡의 기원이나 악보는 공연 당일에야 확인했다.


어차피 실물로 인사하면 되는 일 아니던가. 분명 따뜻한 공간에 온난한 소리가 가득하겠지? 마음 안이 방방 뛰었다.


공연장으로 가는 길엔 라벨 바이올린 소나타 2번 3악장을 들었다. 내 마음결과 닮아 있어 절로 발이 동동거렸다. 그만큼 기분이 좋았다.


일찍 도착해 사진작가 선생님과 다정히 대화를 나눴다. 반갑게 인사를 해주시니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그날의 마룻바닥은 다음 날의 싸늘한 날씨를 미리 알고 있었던 듯, 유난히 뜨듯했다.


거기다 이제 12월이 아니던가. 귀여운 눈사람과 작은 전구 조명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품은 달답게 공간이 반짝였다. 오늘의 하콘에는 송년회 모임으로 첫 방문한 객도 있으시단다. 키워드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 유진
‘12월’, ‘첫 하콘’, ‘송년회’, ‘대화’, ‘웃음’,
‘크리스마스’, ‘따뜻함’, ‘들뜸’, ‘기대’, ‘연주’
….


무시무시한 형체의 곡일 줄도 모르고, 기대감의 상승곡선은 가파르게 치솟았다. 스스로에게 섣부른 예정까지 던졌다. 오늘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을 써야지. 예쁜 사진을 못 찍으면, 작가님이 스토리에 올렸던 눈사람과 연주가들의 뒷모습 사진을 달라고 해야지—그런 생각들.


톤도 정해두었다. 따뜻한 전구빛 안에 빨간 양말과 흰 양말이 섞여 있으면 좋겠다. 온도라면, 6시간 정도 사용한 핫팩의 잔열 정도? 쥐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을 법한 따스함. 정작 몇 시간 후 어떤 글을 쓰게 될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한참을 그렇게 상상했다.


돌이켜보면, 이 또한 사전계획이었다. 오늘의 연주가 어떤 색으로 덧칠될지 모른 채, 수많은 장난감 네모 블록으로 내 눈높이의 작은 성을 하나 쌓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 유진

그런데, 검은 물감이 쏟아졌다.


내 성을 무너뜨리지도 않고 서서히 덮어버릴 정도로 진한 색이 내 구역을 침범했다.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못한 채 흘러내리는 그것을 멍하니 응시했다. 물감이다. 까맣다. 왜?


허락하지 않은 자리에, 허용하지 않은 색이 끼얹어졌다. 왜? 아—나는 그 지점에서 불쾌했다.


내려온 액체가 내 흰 양말까지 닿을 즈음, 내 계획이 어그러졌음을 깨달았다. 아—나는 그 순간에 불편했다.


왜 그 작은 것 하나로 흩날리냐고? 내가 J라서 그렇다. 당신도 알고 나도 아는 그 성격 검사. 나는 단 한 번도 계획형이 나오지 않은 적이 없다. 계획이란 무엇인가. 앞으로 할 일의 절차와 방법, 규모를 미리 헤아려 작정하는 것이다.


공연 전의 나는 기준선을 몇 개나 정해두지 않았던가. 그런데 내 계획과는 정반대의 것이 나타났다. 반갑지 않은 불시착에 마음이 뒤틀렸다. 나는 모든 걸 하나하나 계획할 만큼 꼼꼼하진 못하지만, 마음속에 작정해둔 것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상황만큼은 극도로 불쾌하고 불편했다.


그런 와중에 탄생한 까만 원형이니, 달가울 리 있겠는가. 무엇보다 저 구, 내가 어떻게든 외면해오던 것들과 너무 많이 닮아 있었다.


