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사람을 기획하는 일
*이 글은 도서 『사람을 기획하는 일』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선택하는 일
손발이 자유로워지니 괜히 뒤돌아보게 되고, 선택지가 다양해지니 누가 알아서 골라주었으면 했다. 별다른 고민 없이 고를 수 있는 건 핸드폰 앱으로 누르는 ‘핫 아메리카노’ 정도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뭐 먹고 싶어?”라 물으면 매우 난감하다.
음악적 취향은 주변 또래 애들보다 유달랐지만, 그 외의 것들에는 아무 생각이 없는 수준에 가까웠다. 먹고 싶은 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어딜 가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잘 안 했고 지금도 안 하고 있다. 그러니까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고서야 크게 희망한 적은 없다.
나를 집 밖으로 꺼내 놓거나 가둬 두게 만드는 그 원동력이 ‘이렇게 살다 죽겠어!’ 하는 거대한 가훈이 아니라, ‘아, 좋은데?’ 하는 저 도파민적 충동성에 기반해 있다는 점이 참 흥미롭다.
파고들 때마다 새로운 재미가 있던 것도 아닌데, 날밤을 새게 만들고 고통에 몸부림쳤던 때가 더 자주였던 것 같은데도 나는 꽤 자주 그 괴로운 패턴 안으로 스스로 들어갔다.
그런 의미에서 2025년에 찾아온 이 새로운 시점에서 ‘서술’하는 취미는 특별했다. 그동안의 것들은 대부분 화면과의 일방향적 소통이었다. 단어를 외우거나 등장인물을 어떤 역경 속에 놓을지 상상하는 일은 대체로 방 안에서, 특히 컴퓨터 모니터와 끈질기게 엮여 있으면 될 일이었다.
바라보는 대상도, 눈을 맞추고 있는 사람도 나에서 나였고, 내놓는 결과물도 ‘나’만 보면 될 일이었다. 가끔 그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될 일이었다. 누가 본다고!
그래, 누가 본다고!
그 문장을 그대로 들고 와 ‘리뷰’라는 카테고리 안에 속하는 글을 발행한 지도 몇 개월. 이제는 관객석에서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그들이 사람이지, 그럼 뭐냐 싶겠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그 점을 자주 까먹는다. 어두운 조명 속 누군가의 스토리 안에 머물다 보면, 능숙한 연기와 연주에 푹 빠져 있다 보면, 실제 모습이 아닌 어떤 캐릭터적인 면모만을 보게 된다.
그들이 우리의 특별한 날을 장식해 줄 NPC가 아니라, 나와 비슷한 이유로 배고파하고 불안정해하며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자주 느끼고 애써 잊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원래 뭔가를 좋아하다 보면 환상을 가지게 되지 않던가. 그들은 완전무결하며 매번 완벽할 거야. 늘 정돈된 모습으로 내 기대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충족되겠지?
그런 식으로 나의 행복을 최우선 기준점 삼아 무언가를 염원한다. 스토리라인의 메인 축을 ‘나’로 잡아 버리니, 조금의 티끌만 있어도 미끄러진다.
예외 변수—공연장, 그날의 관객, 나의 건강 상태, 연주 컨디션 등—가 하나라도 작동하는 날에는 나의 완벽한 환상에 빗금이 그어지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크게 실망했고 서글퍼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사실 ‘변수’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본’이었고, 나르시시즘적인 필터를 씌운 채 대상을 바라보던 내가 가장 큰 변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애초에 로봇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지 않던가. 완벽함을 기대했다면 멸균된 방음실에서 아주 값비싼 스피커를 틀어 놓고, 누군가가 완벽하다고 지정해 놓은 음반을 걸어 놓고 홀로 감탄하면 될 일이었다.
꼿꼿이 허리를 펴고 사람을 평가하듯 쓰면 '잘' 쓰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쓰고 나면 자주 부끄러워졌다.
