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6 서울시향 얍 판 츠베덴의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
들어가며
내가 바라는 얼굴은 늘 총명의 물 위에 떠 있기를 원하지만, 매일같이 마주하는 것은 아둔한 모양새의 메마른 주름살뿐이다. 그 익숙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어째선지 멀찍이 내던지고 싶어진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번번이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그런 마음은 말 하나에서도 드러난다. 처음 말러 교향곡 6번의 제목이 ‘비극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언제나 인정받기를 원했다’는 프로그램 노트의 첫 줄에 잠깐 안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와 나는 비슷할지도 모르겠다는 짧은 착각과 함께.
내가 생각한 비극의 출발 지점은 낭떠러지였고, 끝을 알 수 없는 추락이었다. 그런데 그는 어째선지 끊임없이 내지른다. 나아간다. 소리는 풍경이 되어 공간 속으로 길을 내며 뻗어 나간다.
무엇이 그리 간절했을까. 우리는 결국, 모두 버려지는데.
멀리 내다봤을 때, 우리 인생에 희극이라 할 만한 것이 남아 있던가. 어리석다 여겨져도 좋으니 작게라도—혹은 거대한 거짓 속에서라도—‘기뻐’ 보일 수만 있다면, 어떤 태도라도 붙잡고 싶을 뿐이었다. 이런, 몹시 아둔하게도.
그래서 나는—비극을 비극이라 여기지 못한 채, 19일의 ‘비극’ 앞에 앉기로 했다. 그래야만 오늘의 내가 ‘희극’ 속에 머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말러, 교향곡 제6번 ‘비극적’
I. Allegro energico, ma non troppo
시작의 속도감에 ‘역시!’를 속으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 25년에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무대에서 목격한 얍 판 츠베덴의 지휘라면, 분명 이 첫걸음은 암전보다 번뜩임이겠지? 했는데, 실로 경쾌함과 숭고함이 적절히 섞인 군중의 발걸음을 닮은 시작이었다.
시작부터 기선을 휘감아 버린다. 관악이 신호를 주면, 현악은 일부러 옆으로 미끄러지듯 흐른다. 물러나는 지점이 유난히 세련됐다. 다가올 때는 강하게, 물러날 때는 얌전하게.
그 밀어붙임과 물러남이 얽히며 관객의 정면을 광활하게 위협한다. 이곳에 앉은 우리는, 파도치는 위험 한가운데로 등을 떠밀린다.
좌중이 조용해졌을 때, 안개처럼 스며든다. 미로를 파고드는 선율. 그러다 물러나는 찰나, 소리를 객석으로 끼얹는다.
어둠이 걷히는 순간. 방 안에 틀어박혀 창문으로만 나무를 바라보던 아이 앞에—새파란 들판이 펼쳐진다.
자연이 들이친다. 소년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 거대한 위압을 감출 생각은 없다. 세상이 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넓다고. 알아듣든 말든 전혀 상관없다는 얼굴로.
끝으로 갈수록 말꼬리가 길어진다. 안개는 언제든 다시 돌아온다. 이번에는 조금 더 선명하게. 뒤따라온 거대함이 전보다 다정하다. 아이를 만난 덕분일까.
오늘의 말러는 타악기에 시선을 놓을 수가 없다. 선명한 빛 한 점을 박아 넣는다. 그대로 내려친다. 심장이 요동친다. 울려 퍼지는 박동. 때에 따라,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다.
1악장을 달리던 중, 무대 왼쪽 끝에 있던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 연주자가 벽을 따라 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연주가 한창이니 조심조심, 조용히 이동했는데 문 안쪽에는 악보 보면대가 서 있었다.
딸그랑… 짤그랑… 따그랑
설마, 저기서 연주를 하나 싶었는데. 그 작은 네모 안에서 물방울 같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예습할 때 궁금했던 그 소리가, 바로 저 안쪽에서 울리고 있었다.