나에게 음악, 클래식은 무엇을 얹어주어야 하는가. 기쁨, 슬픔, 새로움, 즐거움, 깨달음, 충격, 해소, 분노—그 정도면 충분하다. 몰랐던 것을 일깨워줘도 좋다. 그 또한 배움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한 문장씩 얻어가는 즐거움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다만, 절대 내게 전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연주로 인해 나의 심란함과 고단함이 더해져서는 안 된다. 성의 없으면 안 된다. 의도되지 않은 텅 빈 소리여서도 안 된다. 시간을 낭비했다는 느낌을 줘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내가 싫어하는 '결'과 닿아 있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무엇이 그리 싫으냐고? 나는 무서운 것들이 싫다. 잔인하고, 심리적으로 불안을 유도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에 뒷걸음친다. 공포영화도 싫고, 핏기 어린 장면도 싫고, 사람 사이의 싸움도 싫다.


결말이 두려워 미리 빨리감기를 눌러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확인하고 나서야 영상을 볼 수 있는 사람들 있지 않은가? 그게 나다. 나약하다고? 어쩌겠는가. 나약하기 때문에 이 장르 안에 파고든 것이다. 이 세계마저 나에게 예측 불가능성의 불편감을 줘서는 안 된다.


올해 하콘 줄라이 페스티벌에서 들었던 ‘봄의 제전’ 피아노 듀오 버전의 압박감도 버거워 글조차 쓰지 못했다. 그래, 나는 그런 것들에 심장 아래가 깊게 패인다.


그래서 공연 내내 당황했다. 엘가 피아노 퀸텟을 들을 때는 그들이 그려내는 정체가 나를 잡아삼키는 것과 닮았다는 걸 눈치 못했다. 너무 들떠 있지 않았나. 이불 속으로 파고들 생각을 했지, 저 새카만 것에 감싸여 온 기운을 다 빨릴 줄은 몰랐다.


어디 내 기만 가져갔을까? 그날 그 동그란 것을 만들어낸 당사자들까지 다 잡아삼켰다. 바닥을 쿵쿵 내리찍고 내던지는 소리들이. 듣는 이도 머리가 웅웅거리고, 행하는 이도 고단해 보이고, 성난 소리와 녹화 중인 카메라만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아—, 공연이 끝나면 저 얄미운 것을 붙잡고 말씨름을 해야 한다고? 이 고약한 것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머리가 아찔해 공연 말미엔 헛웃음이 나왔다. 그날 와인 파티에서 이 말만 다섯 번은 한 것 같다.


“나 어떡해요? 이거 어떻게 글 써요?
<총균쇠> 100권으로 마룻바닥을
사정없이 망치질한 걸 내가 어떻게 줍나요?”


아, 한탕 거대한 거사를 치른 연주가들은 어찌 됐든 홀가분해 보였는데, 나는—? 나는 어떡하나! (뭘 어떡해) 나에게 과업을 선사한 나를 연민할 사람은 오로지 나 하나였다.


곤란하다. 대단히 곤란해! 저 돌덩이 같은 것 앞에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잡았다. 고난에는 끝이 없다. 국악보다, 국가무형문화재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나마 다룰 만해졌다고 느낀 클래식이 발목을 잡았다.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분들, 두려워하지 마시라. 어차피 매일이 고난이다. 클래식을 하면 무용이 오고, 무용이 괜찮아지면 국악이 오고, 국악을 내려놓으면 연극이, 연극을 내려놓으면 클래식이 다시 기상천외한 과제를 내놓는다. 정말 아와 이와 쉬를 잇대어 된소리로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만, 어쩌겠나? 쓸 건 써야지. 무서운 소리라고 쓰지 않으면 그게 더 기분이 안 좋아진다. 사람에게 루틴이란 게 있지 않은가? 최애가 나오는 공연, 최애 공연장이라면 써야지… 해야지… 별수 있나.


