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향 다크초콜릿

[공연 리뷰] 이자벨 파우스트 & 알렉산더 멜니코프 듀오 콘서트

by 유진

공연이 끝나고는 무슨 일이 있었나 싶었다.

7시에 시작한 현대음악이 9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는데,

언제 시작이나 했던가 싶을 정도였다.

네 명의 작곡가를 지나 이어진 앙코르는

하얀 목화꽃만 같았다.


이렇게 유순하게 흘러갈 수 있나.

이만큼 부드러울 수 있나.

이렇게 다락방을 닮은 소리일 수 있을까.

분명 씁쓸하고 삐걱거리는 맛이 나야 하는데,

왜 이리 은은한 단내음이 감돌까.

다크초콜릿인 줄 알았는데 밀크 향이라니.

어디서 온 꽃봉오리일까.


1. 공연 시작 10분 전

2602040204IMG_2246.jpg ⓒ 유진

좌석에 앉아 긴 줄을 따라 산 보라색 프로그램 북을 펼쳤다. 겉표지가 유난히 손에 남는 질감이라 손가락으로 몇 번 만지작거리게 됐다. 주최 측이 공들인 티는 꼭 이런 데서 난다.


2월 4일, 예술의전당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 파우스트와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멜니코프의 듀오 콘서트가 무대에 올랐다.


이자벨 파우스트라는 연주자를 처음 알게 된 건,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리사이틀 영상 인터뷰였다. 영상 속에서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나요?”라는 질문이 나왔고, 그에 대한 답으로 그의 이름이 언급됐다.


이후에는 궁금한 마음에 음원 사이트에서 이것저것 찾아 들었다. 가장 먼저 만난 곡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이었고, 이를 시작으로 프랑크 소나타와 베토벤 소나타 8번까지 연주를 차례차례 듣게 되었다.


개별 취향을 막론하고 모두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소리 표현을 지닌 사람 같았다. 깔끔한데 디테일하고, 다정한데 과잉된 애정은 없다. 연주자가 작곡가와 관중 사이에서 이렇게 절묘하게 공정해질 수 있다는 걸, 그를 통해 처음 알았다.


지나치게 튕겨 나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물러서지도 않는데, 수전증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세상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연주한다. 공중에 활을 든 손을 그대로 멈춘 채 소리를 이어 가던 장면이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그 멈춤이 너무 자연스러워 오히려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는데, 정작 소리는 놀랍도록 따뜻하다.


2602040204IMG_2272.jpg ⓒ 유진


대형 콘서트홀 안에 있는데도 넓게 둘러진 둥근 무대 조명만 한 소극장에서 리사이틀을 듣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 온도 안으로 들여온 것이 다름 아닌 현대 음악이라니.


아무리 유명한 작곡가라 해도 현대음악은 여전히 낯선 영역이 아니던가. 프로코피예프나 쇼스타코비치의 작품 가운데에도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곡들이 적지 않다. 작년에 이런 음악들과 어떻게든 친구가 되지 않았더라면, 4일의 공연을 이렇게까지 편안히 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쇼스타코비치 1악장을 듣고 있을 적 문득 관중석 1층을 내려다보았다. 이 현대 음악을 다른 이들은 어떻게 듣고 있을지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한 번씩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특유의 현대음악적인 파트가 나올 때마다, 분위기가 미묘하게 숙연해지는 게 느껴져 혼자 웃음이 났다.


정말 오랜만에 한국을 찾아온 그들이 삐뚤어진 채 완성되며, 스스로 보석을 찾아내야만 하는 20세기의 보물상자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상자 안에서는,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온도가 먼저 번졌다.


예습할 때만 해도 내 안에 각인되어 있던 프로코피예프의 얇은 선율이나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엉뚱한 흑백영화를 마주하게 되겠거니 했는데, 오히려 그들은 한 발 물러나 있었다.


날카로운 바늘이 아니라 전임 교수님의 오목한 나무 지팡이를 들고는 투명도를 낮춰 버리며, 지나친 표현을 절제한 채 소리에 튕겨 나가지 않는 온화함을 펼쳐냈다. 그러니 공연이 끝나고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유순하게 흘러갈 수 있나. 이렇게 다락방을 닮은 소리일 수 있을까.


분명 씁쓸하고 삐걱거리는 맛이 나야 하는데, 왜 이리 은은한 단내음이 감돌까. 다크초콜릿인 줄 알았는데 밀크 향이라니. 어디서 온 꽃봉오리일까.