마무리가 다가올 것 같은 구간에서는 지나치게 잘 맞아떨어지는 단합에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많은 단원이 있는데도, 오차 없이 말러를 구현해 낸다. 다음 날에도 공연이 있는데도 마치 ‘이 힘든 걸 두 번은 하지 않겠다’는 현대인의 집중력처럼 몰아붙인다니.
소규모 실내악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이 ‘광장의 소리’를, 나는 한동안 잊고 있었구나. 그 사실을 타악기의 경고로 알아챘다. 관악과 현악이 유려한 얼굴로 부드러운 경고를 건넬 때는, 숨소리조차 없었던 것처럼 시선을 그 안으로 끌어당긴다.
1악장의 끝으로 달려갈 때의 용맹함과 은근한 장난기가 얽히는 그 순간, 이 비극의 시작은 너무나 매혹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II. Scherzo
끝인 줄 알았지? 싶은 순간, 다음 악장이 시작된다. 이미 발끝이 달아올랐는데, 2차전이 개시된다.
웅덩이를 뚫고 올라오는 한 줄기 소리와, 잇달아 등장하는 현악의 입체적인 시계 소리. 오케스트라에서만 만날 수 있는 표현들이 다채롭게 섞여 있다. 개별 움직임을 뒤로 한 채, 대형을 맞추며 겉선을 지워내는 진행 또한 흥미롭다.
수십 대의 악기들이 오직 소리로 춤을 춘다. 손을 뒤로 감춘 채, 가녀린 왈츠를 춘다.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타악기의 신호를 놓치면, 방금까지의 춤이 순식간에 다른 얼굴로 뒤집힌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다.
가만 보니, 1악장에서 위엄을 보이던 그 존재에 대한 또 하나의 응답 같다. 이렇게 1악장에 긍정하는 스케르초는 처음이었다. 발소리 같은 타격음, 한 번 번쩍이고 사라지는 타악기의 존재감도 잊을 수 없는 묘미다.
III. Andante moderato
양팔 안에 가만히 안긴 채 들리는 소리. 모닥불 옆에서 담요가 되어 주는 포근함을 들어본 적 있는가. 내 체온보다 조금 더 따뜻한 것이 곁에 있다.
이를테면 ‘여기 있다’고 반복해서 말해 주는, 말 한마디의 위안 같은 것. 누군가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아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등 뒤에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제방이 버티고 있다. 잊고 있던 물방울이 다시 돌아온다. 이곳은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무가 자라는 곳이다.
타오른다고 해서 누구 하나 탓하지 않는다. 안심해도 된다는 말을, 이 악장이 끝날 때까지 몇 번이나 반복하던지.
미련할 정도로 든든하고, 착한 바보 하나가 그곳에 있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곁에 있는 쪽을 택하는.
IV. Finale
진정한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종결. 타악기가 쏟아지고, 웅장함이 뱃고동의 외투를 입은 채 모든 것을 감시한다. 그런데 그 모든 풍경을 아무렇지 않게 부정해 버리는, 일직선의 매정함이 등장한다.
왜 이렇게까지, 방금의 모든 것을 무너뜨려야 했을까. 방금까지, 우리—행복했잖아.
쌓아 올린 것을 단숨에 뒤집어 버린다. 1층, 2층, 3층으로 이어지던 감각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리셋된다. 언제 정이 들었는지도 모른 채, 새로 밀려온 장면 앞에서 어안이 벙벙해진다.
넘어가지 않겠다고 말해야 하는데,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지워버리는 태도가 자꾸 눈에 밟힌다. 하프는 노래하고, 현악은 가늘게 애원한다. 마음이 자꾸 약해진다.
이쪽으로 와, 이쪽으로 와. 새까만 어둠일지도 모르는데, 결말도 모른 채 그 손을 막을 수가 없다. 결국, ‘쾅!’ 하고 내려치는 망치. 침잠해 있던 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선명하고 정확하다.
이건 새로운 시작일까. 아니면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축제일까. 어째서 우리는 그렇게 따라갔을까. ...사실 이유 같은 게, 있었을까.
우리는 이미 두 번이나 맞았는데.
알고도, 또 한 번—아둔해지는 쪽으로 넘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