도대체 나는 뭐에 그리 침잠했던가? (어쩔 수 없이) 돌아보자. (팽이가 돼, 팽이가…)





엘가 – 피아노 5중주 가단조, 작품 84

ⓒ 유진

1. Moderato – Allegro (보통 빠르기로 – 빠르게)


피아노가 첫선을 내놓고 현악기들이 뭉치는 끝 영역이 강할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다. 오늘 여기서 다정을 논할 이는 하나도 없다. 처음부터 매정한 기색이 있었는데 왜 몰랐을까. 까맣기도 엄청 까맣네. (나는 바보입니다)


시작이 이렇게 초연할 수 있나. 소리를 둘러싼 공기들이 너무 차다. 그 와중에 첼로는 왜 이렇게 길게 아래로 내려가 있는지. 8:26, 서서히 몰아감이 보이는가? 하나씩 내려뜨려 놓을 때도 온기가 없다. 바이올린이 아스라히 사라지는 것도, 크게 요동치는 것도 아닌데 미묘하게 정을 안 주니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9:57, 사근거리는 것들 주위를 다시 응시하시라. 고요하다. 악기도 외롭고 나도 외롭다. 10:31, 이렇게 들뜨지 않고 서정성을 그릴 수도 있나. 서로 간의 독백 같아 어둑하고 춥다. 11:51, 이것마저도 뒤로 물러나 서서히 내놓는다. 정적이다. 밀착감보다 공백의 시간이 길다.


12:26, 돌아오는 모습도 지켜보라. 올라가기보다 서두르지 않고 바닥에 밀착한다. 13:06, 첼로가 더 새카매진다. 13:23, 밀어붙이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이때부터 오늘의 공연을, 엘가를 단단히 착각했음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대단히 착각했구나.


14:22, 피아노가 바닥을 울렸다. 잘못된 준비를 한 상태에서 나보다 훨씬 앞서가는 소리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어찌나 성마른지, 감정선이 짙은지. 15:26, 견뎌야 하는 압력이 컸다. 15:45, (…) 여기가 어디지?


16:01, 일직선의 비명 소리가 난무한다. 다섯 개나 꽂혀 내려든다. 17:10, 오늘따라 연약하게 모여든 후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 고독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가라앉으니 더 심란하지 않았을까.


모여들 때는 두 갈래로 놓이고, 뭉칠 때는 서로 응시하기보다 제 갈 길로 흘러가니 어디서 우울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18:34, 저 첼로 소리 한 줄이 그날의 모든 소리에 깔려 있다.


18:46, 이런 아픈 슬픔이 괴로워 싫다.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까맣게 드리워져 있어 힘들었다. 다정하지도 않고, 웃어주지도 않고, 크게 울지도 않고, 포기도 안 한다.


큰 좌절도 없다. 시야 하나 잡히지 않은 안갯속에서 헤매야 했다. 20:09, 첫 번째 구덩이가 파였다. 20:38, 아… 외롭다.


2. Adagio (느리게)


느리고, ‘지나간 아픔 안에서.’라고 악장 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을까? 빛줄기 하나 없는 방 안에 갇혀 있을 테니. 기분이 이상해 눈물을 흘려도 관심 가져줄 사람 하나 없을 테니. 울기만 해. 울기만…


24:28, 바이올린이 먼저 흐느끼면 첼로가 이어서 샘을 넓힌다. 미치겠다. 눈물만 흘리는 사람 지켜보는 걸 좋아할 이가 어디 있나. 달래줄 수도, 도와줄 수도 없다. 25:05, 저렇게 선을 긋는데 어떻게 다가가나? 더 멀어졌다.


25:35, 뒤로 물러나는 걸음이 있다. 절대 다가오지 말란다. 감당하기 싫은 새카만 밤이 가득하니 한참을 헤맸다. 이 안에서 안식을 얻고 싶었는데, 내가 가진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나보다 훨씬 큰 울음만 가득하니 작아졌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26:56, 통제할 수 없겠음을 이때쯤부터 확신했다. 이 악장을 견뎌낼 수 없겠구나. 그제야 눈치챘다. 이런 줄을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앞서 눈치를 챘다면 받아낼 수 있었을 텐데. 준비되지 않은, 이렇게 조막만한 내가 싫다.


29:06, 받아들이기엔 너무 큰 파도가 여기 있다. 괴로웠다. 지금 이 길을 다시 걷는 지금도 솔직히 힘들다. 그때는 눈치조차 못 챘지만. 30:15, 난 그래도 다정할 줄 알았다. 30:39, 가라앉음에 슬프다.