2. 7시 30분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멜로디' Op.35

2602040204IMG_2282.jpg ⓒ 유진


I. Andante


피아노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고 할까, 꽃으로 피었다고 할까. 오늘의 채도는 건반에게 맡기고, 바이올린은 이 이야기의 너그러운 길잡이 역할을 도맡는다. 일렁이지도 울렁이지도 않은 모습으로 아롱다롱, 아래에서 위로 오가며 오로지 소리만을 공간 안에 들여 놓는다.


치밀어질 필요도, 굳이 크게 힘을 주지 않아도 적당한 여유 공간 안에서 듣기 좋게 치닫음을 묘사해낼 수 있다. 한계점에 꼭 맞붙지 않고 편안하게, 왼손으로 두 개의 맞붙은 갈래를 그린다. 뒤쪽으로 물러나는 이어짐을, 수평선을 바라볼 적의 고즈넉한 모양으로. 이별일까.


II. Lento, ma non troppo


피아노가 아침 10시의 그림자 옆을 지날 때의 기분을 담고, 바이올린이 그 선을 따라다닌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임에도 오전의 산책길은 왜 이리 개운하기만 할까. 이른 새벽에 비라도 내렸다면, 물방울의 시원함은 말할 것도 없겠다.


빗방울이 사람들이 볼세라 남몰래 잎사귀 아래에서 이리저리 뛰어노는 피아노의 소리, 그들을 지켜보는 자애로운 시선이 현 위로 이어진다.


III. Animato, ma non allegro


파편이 튄다! 아니, 웅덩이일까. 기울어진 프로코피예프의 아득한 서사가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 물러날 적에는 바이올린에게 숨소리를 담아내라고 말이라도 한 것일까.


작게 더 모여봐, 이리 앉아봐! 내밀히 내려앉는 현과 그 주변을 넘실넘실 구경하는 하얗고 까만 악기가 있다.

안개가 자욱한 호숫가 근처를 상상해 보면 어떨까. 의미심장하고 스산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짙게 파동치는 때도 있어 나도 모르게 그 근처를 서성인다. 바짓단이 적셔지는 줄도 모르고, 가만히.


IV. Andantino leggiero e scherzando


꽃이다. 봄바람이려나. 여름치고는 너무 달큰하다. 멋대로 생각하는 프로코피예프의 첫사랑만 같다. 뒤뚱거리는 듯하면서도 놓칠 수 없는 마음 한 조각이 심장 부근에 콕콕콕 박혀온다.


V. Andante non troppo


슬픔은 아니었고, 비애도 아닌 울적한 길을 마냥 걷는 사람이 있다. 어리숙하기만 했던, 천진하기만 한 줄 알았던 그 애가 모두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꽤 잘 걷는다. 처음부터 넘어질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던가.


어째선지 중간부터는 피아노로 한 발 뛰기도 하고, 풍경을 음미하기라도 하려는 듯 양팔을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만큼 뻗어 춤을 춘다. 한 겹의 숨 자락이 거기 있다.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고아하다.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G장조 Op.134

2602040204IMG_2249.jpg ⓒ 유진

I. Andante


피아노의 첫 시작은 내가 아는 그 쇼스타코비치였다. 위협적이지 않은데 위태롭게 뒤뚱거리는, 뭉텅이의 삐뚤거리는 발걸음. 바이올린은 어떨까. 예상한 것보다 안정적이었다.


그동안 안타깝다고는 느껴봤지, 연민을 느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아주 조금 갸륵하게 보이기도 했다. 감정을 모르는 이가 외줄 위가 위태롭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로 선을 탄다. 누가 봐도 외로운 길인데도 눈을 동그랗게 뜬 얼굴로 앞으로, 앞으로 전진한다.


피아노가 또박또박 장난기를 그려놔줘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하염없이 저 고무줄 놀이에 뭔지도 모르고 끌려갔겠다.


시계 초침 소리만 같고, 곧 알람을 크게 울려버릴 것만 같은 자명종 같은 것들이 계단을 오를 듯 말 듯 간보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왜 놀려지는 것 같지 않고, 농락당하는 기분이 들지 않는 걸까. 희한한 일이다.


