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2026 서울시향 얍 판 츠베덴의 브루크너 교향곡 4번
어쩌면 오케스트라가 몸이고,
바이올린이 꿈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번 서울시향 4월 정기공연을 앞두고, 바이올리니스트 시모네 람스마는 존 애덤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다시 읽어보자. 오케스트라가 몸이 되고, 바이올린이 꿈이 된다. 몸과 꿈이다.
4월의 서울시향은 존 애덤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4번 ‘낭만적’을 나란히 세운다.
얼핏 보면 둘은 좀처럼 한 문장 안에 놓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프로그램 노트를 읽고 있자니, 둘 다 짧은 재료 하나를 붙잡고 오래 밀고 가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반복인데, 그 반복이 흘러가는 시간의 결은 전혀 다르다.
애덤스의 협주곡에서는 바이올린 선율이 길게, 꽤 집요하게 흘러간다. 특히 2악장 Body Through Which the Dream Flows(꿈이 흐르는 몸)에서는 반복되는 바탕 위로 바이올린이 떠다니듯 움직인다.
반면 브루크너의 4번은 조용한 현악기 위로 호른이 길을 열고, 처음 들려준 재료를 몇 번이고 돌아오게 하면서 점점 더 큰 풍경을 만든다.
제목 ‘낭만적’도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달콤한 감상과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숲, 기사, 사냥 같은 오래된 상상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러니까 이번 프로그램은, 길게 흘러가며 붙잡히지 않는 애덤스와 되돌아오면서 점점 더 크게 타오르는 브루크너를 한자리에 올려놓은 무대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도 공연에 앞서 하나쯤 물음표를 쥐고 들어가 보자. 애덤스에서는 무엇이 몸이고 무엇이 꿈이 될지, 브루크너에서는 무엇이 처음으로 돌아와 더 크게 울리게 될지.
나는 그 순간을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
존 애덤스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첫 시작부터 뭐가 올라온다. 공기를 먼저 건드린다. 어떤 속도로 향하고 있는가. 바이올리니스트는 바이올린이라는 성대를 통해 어떤 음색과 톤으로 말하려고 할까.
물음표를 양손에 꼭 쥐자. 음에 끌려가기보다, 감히 흐르는 것을 내려다봐야 한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끊임없이 의심해보자.
바이올린이 밑바탕의 오케스트라와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예민한 눈을 뜨고 무언가 수상할 만큼 또렷하게 노래한다고 생각하자.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 애처로운가, 처절한가. 당신의 단어를 골라보자.
만약 이 1악장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음미할 만한 선율을 붙잡을 수 없다면, 냅다 포기해도 좋다. 이해를 버려보자. 오히려 이런 말을 해보는 것이다.
요것 봐라?
어디까지 가나 보자.
바이올린이 우리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려 하고 있고, 그를 위해 요술을 부리는 걸까? 지금 나 하나를 끌어들이겠다고 이렇게까지 한다고? 어찌 됐건 내가 주인공이라는 말 아닌가?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어지러운 간청을 하는데,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1악장의 색감은 어떨까? 협연자 시모네 람스마의 색은 무엇인가? 함부로 추측하고 멋대로 상상해보자.
세상을 뒤흔들 것처럼 시끄럽게 굴다가도, 갑자기 불쌍한 척을 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때의 바이올린 얼굴은 마치 어떤 단어 하나를 기다리는 듯해 보인다. 가련, 처연, 울적. 무슨 단어를 채워 넣을 것인가? 당신의 자유일 것이다.
2악장
이때의 시작에서는 무대가 아니라 내 앞 좌석의 등받이를 응시하자. 시선을 내리고 종이 울리기를 기다려보자. 2악장의 시작은 어디이며, 그들이 묘사하고자 하는 장면은 어디쯤일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상태일까.
1악장에서 자리 잡지 못하던 무언가가 주저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이. 토끼. 달. 남겨진 연인. 컵 하나.
미련해 보일 정도로 소리 하나를 놓치지 못하는 바이올린의 심정을 떠올려보자. 잊으려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가 좋기 때문일 수도 있고, 외로워서일 수도 있다.
머릿속에 사람 하나를 띄워놓고 제멋대로 춤추게 해보자.
손이 먼저일까. 발이 먼저일까. 명치 위로 손가락을 올려야 하나. 깔깔거리며 미쳐 있는 사람도 좋고, 바닥에 얼굴을 가져다 댄 사람을 떠올려도 좋다. 당신의 몸 안에는 무슨 꿈이 흐르고 있을까?
소리가 알아서 길을 터줄 테니 연필 한 자루만 들고 있자. 생각하기를 멈춰도 좋다. 그냥 다 잊고 따라가보자. 다정한 목소리가 아니라고 해서 뭐 하나 네 편 아닌 게 없다. 그저 따라가다 보면 될 것이다.