31:15, 분명 이 비올라의 소리는 따뜻했는데, 이 안에선 그 온도 그대로 울어낸다. 31:35, 꺄륵대는 피아노 소리가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된다.


3. Andante – Allegro (느리게 걷듯이 – 빠르게)


이때쯤엔 판단을 포기했다. 33:24, 두 바이올린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을 보라. 그래, 저 정적이다. 저 길 위에 놓였다. 그러니 33:47의 빗겨침 이후에도 떠오를 수 없었다. 애초에 그들이 떠올려 놓지도 않는다.


33:59를 보라. 올라서기보다 자리를 비워버린다. 장대한 서사가 아니라 붙잡을 수 없는 사람들을 꼼짝없이 지켜봐야 하는 고난의 시간이 여기 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35:38, 이미 떠나버린 자가 불규칙한 걸음으로 마구 내달리는 것만 같았다. 타들어가는 서정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한 줄로 조화롭기보다 치닫는 갈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얄궂게 우는 사람이 여기 가득하다. 왜 하필 여기에! 37:22, 어질한 심경으로 묘사되어 있다. 37:52, 이제 와 나긋하게 노래해준다 한들 소용없다. 찢긴 것을 붙여낼 수는 없다.


38:26, 저 틈 안에서도 저렇게 우는데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모르겠다. 38:42, 고독사할 유령이다. 고독해요. 지독할 정도로 고독해.


39:49, 평소 같았으면 ‘여기서 먹구름이 거둬지려나’ 했겠지만 기력이 없다. 마음결이 어둑해 어두운 길의 뒷자락에서 버텨내느라, 밝아오는 것을 응시할 힘조차 없었다. 심각하기 바빴다.


42:23, 누굴 향해 이렇게까지 나아가야 하는 걸까. 이 길의 끝은 어디지? 집어삼켜짐인가?

괴로워.



타네예프 – 피아노 5중주 사단조, 작품 30

ⓒ 유진

1. Introduzione: Adagio mesto – Allegro patetico (슬프게 느리게 — 격정적으로 빠르게)


47:26, 피아노가 걸을 적엔 이미 마음을 비웠다. 47:32, 바이올린이 긴 선을 늘여놓을 적에도 그리하였다. 47:47, 아 얇아지네. 48:00, 아… 48:49, 비올라와 첼로가 구덩이를 마저 파내는 길에 떠오른 두 대의 바이올린을 응시하시라. 넋이 길게도 나가 있다.


49:14, (…) 49:40, 실선을 따라가라. 50:26, 형체 없는 형체를 쫓아가는 이 길목 안에서 자리할 곳은 하나도 없다. 왜 이렇게까지 몰아야 하나. 50:51, 엘가의 짙음을 지나와 그보다 더 짓눌린 감정을 마주하니 정신이 남아날 재간이 없다.


51:19, 차라리 고요히 앉아 울어주니 고맙다. 51:42, 오늘 이 조합에 피아노가 없었으면 우울해서 다 기절했겠다. 52:26, 와 정말 진하다. 정말 진해. 나 방금 대하소설 읽고 왔는데 왜 여기 또 한 권이 놓여 있나. 미치겠네!


53:06, 첫 선에서는 하나였던 것이 두 번째에 물러날 때는 저만큼 작아져 있다. 한 줄마다, 딱 한 줄마다 이렇게 다르게 말해야 하는가? 띄어짐이 하나도 없다. 왜 이렇게 구간마다 거대해져야 하나? 응축시켰다가 리본선을 풀듯 서정성을 보여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53:44, 1바이올린의 흔들림을 따라가보라. 갑자기 피아노와 윤을 내다가 53:57에 맹렬해진다. 지금 20초도 안 지났어요, 선생님. (미치겠네) 폭풍도 이렇게 자주 오면 상도덕 문제를 논해야 한다.