침울하게 외줄의 얇기를 더욱 좁혀나가는 순간에도 미동 하나 없다. 떨어질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걱정은 안 되지만, 갈수록 좁혀지는 소리의 두께감에 잠시 멍해진다.


불시에 튀어 오르는 장난감이 든 선물상자가 된 피아노에 놀라기도 잠깐. 실거미 한 마리가 지판 위를 빠르게 두드린다.


이렇게까지 안정적인 쇼스타코비치가 있던가.


II. Allegretto


이 공연의 홍보 게시물에 나왔던 도입부네—하며 남몰래 반가워했고, 예습할 적에 이 악장은 꽤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확실히 그동안 걸어왔던 악장들에 비해 규모가 크고, 밀집도도 상당했다. 음표마다 잘못 붙어 있는 것 하나 없이 딱딱딱, 스페이스를 지켜야 할 곳을 정확히 지켜 가며 이어 나가는 유연함이 있다.


왜 입을 삐쭉대는데도 다 이유 있어 보이는지. 마구 타오를 때조차 숨 한 번 내쉬지 않고 단숨에 나아간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광경 앞에서라면 어깨가 긴장으로 치솟아야 할 것 같은데, 온몸에 긴장감 하나 없이 두 눈으로만 몰두하게 된다.


음색이 좋고 저음에 힘이 있으니 이렇게 유두리 있게 위아래를 마구 오가도 삐걱거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역을 넓혀 놓는 것처럼 느껴진다.


빗길 위에서 주체할 수 없이 추락하고 나뒹굴 줄 알았는데, 나는 안락한 소파 위에서 소프라노가 불러주는 안정된 톤의 비극을 편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III. Largo


바닥을 내리찍을 때도 바늘이 없으니 찔리는 것이 아니라 뭉툭하게 파인다. 바이올린이 현을 손가락으로 튕기는데, 그 손에 마이크를 하나 더 가져다 놓은 줄 알았다.


이 악장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미묘하게 기운이 다 빠져 있다. 지친 것이 아니라, 서서히 녹아내려가는 양상을 예쁘게도 묘사해낸다. 피아노는 뚝뚝 떨어지고 대굴대굴 굴러가는 반면, 바이올린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고 흐르다 넓은 선으로 원을 그린다.


넋을 놓은 것은 아닌데, 튕겨오는 둥근 소리마다 여백이 조금씩 있어 공허함이 그 사이에 끼워져 있다. 어둠 속에서도 건반이 가로등이 되어줬으니 망정이지, 이 바르톡 바이올린 소나타 1번 2악장 도입부만 같은 얇다란 길이 그림자 속에 숨어 전등빛을 따라 요란한 춤을 춘다.


번개가 되어 사선으로 번뜩일 때에는 사방에 제 흔적을 아프지 않게 때려박는다.

어둠 하나 없는 보름달 뜬 밤이다. 달무리에 사로잡힌 흰밤이다. 피아노가 바닥을 지켜내주니 요상하게 다정한 선에 사로잡혀 투명해지지 않을 수 없다.


여기까지 오는데, 어깨가 한 번도 굳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쇤베르크,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Op.47

ⓒ 유진

재미난 삐걱임이 가득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런데 웬걸, 소리의 물결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이를테면 온갖 타악기가 가득한 비명 어린 사물놀이를 기대했는데, 실크 옷감을 휘감은 무용수 한 명과 악기 하나만 놓고 새하얀 조명 아래에 홀로 서 있는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허리를 마구 꺾고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튀어 오르며 뒤를 지켜내는데도, 들리는 중심은 굳건하게 유지된다. 예측 불가능한 흐름 속이니 이게 뭐지 싶어야 할 법도 한데, 다 이유가 있어 보이니 갑작스레 두터운 소리를 내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놀이터의 그네로 곡예를 부리는데도, 그를 이상하게 보는 대신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왜일까. 째깍거릴 때는 또 어떤가. 밀당하는 척하며 공기를 노트하는 장난은 또 무엇인가. 전등 열 개가 나란히 빛장난을 치다 일순에 소멸해 버리는 장면 같다.



부소니,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2번 e단조 Op.36a

2602040204IMG_2296.jpg ⓒ 유진

I. Langsam


그러니까 더없이 고단했지만, 시간이 흐른 바람에 얼결에 조금 나아져 버린 상태처럼 흐릿한 사방을 서서히 헤쳐 나오는 다정함이 있었다. 바이올린이 부드럽게 문을 열면, 피아노가 자연히 드러난다.


