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게 뭐라고, 그 말에 사람이 산다

[전시 리뷰]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 - 오래 좋아하는 것의 끝에

by 유진

전시를 보고 온 며칠 뒤, 종이백 속에 담긴 문장들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아졌다. 카메라를 다시 꺼내 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진 속에도 문장이 남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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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좋아하는 것만큼 허황되고 부질없는 일도 없지만, 오래 좋아하는 것만큼 사람을 살아 있게 만드는 일도 없다.


대단한 인사이트를 얻고 싶다는 욕심보다도, 마음에 맞는 몇 문장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 컸다. 이 전시는 서브컬처를 단순한 비주류 취향으로 다루기보다, 오래 좋아해 온 것을 끝까지 놓지 않은 태도와 그 시간이 쌓여 만든 결을 보여주려는 쪽에 가까워 보였다.


전시장 출입구에서는 짙은 빨간색 종이백을 나눠 주고 있었다. 전시장 곳곳에 놓인 인사이트 페이퍼와 스티커, 책갈피 등을 하나씩 담아 가라고 마련해 둔 것이었다. 관람객이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도록.


아, 오늘 재미난 쇼핑을 하게 되겠구나. 그 생각과 함께 눈길이 닿는 곳마다 손을 뻗었다. 무엇을 보고 지나칠지보다, 무엇을 가져갈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너의 글이 쓸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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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눈길이 머무는 문장이었을 것 같다. 스쳐 지나치기보다는 오래 붙잡게 되는 문장이었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쓰일 수 있다니. 나는 더 많은 내용이 궁금해져 종이를 뒤집었다. 내가 쓰는 문장도 정말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있길래> - 김사월 싱어송라이터, 작가

적어도 나에게는 너의 글이 쓸모 있다. 음악과 영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건 인간에게 몇 안 되는 희망적인 모습이고, 나에겐 그리고 우리에겐 희망이 필요하니까.수많은 사람의 삶 속에 내가 있다는 감각, 그래서 내 삶이 그렇게 특별하지도 이상하지도 않다는 느낌, 누군가의 경험이 감히 내 것처럼 느껴져서 행복해하고 아파하는 것. 그렇게 타인에게 공감하는 경험이 인간의 닫힌 마음을 회복시킨다고 믿고 싶다. 세상은 어쩜 이렇게 후퇴하는 것 같으면서도 애매하게 희망적일까?

<엘르> 2025년 2월호, 엘르보이스 135번째 뉴스레터

음악과 영화, 연극 등을 곁에 두고 있으면 “세상은 역시 말세다”라는 말보다는 아직 살 만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저 재생되는 음이고, 가상의 이야기이고, 이미 끝나 버린 일인데도 미련과 아쉬움, 혹은 충만한 기분에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어찌 그런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종이를 넘길수록 문장보다 먼저 그 사람이 버텨 온 시간이 손에 잡힌다. 한 장을 더 살펴보기로 했다. 이번엔 친구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가 아끼며 가꾼 정원을 바라보듯 친구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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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생애주기> - 황선우 작가, 팟캐스터

내가 아끼며 가꾼 정원을 바라보듯 친구들을 본다. 앞으로도 새로운 꽃이 피어나거나 새가 날아들거나 하겠지만,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의 커다란 존재감이 소중하다. 우리 사이에는 얼마큼의 물이 적당한지, 바람이 통할 수 있게 필요한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를 서로 오래 지켜보고 또 다투기도 하며 노력해 온 시간이 있다. 40대는 여자들이 우정을 쌓기에 아주 멋진 시기다.

<엘르> 2022년 3월호, 엘르보이스 25번째 뉴스레터

오늘의 내게는 운명처럼 점지된 친구들이 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성격도 취향도 다르지만, 우리는 서로를 쉽게 대하면서도 쉬이 여기지는 않는다. 우리 사이에는 얼마큼의 물이 적당한지, 어느 정도의 바람이 통해야 하는지를 저마다 오래 배워 왔다.


다만 네가 말을 꺼내려 하면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귀를 기울인다. 관심사가 전혀 다른 걸 알아도 꼭 같이 가고 싶은 때가 생기면 딱 달라붙어 같이 가자고 조른다.


얼마 전에는 친구가 클래식을 즐기는 나를 위해 네 사람의 티켓을 구해 와 함께 공연을 관람할 기회를 선사해 주었다. 언젠가 다 같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소원이 꽤 빨리 이뤄졌다. 밤 9시가 넘어서야 무대의 막이 내렸으니 모두가 사이좋게 하품을 하며 돌아왔지만, 무척 즐거웠다.