54:12, 불기둥을 내려꽂다가 54:15에 (?) 유성우인 척하기 시작한다. 몇 초 단위로 사람을 들어다 놨다, 뭉쳤다 풀었다 밀어붙였다 더 치밀하게 내놓는 이유가 뭐냐? 55:13에 강해졌다가 왜 55:21엔 연약해졌다가 55:26에 다시 맹렬해지냐. (나 지금 누구랑 얘기하니)


55:35, 이 얇다란 대각선은 뭐지? 55:43, 다른 곡이면 두세 번 만날 법한 감정선이 도대체 이 한 악장에 몇 번 들어가 있는 거지? 뜨개질을 지독할 정도로 세밀히 짜두었다. 비올라가 하면 꼭 바이올린이 뒤를 따라오고, 피아노가 같이 걷는다.


평소 같았으면 이 서로 다름이 반가웠을 텐데, 포기를 모른다. 56:25, 끊임을 모른다.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을 갖고 다르게 논한다. 57:02, 이젠 같이 한다. 미치겠네. 골드베르크도 이거보단 느리게 돌림노래하겠다.


57:16, 쉴 틈이 없다. 이제 바이올린이 먼저 말하니 비올라가 뒤따라온다. 57:35, 이젠 첼로까지 함께다. 뭘 위해 이렇게까지 내몰아야 하나. 58:26, 장중하게 걷지 마세요. 나 지쳤다.


58:36, 갑자기 예뻐지지 마세요. 왜 저래 진짜! 59:04, 하나씩 내놓는다. 하나, 그다음엔 빠르게 둘, 이어 셋이. 그나마 너그러워진 바람을 내놓고는 살짝 뒤에서 서서 두 겹의 모습으로 하나, 또 하나… 또 한 번.


59:26, 이야 진짜 시커멓다! 잿더미 되기 5분 전이다. 59:51, 나 이제 그만 장관이 되고 싶은데 끊임없이 타오르고 태워 올린다. 1:00:01, 카메라 보세요… (쾅쾅!) 저 때 마룻바닥이 거대한 드럼이 되었다.


1:00:14, 자잘한 회오리도 놓치지 않는다. 1:00:40, 잠깐 황홀경을 묘사했다가요? 1:00:54에 내리꽂아요. 1:01:11, 이쯤 되면 연주가들이 우는 것 같기도 하다. (살려줘)


1:01:44, 첼로가 우는데 바이올린이 뒤에서 따라 울어준다. 1:02:16, 웅장함을 내리꽂는 이 시점이 지금 1악장인가요? (도망가고 싶다)


1:02:40, 뒷모습으로 아스라움을 그려내는 저 바이올린이 원망스럽다. 몇 개의 서사가 겹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무거움을 내려놓으려 글을 쓰는데, 오히려 형체가 선명해져 돌덩이가 가중된다.


지금 이걸 포용할 수 있나? 감정선이 수십 개다. 1:03:15, 몇 번을 내밀어져야 만족스러울까? 손님이 작곡가를 말리고 싶을 지경인데.


1:03:40, 아… 예뻐지지 말라니까요. 왜 막느냐고? 1:03:50, 예뻐진 다음엔 꼭 저런 사태가 벌어진다.


1:04:03, 아까는 유성우인 척하더니 여기선 왜 빛광선을 바닥에 꽂냐고 (;;;) 미치겠네. 이 곡 너무 복잡해요. 살려줘!


1:04:16, 똑같이 새까매졌다가 1:04:20, 왜! 왜! 왜! 이렇게 높게! 높게 나냐! 왜!


1:04:37, 그만 치솟아도 되는데. 그만 두들겨도 되는데. 나 이제 다 이해했는데.

아 살려주세요~~~~는 무슨~~~~~~~.


1:04:51, 아 이제 모르겠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 1:05:07, 맘대로 가라. 이제는 좌충우돌인지도 모르겠고, 융합인지도 모르겠고, 머리가 복잡해 터질 것 같다.


1:05:17, 나 지금 결말만 30번 봤다. 이제 1악장의 마지막이 분명하다. 분명해. 1:05:29, 저 박진감에 울고 싶다. (살려줘… 아니 나 진짜 집에 갈래)



…인터미션을 하고 왔다.