먹구름만 가득한 줄 알았건만, 코랄빛 구름이 은근슬쩍 ‘나 여기 있었다’ 하며 손을 몰래 흔드는 정도의 부드러움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그동안의 흐름에 비하면 이 악장의 시작은 꽤나 화살표적이다. 온화함 쪽으로 항해한다.


높은 파도도 타고, 제법 위협적인 돌풍도 뚫고 나가며 채워지는 그림이 있다. 여명이 오려나. 뭘 그리려는 걸까. 다독이는 손길도, 앞질러 나가는 위로도 없이, 선 하나만 기다랗게 긋다 사라진다.


II. Presto


그야말로 리듬을 타오르며 신이 나 버리는 순간이다. 절묘하게 한 계단, 두 계단씩 흥을 태워 올린다. 장난을 치고 있음에도 중심축은 굳세게 버티고 있으니, 나무기둥 하나가 바람결을 구경하는 셈이다.


III. Andante, piuttosto grave


거의 바로 이어지며 시작된 3악장. 이 순간의 바이올린은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기억에 대한 애수를 닮은, 아주 얇은 지저귐이라 해도 좋겠다. 그 곁을 묵묵히 뒤따라 발을 맞춰 주는 무게감 있는 피아노는 또 어떤가.


여리게보다도 더 여리게.

아스라히, 안으로 또 안으로.


소리가 연주가의 심장 안으로 다가서야만 보일 만큼 작아져, 깊숙한 곳에 음량을 감춰 둔 채 속삭인다. 이 조그마한 노래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햇살 아래, 구름 사이에 포근히 머무는 시간도 있다. 별다를 것 없이 넓게, 아주 넓게 오고 갈 줄 알면 그만이다. 햇빛이 잘 드는 하얀 책상 위에 은반지 하나를 놓고, 표면이 반짝거리는 장면을 바라보다가도 이내 재미나게 기지개를 켜 준다.


끊임없는 장난을 부드럽게 즐기던 밀크향 실거미는, 이쯤에서 더는 바삐 걷지 않는다. 미끄럼틀을 타듯 한 번 흘러내린 뒤, 피아노의 잔향 위에 가만히 머문다. 거대한 위압감 하나 없이, 안으로 또 안으로 가져다 놓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침묵과 오르내림, 다가오는 작별과 멀어지는 이별, 기억되는 순간 흩어지는 외로움, 쌓여 가는 마음과 증명되는 순간들.


설명하려 들수록 자꾸만 손이 미끄러졌다.


퍼져 오는 온도와 살아나는 소리, 고조되는 오늘. 아쉽지 않게 된 모든 것을 감싸 안는 넓은 노란 천보자기 하나가 사방을 에워싼 채, 우리 곁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이쯤에서 공연은

소리보다 먼저 듣는 법을 남긴 채 앙코르로 이어졌다.


앙코르

2602040204IMG_2289.jpg ⓒ 유진

슈만, 환상소곡집 Op.73-1

서정의 바람을 타고 유유히. 다만 크게 놀라게 할 필요는 없이, 차분하고 가벼운 자애로움 속에서.


존 케이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녹턴

이토록 고요함 속에서 정적을. 잊지 못할 숨의 두 번째 노래가 여기 있다. 노래하는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뛰어올랐다가, 무게감 하나 없이 내려앉는 깃털처럼.


가장 작은 방 안으로 모여드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귀를 쫑긋 세운 채 무대 한가운데를 응시하게 만드는 힘이다.


뚫어져라, 뚫어져라. 괜히 그를 놓쳐 버릴까, 기꺼이 저 소리의 온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식되는 줄도 모르고 눈을 맞췄다.


3. 공연이 끝나고

2602040204IMG_2219.jpg ⓒ 유진

한밤 안에 놓인 예술의전당.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노래한 그 권청의 밤에, 연노란 둥근 달이 높게 자란 검은 나무 위로 떠 있었다. 달 표면에는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회색 흉터가 있는데, 그날은 유달리 토끼처럼 보였다.


달과 기다랗게 눈을 맞추며 생각했다. 두 시간 동안 그 낯설다는 20세기 음악을 통과해 왔는데도 이렇게 부담감 하나 없다니.


이 쌉쌀한 다크초콜릿의 밀키한 목넘김을 잊을 수 있으려나 싶은, 향기로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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