2악장의 끝이 다가오면 어떤 속도로, 어떤 마음으로 가라앉을까? 시작의 종소리와 함께 끝인사도 한번 같이 기다려보자.
3악장
이 3악장의 시작이 얼마나 진취적일지 기대해보자. 바이올린이 눈을 매섭게 뜨고 있는가? 아니면 웃는 얼굴로 앞길을 내질러 가는가?
이 곡이 흐르고 있는 장소는 어디인가? 사파리 공원. 높은 빌딩 사이. 중간에 들려오는, 꼭 기타 같은 소리는 뭐지? 소리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보자.
그들은 지금 어느 쪽으로 향하고 있는가? 상승인가, 하강인가, 직진인가? 아니면 지금 발바닥 아래로 푹 꺼지고 있는가? 잠잠한 땅 위에서 요란한 춤을 추는가? 그 이유를 찾아보자. 용솟음치는 이 소리의 불일치를 붙잡아보자.
으르렁대는 몸집에 눈을 맞추고, 당신에게 들이닥친 새로운 세계관을 기꺼이 받아들여보자. 그러면 필시, 현대음악에 손을 뻗게 될 것이다.
브루크너 교향곡 제4번 ‘낭만적’
1악장
애덤스의 2악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때에도 시선을 당신에게 가장 가까운 검은색에 두어보자. 도입부에 나타나는 조용한 현악기 위로 노래하는 호른이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눈을 감고, 눈앞에 어떤 풍경이 펼쳐진다고 생각하자. 안개가 자욱한가. 나뭇잎이 나부끼는가. 서서히 타오르는 때를 놓치지 말고, 나만의 것을 이들 사이에 끼워다 놓아보자.
장관이 머무는 순간의 날씨는 어떤가? 흐릿한 사이를 태양이 뚫고 나타났나. 원래부터 밝은 날이었을까. 그 하늘 아래를 걷는 사람은 누구인가?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아무것도 아니어도 된다. 소리라는 돔 안에서 자유롭게 무언가를 펼쳐낼 수 있으면 그만이다.
서서히 타오르며 하늘로 향하는 놀이기구도 있다. 그 상승감을 눈으로 만나보자.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을 적에는, 내가 지금 교향곡을 듣고 있구나, 그 사실 자체를 음미해봐도 좋다.
당신의 눈앞에 있는 지휘자의 팔 움직임도 지켜보자. 소리와 그의 움직임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그 흐름을 가만히 따라가봐도 좋다.
몸이 서서히 떠오르는가? 이 악장의 풍경 안에서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나? 무엇을 하기로 약속했나? 스스로에게 잠시 시간을 내어주자. 어떤 색의 크레파스로 우리는 이 그림을 스케치할 것인가.
2악장
배경을 다 그린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서사성을 부여해보자. 이 풍경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면 좋을까? 누구의 이야기여야 이 악장을 흥미롭게 즐길 수 있을까? 지휘자는 무슨 말을 우리에게 전하려 하는 걸까?
정적인 순간이 찾아오면 무엇을 떠올릴지 미리 생각해두자. 연주자들의 표정은 어떤가. 소리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있나?
어느 계절의 나지막함일까? 봄이 오고 있으니 벚꽃이 흩날리는 정도일까? 두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이 어딘가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들은 무슨 옷을 입고 있고, 언제 자취를 감추는가?
생각이 길을 잃고, 무엇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대 속을 뚫어져라 바라보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현악기가 작게 물을 퍼올리는 순간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같이 기대해 볼까?
3악장
들어보면, 무슨 행사가 시작되려나 싶은, 관악기의 꼬공꼬공-꿍꿍거림이 있다.
이 장면에서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음료를 나르려나. 손님을 맞이할까. 마차를 타고 있나? 창문가에 서 있나. 당신은 어떤 인물인가. 어디에 당도했는가.
인파의 분위기는 어떤가? 사람이 많아 당황스러움을 느꼈나. 한발 뒤로 물러나도 좋고, 창밖으로 팔을 기댄 채 누가 있는지 살펴보자. 관악기가 화려한 연회의 시작을 일러주기 전까지, 그 풍경을 천천히 둘러보자.
4악장
끝이 다가온다. 마지막 악장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3악장의 활기참은 어디로 가고, 웅장함이 가득하지 않은가? 왜 갑자기 이렇게 가라앉았을까? 그 이유를 추측해보자.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기쁨과 슬픔이 한데 휘몰아치는 이유를, 소리에게 끊임없이 물어보자.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일치감을 음미해보자.
그날의 낭만이 당신의 박수를 기다릴 때까지.