진심 글 쓰다 버거워서 쉬었다. (말잇못)



2. Scherzo: Presto (매우 빠르게)


1일의 하콘에서는 이 생글거림에 철없이 신났었다. 2일, 이 곡의 실체를 명명백백 알게 된 지금은? 하하!!!!! 설명을 생략하겠다. 아니 진짜로 인터미션을 1악장 끝나고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진심으로…


1:07:23, 이젠 다 각자 다른 얘기하기로 한 건가? 왜 누군 올라가고, 지직이고, 옆으로 파동치나. 1:07:32, 차력쇼 입장송인가요? 클래식이 지루하다 그러면 나 화낼 거다. 말 제일 많아. 곱상하게 생겨서 엄청 요란해.


1:08:04, 나 이제 좀 적응한 것 같다. 산성비 스타일로 치솟았다가 갑자기 조용해져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은 성장했다. 1:08:40, 그래 이 정도 아련함만 줘도 나 만족할 수 있는데.


1:09:05, 딱 좋지 않은가? 1:09:27, 비올라의 시작을 들어보라. 그 다음 말을 하기까지 이렇게 거리 간격을 벌려준다고? 웬일이세요. 첼로가 두 번이나 다독여준다고? 세 번째부터는 서서히 감정을 높여온다.


1:10:04, 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 옆으로 흐르는 소리에 집중하라.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나누다 이윽고 같은 움직임으로 만나고 말 것이다. 1:10:19, 자, 5명이 고운 모양으로 울다가 1:10:28부터 실로폰 장난을 친다. 왜 치냐고? 작곡가가 시켰다. 피아니스트 표정 보세요.


아~~ 이게 지금 클래식 공연이 맞아요? 1:10:36, 건반이 반짝이는 걸 보니 맞단다. 1:10:39, 바이올린의 째깍거림을 들어보라. 옆에서 반복하고, 필시 되돌아온다.


1:11:01, 피아노가 신호를 준다. 선명도를 높인 소리에 집중하라. 현악기가 사선으로 흐름을 또 쌓아갈 것이다. 이번엔 사선이다. 사선. 타네예프한테 누가 단조롭다고 뭐라 했습니까? 누구? (혼날래?)


1:11:29, 신기하다. 박유신 첼리스트는 어떻게 저렇게 표정이 흔들림이 없을까. 땀 한 방울 안 흘리는 것 같다. 가능한가? 진짜?


1:11:32, 전채안 바이올리니스트와 유성호 피아니스트를 보라. 온몸이 새빨갛다.


1:11:41, 지금 2바이올린과 피아노가 각기춤을 추는데 1바이올린이 또 다른 시동을 건다. 그 다음엔? 1:11:51, 정지 후 2차 차력쇼 시작이다. 저때 소매를 몇 번 올렸는지 모른다. 더웠다.


1:12:28, 익숙한 선율이 돌아올 때도 꼭 옆에서 째직임을 합류시켜 놓는다. 이 발칙함 어떡하지? 마무리 소리까지 발랄하면 어떡하라는 건가. (집에 갈게요)


3. Largo (아주 느리게)


아… 아직도 안 끝났다. 이거 맞아요? 아… 잠깐 바이올린이 튜닝하고 방심한 사이 또 담대하게 첫선을 내민다. 나 소인배 맞으니까 그만 거대하세요! 조약돌 하나로도 만족할 수 있는데…


일단 가니까 따라가야지. 딱 한 계단씩 오른쪽으로 상승할 것이다. 그보다 살짝 아래에서 같은 일을 반복한다. 기세를 낮춰 다시 이어가다가 첼로가 혼자 노래한다.


1:14:11, 멀지 않은 곳에서 바이올린이 넓은 바람을 가져다 놓는다. 첼로의 낮은 걸음, 그나마 평온해진 선율을 서로 다르게 응시하라. 쉽게 오지 않는 순간이다.


듣다 보니 이건 또 이거대로 정신이 이분된다. 윗선과 아랫선의 띄워짐 정도가 확실해 멀미날 것 같다. 비올라… 조금 더 크게 해서 이 간격을 메워주면 안 돼요? 숨어있지 말고 (ㅠㅠ)


흐름이 이어질수록 첼로는 차분해지고, 바이올린은 그 영역 안에서 흐름을 잡아챈다. 1바이올린과 첼로가 비워낸 자리에 2바이올린과 나머지가 서서히 채워 들어온다.