이게 단어 시험도 아니고 OX 퀴즈도 아닌데, 정해진 답안이 있었던 걸까.
그 복잡한 실타래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공연을 보러 갔던 어느 날, 무대 안에서 불어온 현악의 큰 바람에 몸을 띄워 오르게 만드는 부유감이 모든 긴장감을 녹여 버렸다. 그리고 한 떨기 물음만 남았다.
무슨 소용이니. 사랑하면 그만인 것을.
그때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았고, 되찾은 허공에 갈피를 다시 잃었다. 가늘고 뾰족한 지팡이가 아니라 둥글둥글하고 몽글한 방석 하나를 들고 나니, 양손을 어디에 둘지, 누구 앞에 털썩 주저앉을지에 대한 평생 끝나지 않을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러니 나는 먼저 길을 걸어본 사람의 어떤 ‘잔소리’를 듣고 싶었다.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종류의 안경이나 돋보기를 사면 되는지가 아니라, 그 물건 너머에 서 있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면 되는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는 말 하나에 길게도 헤매이던 나의 눈망울을 들여다봐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사람을 ‘잘 다루는 법’이 아니라 ‘오래 바라보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을 만났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예능 PD 편은지가 사람을 중심에 둔 기획 방식을 실제 방송 제작 사례와 함께 정리한 기록으로, [살림하는 남자들], [주접이 풍년] 등 프로그램을 통해 인물을 발굴하고 서사를 구성하며 콘텐츠와 브랜드로 확장해 온 과정을 다룬다.
포맷이나 아이디어보다 한 사람의 말투, 감정, 숨은 이야기를 읽어내는 데서 기획이 시작된다는 관점을 제시하며, PD 노트를 통해 인물 재설정, 콘셉트 도출, 실행과 수정, 성과 분석까지의 실무 흐름을 단계별로 설명한다. 방송 기획을 넘어 사람을 기반으로 한 브랜딩, 팀 운영, 커뮤니케이션 전반에 적용 가능한 기획 방법론을 담고 있다.
이렇게 설명은 할 수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린 건 기획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던 방식이었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바꾸어도 무방합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예능 PD가 어떤 대단한 능력으로, 어떤 스펙을 갖춘 채 사람을 간택하고 있나 봤더니,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 말하더라.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그늘에 따뜻한 조도의 조명을 가만히 비춰 둔다더라.
작가의 이 문장을 읽을 즈음엔, 이 책이 꽤 괜찮은 ‘사랑 지침서’가 되어 줄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콘텐츠의 대홍수 시대다. 갖지 못했거나 꿈꿔 온 일상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다.
이런 와중이니,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미 ‘기획자’이기도 하다. 우연히 결이 맞아 친구를 사귀는 관계를 제외하면, 나를 먼저 설명해야 할 순간이 유난히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기획해 내야만 한다. 나를 기획하든, 너를 기획하든, 어떤 장면 하나를 꺼내 보이기 위해서든.
생각만 해도 무겁고 번거로워서, 될 일은 금방 헤쳐 버리고 인공지능이 알아서 처리해 줬으면 싶어 황급히 일을 치러 버릴 때가 많다. 그때마다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주어지지 않으면, 그야말로 주저앉아 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으니.
그 밑바닥에 있을 때, 필요한 문장들이 참 많았다. 길을 헤매는 순간에 우리가 돌아봐야 할 곳은 어디인가. 궁극적으로 우리가 설득하고 싶은 대상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책은 답을 많이도 일러 주었다.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장면 하나일 수 있지만, '살아낸다'는 것은 수많은 서사와 번외의 일들이 함축되는 일입니다. 가능하다면 우리가 모두 생략해버리고 싶어 하는 구질구질하고 고된 장면들이 모여야 비로소 '살아내는' 장면이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말 한마디 없이 식재료를 냉장고에 채우는 영상, 퇴근 후 조용히 샤워하고 집을 정리하는 영상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상대와 진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무대에서 내려온 뒤 그 사람이 어떤 것에 좌절하고, 무엇에 웃는지를 함께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획자의 질문은 단순히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는 다정한 메세지를 먼저 건네는 방식입니다.