이러니 우리의 40대를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꼭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아도, 서로의 애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관계가 있다는 건 꽤 든든한 일이다.


불행을 예습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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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예습하지 말자> - 에리카 ‘샤크짐’ 대표

불행을 예비 연습하지 말자. 내 인생의 본무대가 밝고 크게 빛나려면 끊임없이, 특히 스스로에게 좋은 말을 해줘야 한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또 하면 되지” “이렇게 배워 가는 거야” “지금부터 하면 돼” 같은 말을 말이다. 스스로에게 하는 다정한 말로 행복을 연습해야 한다. 그 따뜻한 말이 외부의 온갖 불행에 대항하는 창과 방패가 돼 줄 것이다. 기억하라! 당신은 괜찮다. 당신은 잘하고 있다. 당신은 더 좋아질 것이다.

2023년 10월호

가끔은 다시 태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을 재시작하고 싶을 만큼 불행한 일이 있었냐고? 그렇지는 않다. 그저 결과에 상관없이 무조건 낙천적으로, 누구의 험담이나 우울한 상황 속에서도 “응? 뭔 일 있었나?” 식으로 살고 싶을 뿐이다.


타인의 행동 하나하나에 마음을 쓰는 것보다 차라리 무던한 사람이면 좋을 텐데. (…)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든 생각인데, 굳이 다시 시작할 필요까지 있나 싶다. 그냥 지금부터 그렇게 살면 되는 거 아닌가. 굳이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나는 이제부터 무조건 행복하고 긍정적이며, 나에게 필요한 만큼만 둔감한 사람이라고 큰소리로 선언하기보다는, 그쪽으로 조금씩 살아 보고 싶다는 말이 내게는 더 맞겠다. 어쩌면 그 한 줄은 전시장에 두고 온 게 아니라 아직도 가끔 들고 다니는 문장인지도 모르겠다. 불행은 예습하면 안 되니까.


타이틀곡이 우리를 앨범 세계관으로 입장하게 만든다면, 그 세계를 끝까지 탐험할 동력은 수록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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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곡 하나가 대문이 되고, 또 다른 곡이 다음 방의 문고리가 되는 식으로 나는 클래식 안으로 조금씩 들어왔다. 지나간 몇 분을 붙잡으려고 몇 년 뒤의 내가 날밤을 새우며 문장을 늘어놓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붙들고 있다는 건, 어쩌면 계속해서 같은 문 앞에 다시 서 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나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들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이면 어느새 내 손 안으로 들어온다. 눈과 목소리로 대화하지 않아도, 허공을 통해, 남겨 둔 흔적을 통해 어제의 내가 오늘의 누군가와 이어진다. 또 다른 세상과 내 세상이 그렇게 인사한다.


나는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이제는 글을 써야 했다. 내가 지금 쓰려는 이 감정은 어디까지가 내 것이고, 어디부터가 타인에게서 건너온 것일까.


그것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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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이의, 혹은 오래 애정해 온 이의 작품을 보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쓰다 보면, “어떻게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영영 피할 수 없게 된다.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르고 언제 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공책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꺼내 볼 수 있으면서도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는 장소에 나의 어제를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애정을 따라가며 쓴 문장은 끝내 완전히 내 것이 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내 남의 것에만 머무르지도 않는다. 오래 바라본 것들 곁에서 나는 조금씩 내 문장을 배워 왔고, 어쩌면 좋아한다는 일은 늘 그런 식으로만 나를 넓혀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왜 글자를 쓰고, 음을 듣고, 굳이 공연장까지 향하는가?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늘 두 손에서 시작해 허공으로 건너가고, 내가 모르는 세상을 일깨워 줄 사람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즐거운 표정 하나에, 흘리는 땀방울에, 흰 동그라미가 박힌 눈동자에 자꾸 시선이 간다. 결국 내가 바라는 것은 늘 비슷하다. 타인의 오래된 애정과 고집을 따라가며 집요하게 내 세계를 넓혀 가는 일. 이 전시를 보러 가기로 한 것도 다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누군가의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는 건, 오래 좋아할 만한 이유가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래 좋아하는 것만큼 허황되고 부질없는 일도 없지만, 오래 좋아하는 것만큼 사람을 살아 있게 만드는 일도 또 없겠다. 전시장에서 들고 나온 종이백 속 문장들을 며칠 뒤에도 다시 꺼내 보게 되는 걸 보면, 좋아하는 게 뭐라고 해도 사람은 결국 그런 것들로 살아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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