1:15:44, 현악이 거닐다 돌아오길 반복하는 사이 사라졌던 피아노가 홀연히 유려하게 걸어준다. 이곳은 ‘혼자 두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1:16:10, 바이올린이 달뜬 어린 두 숨을 내뱉는 장면을 보라. 1:16:20, 흩날리며 피아노와 걸음을 맞추다 1:16:45, 이제는 피아노와 4개의 현악기가 분할됨을 느껴야 한다. 크게는 1바이올린과 건반일 것이다.


1:17:00, 비올라도 함께다. 익숙한 첼로의 이어짐이 연속된다. 맺어짐이 끊이지 않으니 벗어날 길이 없다. 1:17:38, 비올라가 다른 흐름을 가져오기 시작한다. 비틀어짐 속에서 펼쳐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1:18:15, 채워 올려야 하는 게 도대체 뭐예요? 피아노는 왜 이와 반대로 꽂아내려요?


1:18:39, 이만큼 괴롭혀낼 만큼 치달아야 하는 감정이 뭐지? 내보여야 하는 것들의 정체가 뭔가?


1:19:19과 1:19:29,

저 안에 담겨 있는 것이 뭐지?


1:20:00, 이 정적임 속에서 판단이 다 내려앉을 시점에 달했다. 가파른 선에도, 하나둘씩 사라진 자리에도 늘 돌아오는 것은 같다. 왜 자꾸 돌아오는지 물을 것도 없다. 그냥, 돌아올 길이니까 돌아올 뿐이다.


사사롭게 질문을 던지지 말고 받아들여라. 1:21:43, 오늘의 피아노에 이 소리가 없었다면 한참 내동댕이쳐졌을 것이다. 같은 길이 오고 감을 충분히 보셨는가?



1:22:55,

여기 백색의 우주가 있다.

아-, 나 이거 만나러 왔나 보다.


4. Finale: Allegro vivace (생기 있고 빠르게)


그래,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이렇게 시작해야지. 이제 매서워져도 상관없다. 오히려 속 시원하다. 결국 마지막 아니던가?


무게감이 덜해졌다. 잡아삼키겠다는 기세도 아주 약간… 아주 조금. 1:25:09, 그렇다고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현악이 낼 수 있는 가장 응축된 바람이 두 번쯤 몰려올 것이다.


1:25:23, 저 갑자기 반짝거리는 소리를 내보이는 작곡가의 심정이 궁금하다. 달래주는 건가, 환기시키려는 건가. 도대체가!


1:25:41, 아 까먹었다. 이 작곡가는 예쁜 소리가 나면 꼭 그다음에 저렇게 바닥에 도장을 찍는다. 까먹었네…


1:26:18, 가로형의 8자로 이상한 표정도 보여줘야 한다. 1:26:43, 이쯤 되면 거대한 원기둥이 하콘 바닥을 뚫으려 애쓴다. 1:27:11, 도대체 몇 번째인지 감도 안 온다.


1:27:43, 이 바람은 왜 또 여기 가져다놨나. 1:27:57, 그 어떤 때보다 얇고 재빠르게 채워 올리다가 1:28:04, 아 또, 익숙한 윤이 난다. 그 다음은 어떻겠는가?


1:28:57, 다 이를 위한 길이었다. 1:29:17, 이렇게 흐느끼는 와중에도 현 위로 피아노의 윤을 들여다 놓아야 하는 게 바이올린인가?


1:29:34, 나지막하게 걸어도 줘야 한다. 함께도 가야 한다.

ⓒ 유진


1:30:04, 박유신 첼리스트님. 나는 궁금해요. 1:30:22, 왜 아득할 만큼 높은 선상까지 연주자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나요? 왜 저기까지 올라갔다 내려와야 하나요?


꼭 지나온 자리는 넓게 짚어보고 지나가야 하나요? 펼쳐내야만 하는 감정들이 있는 건가요? 드넓게 노래할 때만 보이는 것들이 있나 봐요.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을 걸어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게 있나요?