오래 보란다. 살아내란다. 사람을 남기란다. 그것도 아주 예뻐 보이게 만들어 내란다.
이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하고 시니컬하게 반응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갈등은 김 빠진 개그 하나에, 치아가 다 보일 정도의 웃음 두 개에 쉽게 무너지는 걸 보면, 우리가 잊고 있던 가장 쉽고 중요한 인생 전반의 꿀팁임은 부정할 수 없겠다.
경직된 마음을 풀어내어 주는, 단순히 일 때문에 혹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궁금해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마음에’ 물음을 스스로에게도, 혹은 타인에게도 던질 줄 아는 사람—혹은 기획자—가 되어 보면 어떨까.
일러 주는 선배 기획자의 다정한 조언이 참 많았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완벽하게 꾸민 캐릭터보다, 불완전해도 살아 있는 사람이 더 오래 기억됩니다. 결국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불완전하더라도 솔직하게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똑같이 저물어 가는 결과치를 맞닥뜨린다고 했을 때, 완벽을 사랑했다면, 완전함만을 꿈꿨다면 사람과 함께 완성해 나가는 과정과 불완전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해 보일까.
나의 입장에선 단연코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는 게, 명확한 답이 뭔지도 모르면서 완성해 나가려 하고, 불안정함을 옆구리에 끼고 살아가는 오늘을 택한 내가 아니던가.
이 책을 통해 ‘요령’을 부리는 법을 얻으려 했는데, 편법 따윈 하나 없고 끊임없이 관찰하고 가장 오래도록 살아내야만 한다는 최종 결제를 받아 버렸으니. 어찌하겠는가. 받아들여야지.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현재보다 미래가 궁금합니다. 기획자는 그 막연한 궁금함에 선명한 가능성의 얼굴을 붙이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이렇게도 보여질 수 있어요"라고 다정하게 상상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미래 서사 기획'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마주할 ‘사람’들 앞에 서기 전, 불시에 인사를 건네기 전, 그들에게 어떤 ‘약속’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례와 이론을 접했으니, 이제는 내 삶 안에 한 번쯤 놓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선 오래 보는 일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작가의 조언대로, 외관에 혹해 산 물건에 하자처럼 보이는 불완전함도 친구처럼 받아들이며,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나 포인트가 생겨도 기꺼이 ‘원래 그런 것이다’ 하고 생각할 줄 알 것.
뒷자리 관객이 비닐 사탕을 까먹더라도, 원래 그 자리에는 그런 소리가 나는 법이라 여기며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게 성장해야지. 뭐든 소유하려 들면 답이 없다는 걸, 그제야 조금은 제대로 깨우쳐 낼 수 있기를.
책을 넘기는 일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이 책을 휘리릭 두 번 읽었다. 처음 한 번은 제대로 읽으려 했는데, 읽다 보니 술술 읽혀 크게 한 바퀴를 돈 다음, 그어진 강조 밑줄을 따라 두 번 걸었다.
그때에도 글자가 눈에 잘 들어와 버리는 바람에 금방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해 버렸다.
책의 가장 초입에 하얀 페이지를 몇 장 넘겨 보면, 풀로 붙어 있는 자리에 연하늘색 바탕 위로 배경보다 짙은 파란 점들이 촘촘히 수놓아져 있었다.
그곳 상단에는 이 글의 전체를 미리 안내하는 작가의 말이 함께 놓여 있었는데, 그 부분이 책의 에필로그 응원만큼이나 참 따뜻했다.
문구를 읽은 뒤에는 파란 것들을 한참 응시했으니, 당신도 그 페이지를 목격해 봐도 좋겠다.
꽤 예뻤다.
당분간 오래 살아낼 것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