머지않은 이별 안에서도 끊임없이 요동쳐야만 이만큼 자라날 수 있나요? 이 시간을 견뎌낸 자만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건가요?


아-, 마지막에 달해서야 다정하고 거대하게 화합하더니, 마지막 끝선은 또 정갈하게 내려놓게 만드는구나. 아-. 아…


구의 원형

ⓒ 유진

모두가 1일을 떠나간 자리.

2일이 3일로 넘어온 자리.


절대 끝이 보이지 않던, 두 시간 가까이 달려온 러닝타임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먹먹한 눈과, 아려오는 손가락과, 가벼워진 마음 하나다.


그리고, 구덩이가 메워져 있다. 계속된 반복으로 나를 괴롭히더니 남몰래 그 안을 완전히 꽉— 채워 놓았다.

애초에 비워져 있었던 게 맞을까? 그냥 어둡게만 본 건 아닐까. 낯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늘의 연주가 나의 기대선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애먼 화풀이를 한 건 아닐까.


영원처럼 이어질 것 같았는데, 끝이 났다. 그래, 결국 복잡해도 도달할 지점은 정해져 있다. 휩쓸릴 것인가? 응해낼 것인가. 치닫을지언정, 여기까지 도착해내고 나서야 왜 포기를 모르고 그가 여기까지 왔는지 이해가 되고, 이 두 곡을 왜 한 무대에 만나보기 힘든지 뼈저리게 느껴볼 수 있었다.


이 장르를 가까이 하는 사람과, 아무 관심 없는 사람 사이에서 멀뚱히 서서 종종 생각했다. 클래식은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좋아할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무심할까.


그 양옆을 오가다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 마음을 한껏 내어주었다고 생각해도 이만큼이나 어렵고, 낯설고, 흥미롭구나.


가장 가까이에 서 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가장 멀리 서 있었다. 그저 손 하나 뻗는 것으로는 부족하구나. 이래서 끝까지 함께 있어야 하네.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야 하는구나.


만약 그날의 연주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 이유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내가 놓친 것이 있었을 수도 있고, 내가 지나치게 움츠러들었을 수도 있고, 그들의 소리가 그날의 나와 맞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선이 어그러졌다고만 여기며 사사롭게 의심하기보다는, 그저 받아들인 채 내가 무엇을 더 들을 수 있었는지부터 천천히 되짚어 보면 된다. 그리하면 나도 바로 설 수 있다.


나는 왜 공연이 끝나고 한참을 길게 불쾌하고 불편해했던가? 좋아하는 연주가와 좋아하는 공간 안에서 행복한 기억만 가득한데, 왜 이렇게 기분이 가라앉았나? 무척이나 가벼웠기 때문이다. 피상적으로 즐기려고 했다. 그 지점에 틀렸다. 그 생각에서 구의 원형이 단단히 망가졌다.


오늘 저들이 그렇게 휘몰아쳤던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처음엔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만 보였던 것 안에, 이렇게나 자잘한 별들이 박혀 있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그 작은 틈들을 내가 붙잡아낼 수 있었을까.


거친 바람과 반복의 미학이 이곳을 채우고 있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해 들여다보는 것만큼이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중심을 잃어가며 비로소 얻어지는 것들이 있었다. 낮이 밤이 되도록 밀어붙여야만 드러나는 글자들도 여기 있으니.


아, 나는 지금 이 까만 글자에 도달하기 위해 이 일을 자처했구나. 그래. 결국은 이리 오는 수밖에 없었다.


ⓒ 유진

긴 여정이었다. 아니 그런가?

기다랗고도 복잡한 길이었다. 아니 그런가?


1일에 피어나 사그라진 것이 이런 모습일 줄,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겨뤄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내가 오히려 우습다.


한계점에 이른 이 지점에서,

승리의 깃발은 누구 손에 쥐어져 있을까 묻는다면…

글쎄. 당신 보기엔 누구인 것 같나?


나는 잘 모르겠다. 의미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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